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에게
종종 관계의 덧없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생각한다기보다 떠오름에 가깝습니다. 소중했던 관계가 기억 속의 추억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일들이 잦아졌습니다. 그 순간에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에, 얼마나 공허한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아립니다. 한 사람이 제 곁에서 멀어지는 순간은 왜 항상 실감이 나지 않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선연히 슬퍼집니다. 전부라 생각했던 관계가 아스라이 흩어지는 순간은, 몇 번이 되던 적응하기 어렵더라구요.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거야. 우리는 평생 같이 있자.
라는 말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을 쯤이던가요, 저는 영원과 평생이라는 말이 참 미웠습니다. 그 영원을 기대하고 그 평생에 실망한 제가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다 두리뭉실한 표현으로 오래오래 혹은 그냥 이대로 있자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좀 나아질까 했어요.
우리 오래오래 보자, 우리 오래오래 놀자. 우리는 이대로 있자, 지금처럼 있자.
우리는 평생이라고 하지 말자, 평생을 말하고 사라지는 것만큼 아픈 건 없으니까.
상처받지 않기 위한 나름의 방어기제였으나, 표현을 바꾼다고 의미가 변할까요. 화자가 저인 이상 저는 또 영원과 평생을 말하고 있었던 것을.
어떻게 사람 사이의 온도가 같을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그 온도를 강요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그렇게 얼어버린 인연들이 이제는 조금은 덧없어졌습니다. 덧없다고는 하나 그리워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사실이 제법 속상합니다.
비단 저뿐이 아니겠지요? 어떤 관계든, 끝이라는 것은 공허한 게 맞는 거겠죠?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으시겠지요. 우리 모두는 잃어버린 관계를 하나씩 묻고 살아가고 있겠죠.
잃어버린 마음이 가득 차오를 때, 차라리 관계의 끝이 없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모든 관계가 1막, 2막…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나름의 고통이려나 생각을 하다가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n막은 마냥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마무리합니다. 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질 망상이긴 합니다만, 그냥 당장을 마주하기 싫어 살짝 눈 감은 이의 푸념이라 생각해 주세요. 유독 아픈 인연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마침 듣고 있는 노래 목록에서 Creep이 흘러나옵니다. 날아가버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제가 한심한 걸까요. 그렇담 그런 것일 수도 있겠어요. 아직까지는 제게 그 순간을 그리워하지 않는 요령은 없는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잔뜩 그리고 추억하려 합니다. 그 추억으로 아리고 슬플 때도 있고, 비눗방울을 타고 날아가듯 두둥실한 맑음 마음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행복이었으니 저는 지금으로 만족하려 합니다.
E, 당신은 영원이라는 말을 많이 꺼내셨습니다. 무던히도 많이 평생을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런 당신을 참 좋아했습니다. 제 결핍을 채워주시는 듯하여. 당신이 평생을 말하실 때면 두 눈을 감고 그저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당신도 지금 누군가를 그리고 계십니까? 그 누군가가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 누가 되었든 좋습니다. 떠올릴 수 있는 행복이 있다는 것이.
무탈히 지내고 계십니까? 저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습한 날씨에 부디 영향을 받지 않길 바랍니다. 보송한 마음으로 당신을 그리고 있겠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무탈하시길.
+
영원은 사라지는 모든 것들 앞에서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낸 반대 개념이라는 말을 어디서 읽었어요. 끝이 있으니 끝이 없음을 상상하게 된 것이라구요. 존재가 아닌 두려움이 만든 언어라는 것을.
사라지는 것이 싫어 영원을 만들었다니 우리는 모두 영원을 꿈꾸고 있나 봐요. 그것이 관계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