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화를 줄거리로 기억하지만, 때때로 영화는 이야기보다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들뢰즈는 영화가 움직임을 통해 세계를 사고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시네마 1⟫에서 그는, 인물이 보고, 느끼고, 반응하는 과정을 하나의 철학적 구조로 읽는다. 그것이 ‘운동-이미지’다.
⟪타이타닉⟫은 이 구조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영화다. 비극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감정이 시선과 선택을 따라 흘러가는 방식이다. 이 글은 그 움직임의 구조를 따라, ⟪타이타닉⟫을 다시 사유해 보려는 시도다.
들뢰즈에 따르면, 영화는 세 가지 이미지로 구성된다.
지각-이미지: 인물이 세계를 보는 시선
감정-이미지: 감정이 얼굴이나 몸에 드러나는 상태
행동-이미지: 감정을 따라 세계에 반응하는 움직임
이 구조는 우리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과 닮아 있다. 보고, 느끼고, 반응한다. 들뢰즈는 이 과정을 통해 영화가 하나의 사유 체계가 된다고 본다.
⟪타이타닉⟫은 이 연결이 정확히 작동하는 영화다. 로즈는 배 위에서 새로운 세계를 본다. 지각이 바뀌고, 감정이 따라오고, 결국 그 감정은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잭을 향해 달려가고, 그 선택은 삶 전체의 방향을 바꾼다. 이처럼 ⟪타이타닉⟫은 단지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이 어떻게 움직임 속에서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들뢰즈가 말한 ‘운동-이미지’의 작동 방식이다.
로즈가 처음 잭을 발견하는 순간, 영화는 시점을 바꾼다. 카메라는 로즈의 시선이 되고,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 감정이 따라붙는다. 이것이 들뢰즈가 말한 지각-이미지의 시작이다. 로즈는 처음엔 잭을 하나의 배경처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곧 그 시선은 머물고, 그 감정은 얼굴에 담긴다. 카메라는 얼굴을 가까이 당기고, 감정은 말보다 먼저 전달된다. 이것이 감정-이미지다. 감정은 설명되지 않지만, 관객은 그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어지는 행동. 로즈는 담장에서 몸을 던지려 하고, 잭은 그녀를 붙잡는다. 이후 로즈는 반복적으로 선택한다. 자신의 신분을 벗어나 잭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그를 위해 배에 다시 오른다.
지각 → 정동 → 행동
이 일련의 구조는 ⟪타이타닉⟫ 전반을 이끄는 리듬이다. 사랑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시선을 따라 형성되고, 그 감정이 움직임을 유도하는 방식이 계속 반복된다. 이 구조야말로 들뢰즈가 말한 운동-이미지의 핵심이다. 감정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움직임 속에서 천천히 형성되는 것이다.
운동-이미지의 구조는 인물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감정을 따라 행동하면, 세계가 반응한다는 전제 위에서 성립한다. 하지만 ⟪타이타닉⟫은 그 구조가 무너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배는 침몰하고, 잭은 죽는다. 로즈는 끝내 그를 지키지 못한다. 감정은 있었고, 선택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행동은 더 이상 세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들뢰즈는 이런 순간을 ‘행동-이미지의 위기’라고 부른다. 세계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고, 감정은 해소되지 않으며, 움직임은 목적을 잃는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줄거리의 논리에서 벗어나, 감정의 여운만 남기기 시작한다. 로즈는 살아남고, 오랜 시간이 지나 한 노인이 되어 그 감정을 기억한다. 그 감정은 이제 더 이상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시간 안에 남아 있는 감각의 조각이 된다.
⟪타이타닉⟫은 단지 사랑의 비극이 아니라, 감정이 실패한 자리에서 남겨진 기억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들뢰즈의 두 번째 저서인 ⟪시네마 2⟫로 넘어가는 문턱이 된다.
들뢰즈는 영화를 사유의 도구로 본다.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따라가는 방식이다. ⟪타이타닉⟫은 이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로즈는 보고, 느끼고, 선택한다. 그 감정은 움직임을 통해 구성되고, 움직임은 세계와 연결된다.
하지만 그 구조는 끝내 무너진다. 사랑은 있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감정은 더 이상 세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실패는 감정을 더 오래 남긴다. 감정은 줄거리가 아니라, 지각-정동-행동의 리듬 속에 생성되는 구조다.
우리가 이 영화를 다시 본다는 건, 이야기를 다시 듣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어떻게 흘렀는지를 다시 감각하는 일이다. 들뢰즈는 말한다. “사유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과 운동 속에서 이루어진다.” ⟪타이타닉⟫은 그 움직임의 구조 안에,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