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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첫 걸음을 떼다

무너지고 싶지 않아

by 으랏차차 내인생

다시, 첫 걸음을 떼다



몇 달 동안 나는 무너져 있었다. 무너진 것이 맞다. 모든 게 한순간에 무너진 것은 아니었지만,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를 짓눌렀다. 하루하루가 같은 색깔로 번져갔고,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움직이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의욕이란 것이 이렇게까지 바닥을 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나 나에게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아침이 와도, 저녁이 와도, 그저 흐를 뿐.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해야만 하는지도 모르겠는 상태로 며칠, 몇 주, 몇 달을 보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돈을 벌지 못했다. 버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많았고, 결국 빌려서 생활을 이어갔다. 하루하루가 버티는 것이었고, 버틴다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언제쯤 다시 숨통이 트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막연한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안정되지 못한 수입은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했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었던 인연이 있었다. 소중했지만 놓아야 했고, 놓았지만 허전했다. 가족이라 불렀던 존재들과 멀어졌다. 익숙했던 공간에서 나와 낯선 곳에서 살아가야 했다. 집 안에 울려 퍼지던 소리들이 사라졌고, 함께하던 순간들은 기억 속에만 남았다. 누군가는 지나가는 계절이라 했지만, 나에겐 한 시대가 끝난 것 같았다. 그 빈자리가 크다는 걸 인정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 걸까? 아니, 이대로 살아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는 결국 더 깊이 가라앉을 것이고, 언젠가는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곳까지 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가라앉아 사라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움직이기로 했다. 아주 작은 것부터. 몸을 일으켜 운동복을 챙기고, 신발을 신었다. 헬스장으로 가는 길은 무겁고도 낯설었다. 오랜만의 운동이었다. 익숙했던 바벨과 기구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했고, 무거운 것보다는 가벼운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렇게 한 세트, 두 세트. 힘들었지만, 몸이 살아있는 것을 느꼈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졌다. 하지만 그것이 좋았다.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았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펜을 들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내 안에 쌓여 있던 것들을 풀어놓았다. 글을 쓰는 동안은 나 자신과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몰고 왔는지,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내리진 못했지만, 적어도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오늘이 특별한 날은 아닐지도 모른다. 운동을 했다고, 글을 썼다고 해서 내 삶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첫걸음을 뗐다. 무너졌던 곳에서 다시 일어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해볼 생각이다. 한 걸음씩, 다시 살아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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