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난이 주는 비참함

단편소설 [베지터블 마스터] 中 4화

by 김서해


몇 주 뒤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


엄마는 정신이 반쯤 나가 울지도 말할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집이 팔리기 전, 가전제품 중 돈 될만한 것들에 빨간딱지가 붙었고, 아빠는 밥솥과 냉장고, 세탁기 같은 것들을 배우자 우선 매수로 지켜냈다. 자기가 어제까지 주걱으로 밥풀을 긁어내 푸던 밥솥을 채권자들 사이에서 돈을 내고 다시 구매해야 했을 때 아빠 마음은 어땠을까.


아빠가 치욕과 상실감과 굴욕감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건져내온 것들로 우리는 밥을 지어 먹고 빨래를 했다.


우리 넷은 재개발을 앞둔 동네의 40년 된 빌라로 이사했다.

월세였다.

집주인 할머니는 아랫집에 살고 있었다는데 사는 내내 한번을 마주치지 못했다.


기존에 쓰던 살림은 이사 오던 날, 8할을 버렸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의 302호였던 우리의 집은 이사 오기 전 쓰던 엄마,아빠의 커다란 돌침대가 현관문으로도 창문으로도 들어올 수 없어 길가에 내버려야 했다.


동생은 고등학교 졸업 후 아빠와 조그마한 채소 가게를 시작했다. 셋째 삼촌이 사정을 듣고 보증금 500만 원을 빌려주어 사람이 다니지도 않는 저 구석 길가에 아주 작고 작은 7평짜리 가게를 얻었다.

둘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오후 6시에 퇴근하며 주 6일을 매일같이 일했다.

그들의 허름한 일곱 평짜리 가게는 절벽 끝에서 움켜쥔 뿌리였기에 한 여름에도 한 겨울에도 문을 닫지 않았다. 쉬는 날에도 꼭 한두 시간씩은 나가 파 한 단이라도 팔고 돌아왔다.


엄마는 엄마대로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일을 하러 다녔다. 나는 나대로 졸업 후 취직하고 회사에 다녔다. 집을 팔고 이사를 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빚이 많아 점심시간에 밥을 먹지 않고 근처 은행으로 대출을 알아보러 다녔다. 왜 같이 밥을 먹지 않느냐는 회사 동기의 물음에 다이어트를 한다고 했다.



가난이 주는 비참함을 피부로 느꼈던 순간들은 비단 외식을 할 수 없거나 갖고 싶은 것들을 소망할 수 없을 때가 아니었다.

우리는 빌라에서 살던 7년의 여름과 겨울 동안 계절을 계절 그대로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았고 서로 마주쳐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집이 좁아 조금만 움직여도 어깨가 스쳤는데 그것이 매우 짜증이 났다.

서로가 항상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고 앞으로의 일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들이 없었다. 미래를 계획하거나 꿈꾸는 것이 사치인 나날들이었다.


온수가 잘 나오지 않던 화장실은 창문틀이 나무로 되어있어 한 겨울엔 입김이 났다. 바깥과 다름이 없던 그곳이 너무 추워 우리는 점점 씻지 않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습관과 삶의 지향점이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려 내가 누구인지, 나는 매일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는 시간 들이었다.



아빠는.

아빠는 그 무렵 아주 많이 늙어버렸다.


바깥에서 햇볕을 많이 쬐어 피부도 검어졌다. 흰머리도 많이 났고 한 겨울 바깥에서 터버린 얼굴과 손등이 멀리서 봐도 거칠거칠해 보였다. 유난히 하얀 피부의 동그랗고 반질반질하던 깐 밤 같던 동생도 아빠와 같아졌다. 그런 둘의 모습을 매일 봐야 하는 엄마는 생기가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죽은 사람의 그것이 항상 엄마의 콧구멍 앞에 붙어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빠는.

무너져 내리는 구덩이 속에서도 아빠는, 자식들을 보면 가끔 웃었다.


양배추 박스를 스무 박스씩 나르느라 허리가 터져버린 다음 날에도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내 발을 두 손으로 문지르며 귀엽다 웃었다. 동생이 일할 때 입는 실밥이 다 풀어진 회색 패딩 주머니에 뜨거운 핫팩을 두세 개씩 데워 미리 넣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