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는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으면,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파멸에 이르는 그런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모모중>
<모모>는 워낙 철학적이고 분량도 동화치 고는 많은 것이라 생각을 한 번에 담기 어려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정리해 보았다. 앞서 올린 글은 모모의 앞부분 중심이고 이 번 글은 뒷부분중심으로 느낌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모모는 호라박사를 만나고 원형극장으로 다시 돌아욌다.
호라박사와 함께 있는 시간은 하루였지만 모모가 가는 곳은 1년이 지나 있었다.
다행히 거북이도 함께 와 있었다.
그동안 모모가 있는 곳은 많이 변해 버렸다.
회색신사가 사람들의 시간을 몽땅 훔쳐가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 버렸다.
모모의 절친 기기와 베포마저도 그들의 손아귀에 넘어가 버렸다.
기기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로 부와 명성을 얻게 되었다.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기기는 성공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는 자유가 없어졌다. 오늘날의 유명한 연예인처럼 매니저들이 짜주는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고 번거롭게 하는 팬들도 그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는 시간에 쫓겨 점점 더 사기꾼이 되어 갔다.
도로 청소부 베포는 회색 신사들이 처음에는 손아귀에 넣기 어려웠지만 베포도 결국 회색신사들에게 굴복하고 만다.
모두들 자신들 본연의 순수함을 잊어버리고 시간의 노예가 되어 기계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큰 성공을 위해...
회색 신사들이 제일 어려웠던 것은 어린이들을 자신의 계획대로 하는 것이었다.
어린이들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어른들을 이용한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어린이의 연약함을 이용한 것이다.
아이들이 회색 신사를 막기 위해 벌이는 일들을 생각하며 어른들 스스로 자책하도록 만든다.
“현대 생활은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낼 여유를 허용하지 않으니까요.”
“아이들을 쓸모 있고 유능한 사회의 일원으로 교육시켜야 합니다.”
“아이들은 미래의 인적 자산입니다. 미래는 제트기와 인공 지능의 시대지요.....”
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탁아소가 만들어져 아이들을 감독하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신나고,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일들은 서서히 잊어버리게 되었다. 회색 신사의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모모를 찾아왔던 모든 사람들이 회색 신사의 계략에 넘어가 정신없이 바쁘게 살게 되었다.
자신들이 일하는 간판들도 ‘빠른 레스토랑’ 손님들도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버럭 거린다.
일중독자들이 되어 버렸다. 진정한 목적도 꿈도 없이 기계처럼 일한다.
느리다는 것은 죄악이다. 표정도 평온해 보이지 않는다.
미하엘 엔데 작가가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인공지능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을 한다. 이 책을 1970년에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당시 독일은 인공지능 시대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모모는 호라박사와 함께 친구들을 구하기로 한다.
모모를 돕기 위해 나타난 동물은 거북이다. 왜 거북이 일까?
거북이는 느림을 상징하는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 회색 신사들이 자신들의 시가를 지키려고 서로 죽이는 모습들이 나온다. 아무도 양보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악인들의 모습이다.
러시아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한 마리의 독사가 다른 독사를 잡아먹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 것처럼 이들은 서로 싸우다 결국 모두 사라진다.
이 동화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책에 나와 있는 일들이 현재의 모습과 너무 많이 닮아 있어서 소름이 끼쳤다.
현재 우리나라가 회색신사들의 계략에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점점 더 바빠지고, 성공하기 위해 기계처럼 일하고 있으며 부모들은 아이를 돌볼 여유가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사교육에 많은 걸 투자한다.
올해부터 늘봄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초등학생 1학년을 아침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학교에 가두어 두겠다고?
이게 과연 아이들의 정서에 좋은 것일까?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회색신사들은 스마트폰 계략을 사용하는 것 같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몇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 버린다.
어른들은 자신의 일을 하게 위해 아이들을 스마트폰에 맡긴다.
이미 중독된 아이들은 손을 쓸 수가 없게 돼버린다. 몇 년 전에 스마트폰을 너무 사랑하는 아이들 때문에 엄청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어느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서유럽 사람들이 애정결핍이 많이 심하다고 한다. 유럽사회도 맞벌이를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아이들에게도 자립심을 키우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그로 인해 여러 가지 결핍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님의 따뜻한 품에서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부모님이 해주시는 따스한 음식을 먹는 것, 그리고 생명과 자연을 사랑하도록 하며,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고 창의력을 키워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모모의 원형극장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놀았듯이... 물론 거북이처럼 지나치게 느린 것은 공동체에 피해를 줄 수가 있다. 시대가 변하는 것은 받아들여야겠지만 적어도 어린 시절만큼은 가족들과 따스한 정을 나누고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쌓아 놓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