꽃무늬 모자를 쓴 어르신 한 분이 유모차에 의지해 교실에 들어오셨다. 딸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스레 자리에 앉으신 분은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곱게 화장을 하고 립스틱까지 바르고 계셨다. 나보다 먼저 교실에 도착해 기다리고 계셨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나는 분순어머님 곁으로 가 손을 잡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머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공손하게 인사를 하며 멋쩍게 웃으셨다.
“아이고, 선생님! 주인 없는 교실에 불청객이 먼저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은 어쩔 줄 몰라했지만 그분의 눈에는 희망 가득한 눈빛을 보내셨다.
옆에 있던 딸이 가볍게 목례를 했다.
“어머님이 글을 배우고 싶어 하세요. 연세가 많으셔서 극구 말렸지만 꼭 해 보고 싶다고 하셔서 이렇게 모시고 왔어요”
딸은 분순 어머님과 함께 방문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잘 오셨어요. 하지만 어머님 건강이 좋아 보이진 않으신데......”
나는 어머님의 건강이 걱정되었지만, 그분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분순 어머님은 우리 반의 학생이 되셨다.
그날 이후 어머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교실에 나오셨다. 어느 날 어머님은 일기를 써 오셨다.
⌜ 0 월 0일 맑음
학교에 왔다. 아우들과 고구마를 나누어 먹었다. 공부를 했다. 머리가 나쁘다. 오늘 재미있었다.⌟
어머니의 글은 짤막했지만 그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며칠 째 어머님이 오시지 않았다. 딸이 문자를 보내 병원 진료를 보러 가신다고 연락은 받았지만 어머님이 연락이 오지 않았다.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
수업을 마치고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징... 징...”
전화벨이 울렸지만 어머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저녁 무렵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선..생..님! 서 분순입니다.”
힘없이 흘러나오는 목소리. 복통으로 대학 병원에 입원하셨단다. 암 수술 후 식사도 힘드셨지만, 꿋꿋이 지내셨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셨다.
“어머니, 큰일 날 뻔하셨네요. 그래도 이제 병원에 계시니 좋아지실 거예요.”
나는 어머니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선생님, 빨리 나아서 갈게요. 숙제도 밀렸을 텐데...”
병상에서도 글공부 걱정을 하는 어머님의 목소리엔 여전히 배움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났다.
“어머니. 지금 공부보다 건강이 먼저예요. 어머님 친구들이 어머님 많이 기다리세요. 잘 조리하셔서 나오실 때까지 함께 기도할게요. 건강하세요. 어머님.”
나는 간절하게 어머님의 건강을 걱정했고 빨리 쾌차하시길 바랐다.
몇 주가 흐른 뒤 어머님은 교실에 앉아 계셨다.
“어머니!”
반가운 마음에 어머니 손을 잡고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낯빛이 누렇게 뜨고 힘에 겨워 보였지만 어머니가 건강하게 돌아오신 것 같다.
교실은 어머님 주변으로 학습자들이 몰려들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어머님의 건강을 걱정했다.
“선생님, 아직 다 나은 건 아닌데 잠시 집에 왔어요. 다시 병원을 갈 수 있는 데 있는 동안 민폐가 아니면 공부하러 와도 되지요?”어머님은 우리 반 학습자들과 나에게 같이 공부해도 되는지 물었다.
“어머님. 저희는 어머님이 오셔도 상관은 없지만 어머님 건강이 걱정됩니다.”
나는 어머님 건강을 걱정했고 어머님이 건강을 스스로 챙기시겠다고 했다.
다시 한 반이 되어 수업을 하며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월요일 아침,
어머님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나는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딸이 보낸 문자에는 어머님이 병원에 다시 입원하셨다고 한다.
그날 이후, 어머님은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다.
교실 한편, 어머님의 자리에는 오늘도 책상과 의자가 고요히 놓여 있다.
우리는 그 자리를, 그리고 어머님의 마음을 기억한다.
“죽기 전에 꼭 배우고 싶어요.”는 그 말이, 오늘도 내 마음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