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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2 _ 조르주 쇠라

강변 _ 점묘법을 도입한 후기 인상주의 화가

by Phillip Choi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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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En Plain Air, 그리고 물


인상주의 화풍은 기본적으로 외광작업을 특징으로 한다. 빛의 움직임에 따른 찰나의 경관 변화를 포착하여 그 인상을 변하지 않는 캔버스에 옮기고자 한 인상주의자들에게 빛의 변화를 감지하는 동시성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터이다. 때문에 바리바리 붓짐을 지고 다니다 너른 들판에 이젤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려내는 화가의 생소한 모습은 당시 시민들 뿐 아니라 동료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생소한 무엇인가였을 것이다. ‘안녕, 인상’ 만큼이나 인상적이었을 이런 풍경을 어떤이들은 사진과 그림으로 옮기기도 하였고, 한편 어떤이들은 이를 거부하고 실내 작업을 고집하기도 하였다.

< 호야킨 소로야의 외광 작업 사진(왼쪽). 보트에서 그림 그리는 모네를 그린 마네의 작품(오른쪽). >


외광 작업을 하던 화가들이 빛의 즉흥적인 효과를 포착하여 그림으로 담는것으로 즐겨찾는 장소로는 물을 꼽을 수 있다. 모네의 그림으로 따지자면, 해가 뜨기 시작하는 아침부터 해질녘 저녁까지 하루동안의 빛의 변화를 좇아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 ‘대성당’의 그림이라들지, 빛을 반사하는 개체로서 자연이 계절의 흐름에 따른 경관의 연속성을 담아내는 과정을 그린 ‘건초더미’나 ‘포풀러 나무’ 시리즈가 유명하다 하겠지만, 사실 인상주의의 대표자로서 그리고 인상을 넘어 추상을 바라보는 대가로서 그의 작품은 ‘물’ 을 표현하는 그림일것이다.

< 시간의 변화에 따른 대성당의 인상을 담아낸 모네의 대성당 시리즈 >
< 계절에 따른 인상의 변화를 담아낸 모네의 건초더미 시리즈 >


비슷한 이유로 호수와 강 그리고 바다는 여러 인상주의자들의 사랑받는 스팟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같은 물결을 두고 각자의 개성으로 표현한 다른 작품을 보는 것은 또한 우리의 큰 사랑이 될 것이기도 하다.

< 센강의 개구리 연못을 그린 모네(왼쪽)와 르누아르(오른쪽)의 그림. 각각 물을 표현하는 방식이 매우 다르다. >
< 바다를 그린 폴 세잔(왼쪽)과 호야킨 소로야(오른쪽)의 그림. 바닷물의 빛 반사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


센강의 상류에 있는 그랑자트 섬은 당시 파리에 머물며 인상주의 사조를 나누던 화가들에게 최적의 외광 장소였다. 숲과 강변이 어우러지고 배가 오가며, 멀리로는 도시 건축이 보이는 복합적 풍경이 그러하거니와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쉽게 다다를 수 있는 접근성 또한 작가들에게는 큰 매력일터이다. 센강과 섬의 수면 반사, 나무 그림자, 방문자들의 실루엣 그리고 이들에 비치는 햇빛의 변화를 관찰하기에는 이상적이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한적한 장소성을 몽마르트 언덕의 번잡함을 벗어나 그림에 몰두하기 쉽게 돕는 환경이었을 것이다.

< 그랑자트 섬을 그린 그림들. 알프레도 시슬레. 1873(왼쪽). 클로드 모네. 1878(오른쪽) >


한강, 선유도


우리에게는 단연코 한강이다. 파리의 센강과 같이 수도를 가로지르는 강이기도 하거니와, 교통, 어업과 풍류를 즐기던 옛날의 모습으로부터 치맥으로 대표되는 요즘의 풍경까지 시대를 따라 여러 기능과 풍경으로 사랑받고 있는 점이 공통적이기도 하다. 특히, 한강의 선유도는 센강의 그랑자트섬을 떠올릴만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선유봉(仙遊峰, 선유도)을 표기한 조선시대 고지도 >


선유도는 지금의 영등포구 양화진 인근에 위치한 섬으로 조선시대부터 풍류, 산업 그리고 생태공간으로 이용되어온 대표적인 섬이다. ‘신선이 노닐만한 아름다운 곳’ 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알 수 있듯, 한양을 도성으로 정한 조선시대부터 빼어난 경치를 즐기는 유람지-풍류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선유도는 경치가 빼어나며 시인 묵객들이 노닐며 풍류를 즐긴다” _ 경도잡지(京都雜誌, 1829)

“강풍 일고 물결 부는데 배 띄워, 선유의 바람 자락에 취해 노닌다” _ 박제가의 시 중에서


선유도를 노래하고 그린 많은 예술가들 중 첫째를 꼽으라면 단연, 양천현령(陽川縣令)을 지낸 겸재 정선을 들 수 있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인 겸재는 또한 중국식의 관념산수화에서 벗어나 우리의 실제 자연 경관을 생생하게 옮긴 화풍으로 유명한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단연 손꼽히는 ‘금강전도’ 뿐 아니라, 그가 양화현령으로 재직하며 주변의 선유봉, 양화진 그리고 인왕산의 모습을 옮긴 ‘선유봉’ ‘양화환도’ 그리고 ‘인왕제색도’ 같은 그림 역시 진경산수를 누리기에 부족함 없는 대작들이라 하겠다.

< 선유봉. 1740년대(왼쪽). 양화환도. 1746년(오른쪽). 겸재 정선. >
< 인왕재색도. 1751년. 겸재 정선. >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한강변의 여러 공간들이 산업화되었는데, 특히 선유도는 채석장으로 사용되면서 선유봉이라 불리우던 높은 봉우리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해방 후, 선유도는 서울 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던 기반시설인 정수장으로 변신하여 50여년동안 그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 선유 정수장. 2001. >


선유 정수장이 그 기능을 다한 2000년 초반, 시는 선유도를 다시 시민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하였고, 우리나라 최초의 ‘재생 건축 개념의 생태공원’ 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건축가 조민석과 조경가 정영선 등 당대의 설계가들이 모여 계획한 공원은, 정수장의 침전지과 여과지 구조등을 그대로 남기면서도 현대적이며 생태적인 장치들을 세련되게 더하여 국내외에서 친환경 재생 공원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힐만큼 잘 알려져 있다.

< 녹색 기둥의 정원(왼쪽). 수질정화원(오른쪽). 선유도 공원. >
<선유도 전망대. 선유도 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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