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영화가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는 방식
⟪비정성시⟫는 말하지 않는다. 사건은 설명되지 않고, 감정은 절제된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이 영화는 1947년 2.28 사건과 백색테러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총성도, 시위도, 폭력도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사라지는 사람들과 부서지는 가족,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만이 있다.
허우샤오시엔은 고통을 고발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폭력을 재현하는 대신, 그 시대의 정서를 감각하게 만든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이 감각되는 것. ⟪비정성시⟫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화다.
– 감정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비정성시⟫는 서사적 사건보다 구조와 정서의 흐름에 집중하는 영화다. 2.28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이 영화에는 명확한 갈등도, 중심 사건도 없다. 주인공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네 형제의 삶이 조용히 나란히 놓인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침묵 속에 사라진다.
이 구조는 단절적이고 파편화돼 있다. 형제들은 같은 공간에 머무르지 않으며, 서로를 직접적으로 돕거나 위로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들을 연결하지 않고, 병치해 보여줄 뿐이다. 그 사이에 어떤 감정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그 부재 속에서 감정은 더욱 분명해진다.
이 영화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보다 "그 일이 어떻게 남아 있는가"를 말한다. 기억은 줄거리가 아니라 정서의 구조로 남는다. 그 정서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설명 없이도 하나의 시대를 감각하게 된다.
– 말하지 않는 인물이 감정을 남기는 방식
이 영화에서 인물은 말하지 않는다. 고통을 설명하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실종되고, 누군가는 잡혀가고, 누군가는 조용히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울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는다. 특히 막내 원칭은 청각장애인이다. 말을 듣지 못하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 영화의 정서적 중심에 있다.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관객이 그 감정에 머무르고 감당하게 만든다. 감정을 소비하는 대신, 감정을 감각하게 만드는 방식.
허우샤오시엔은 인물의 고통을 재현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와 몸짓, 침묵을 통해 우리가 그 감정을 스스로 구성하도록 유도한다. 폭력은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결 속에 남는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도달하는 감정. ⟪비정성시⟫는 바로 그 지점에서 감정의 윤리를 묻는다.
– 보여주지 않고 구성하는 감정의 구조
⟪비정성시⟫는 폭력을 보여주지 않는다. 총소리도, 시위 장면도, 처형도 없다. 그러나 영화 전체에 걸쳐 어떤 위협의 감각이 서서히 스며든다. 이 감각은 인물의 극적인 표정이 아니라, 프레임과 공간으로 구성된다. 카메라는 늘 거리를 유지한다. 인물은 화면 한쪽에 작게 위치하거나, 문틀이나 벽에 의해 가려져 있다. 하나의 프레임 안에 가족이 함께 등장해도 그들 사이엔 시선도, 접촉도, 감정도 없다. 프레임이 연결을 허락하지 않는다.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사진관, 병원, 카페, 골목. 공간은 정적이고 질서정연하지만, 그 안엔 불안이 있다. 각 인물은 자신에게 허용된 공간에 갇혀 있다. 이들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며, 사건의 중심에서조차 누구도 말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이 모든 시각적 구조는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폭력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도, 그 폭력이 만든 분위기와 정서를 어떻게 감각하게 만들 것인가. ⟪비정성시⟫는 이 질문에 이미지로 답한다. 극적인 장면이 아닌, 구조로 보여준다.
– 폭력을 다루는 또 하나의 방식
허우샤오시엔은 고통과 폭력을 재현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것이 남긴 정서와 구조를 감각하게 만든다. 2.28 사건은 대만 현대사에서 가장 깊은 상흔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사건을 장면으로 만들지 않는다. 고발하지 않고, 증언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사라진 인물, 비어 있는 프레임, 침묵의 공기 속에서 그 시대가 남긴 무게를 느끼게 된다.
이는 단순한 연출 방식이 아니라, 윤리적 결정이다. 폭력을 묘사하는 방식은 언제든지 그 고통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고, 소비할 수 있다. 허우샤오시엔은 묻는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는 폭력을 재현하지 않음으로써, 그 자리를 침묵과 윤리로 채운다.
– 슬로우시네마와 동아시아 영화의 전환점
⟪비정성시⟫는 대만 뉴웨이브의 정점이자 전환점이었다. 정치적 금기를 처음으로 다룬 영화였고, 역사를 드러내는 대신 감정의 구조로 시대를 감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이후 동아시아 영화는 이야기보다 감정의 윤리와 시간의 리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허우샤오시엔은 이 영화를 통해 슬로우시네마, 미니멀리즘 시네마, 에세이 시네마에 영향을 준다. 이야기를 밀어붙이지 않고, 카메라는 침묵하고, 인물은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여백 속에 감정은 더 진하게 남는다. 그 영향은 명확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족 안의 단절을 조용히 보여줬고, 왕가위는 시간의 감정을 파편화했고, 아핏차퐁은 기억과 무의식을 서사 없이 이어붙였다.
⟪비정성시⟫는 이 모든 흐름에 앞서, ‘말하지 않음’이라는 새로운 미학과 윤리를 제시한 영화였다. 지금 우리가 다시 이 영화를 꺼내 보는 이유는 그 침묵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폭력이 반복되고, 기억이 지워지는 시대일수록 감정을 쉽게 말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감정을 감당하려는 영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빠르게 이해하고, 쉽게 전달하길 원한다. 하지만 어떤 감정은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비정성시⟫는 그런 감정에 머무는 영화다. 역사를 고발하는 대신, 기억이 스며드는 구조를 따라간다. 이 영화는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남긴다. 폭력을 재현하지 않음으로써, 그 고통을 스스로 감각하게 만든다.
그 침묵 속에, 우리는 감정의 윤리와 기억의 가능성을 다시 묻게 된다. 지금 이 시대에도, 감정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서사를 비워두고 감정을 남기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오래도록 이 영화를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