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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인정

by 차랑

사람은 이상하고 사랑은 모르겠어.


무려 3년 전에, 무척이나 좋아하던 노래의 가사가 사무치게 와닿는 요즘이다. 사람은 참 이상하고 사랑은 아무것도 모르겠다. 왜 사람은 자기 마음 하나 마음대로 못해서, 쉬운 길 놔두고 어려운 길만 선택하는지. 강철 같던 마음의 벽도 꾸준하고 아기자기한 사랑은 어떻게 햇살처럼 그렇게 녹일 수 있는지. 참, 사람 일은 어떻게 이리도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니, 아예 감히 알려고 하지도 못하겠다.


항상 설레는 연애만을 해온 나였다. 설렘이라는 감정 없이는 연애를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어떻게 설레지도 않는데 좋아한다고 착각할 수 있지? 물론 이 문장은 나에게 아직도 유효하다. 편한 친구와 연애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야. 어떻게 그게 가능해? 나에겐 사랑보다는 우정이 더 강력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몽땅 평생 내 곁에 두고 싶어. 그러니까 네가 나랑 이렇게나 잘 맞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재미있으면, 그렇다면, 그냥 친구로 평생 내 옆에 남아줘. 우정은 사랑보다는 평생을 약속할 수 있는 단어니까. 난 그렇게 믿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참 이상하지. 왜 자기한테는 기회도 주지 않냐며 이건 완전히 불공평하다는 너의 진지한 투정 아닌 투정에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 거야.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에 눈빛이 흔들리게 된 거야. 너는 외적으로 내 스타일이 전혀 아니고 나는 너에게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는다는 내 날카로운 말에도, 너는 상처 하나 받지 않고 특유의 높은 자신감으로 “그럼 나한테 invest해. 나 열심히 할 자신 있어.”라고 말했지.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일어나 gym에서 2시간씩 운동하고, 먹고 싶은 타코도 참아가면서 내가 널 처음에 봤을 때보다 10kg는 빠진 것 같은 모습으로 매일 빨간 테슬라를 타고 날 데리러 왔어. 너도 참 너다. 내가 그렇게나 밀어냈는데. 우린 친구라고 그렇게나 선 그었는데.


그래서였을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스타일 하나 아닌 너. 절대 만날 수 없을만큼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너의 모습이 점점 만날 순 있을 것 같을 정도로 괜찮아보이고, 너의 조금은 허술한 한국어로 하루에도 수십번씩 하는 플러팅이 웃겼다가도 이내 안쓰러워지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말투를 외국어인데도 기억해서 바꾸려는 너의 모습이 귀여워보이고,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널 좋아했다는 그리고 좋아하는 여자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나처럼 어렵고 별난 또라이를 좋아해서 얼마나 고생이니. 나는 나쁜 사람이라서 아무런 책임 없이 너의 사랑만을 받는 이런 애매한 관계가 좋다는 내 말에, “나도 나쁜 사람이야, 그래서 너 좋아.” 라며 웃는 너.


생각해보면 너만큼 나랑 잘 맞는 남자 애를 보지 못했던 건 사실이야. 6개월간 만났던 내 전남자친구보다도 네가 더 편하고, 네 앞에서 내가 나보다도 더 나다워. 즐겁지 않은 순간이 없고, 네가 뭘 하지 않아도 웃겨. 다방면에서 넓고 얕은 지식을 갖고 있는 네가, 하고 싶은 게 뚜렷한 네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말할 때 초롱초롱한 네가, 다양한 배경환경과 언어를 갖고 있는 네가,


내가 너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나에겐 의미가 큰지 너는 알까. 점점 녹고 있는 내 마음을, 너는 절대 모르겠지. 그래도 너는 나에게 또 말하겠지. “나랑 만날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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