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를 열두 개, 보면대도 열두 개. 그럼 연주자도 열두 명 나올 텐데, 두 명만 나온다. 무대 오른쪽과 왼쪽 의자에 떨어져 앉는다. 왜 안 나오지? 하는 청중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한 연주자가 건너편 연주자에게 어깨를 추어올리며 눈길을, 무대 위, 자신들이 좀전에 나온 출입구에 준다. 나도 모르지...하는 대답으로 건너편 연주자도 어깨를 올린다.
그들 언어를 보면서 나는, 저게 실수인가 설정인가, 재미와 불안이 섞인다.
잠시 후 두 명의 연주자가 손에, 기타 대신 와인이 담긴 병과 유리잔을 들고 나타나서는 그 두 명에게 잔을 건네고 와인을 따라준다.
오홋. 설정이군, 하는데 우르르 나머지 연주자들이 들어선다. 자리에 앉고, 잔을 들고 서로 서로 잔을 채운다.
이런. 내 집 남자가 안 보인다. 뭐야, 이런 때 배탈이라도 난 거야. 나, 참. 하는데 그가 나온다. 손에 빈 잔을 들고 나온다. 자리에 앉지 않고 청중 쪽을 향하더니 빈 잔을 들어올린다. 같이 쭈욱 들이키시죠, 하는 몸짓인데, 표정은, 이거, 참, 쑥스럽군요,이다. 음, 저 덜 만들어진 표정, 내 집 남자 맞군. 난 안도와 자부심을 섞는다.
예수의 열두 제자도 아니고, 최후 만찬도 아닌데, 열두 남자가 챙 챙 챙 술잔을 부딪으며, 자네는 북을 치소, 내 소리하리다 제스처로 기타를 치거니 받거니 한다.
치다가, 인생 뭐 별거 있나 하는 투로 바닥에 놓인 술잔을 들어 건배를, 옆 동료랑 하기도 멀리 있는 동료랑 허공에 대고 하기도 하며 후루룩 폴짝 술을 마신다.
어,어, 내가 아는 저 남자는 한 모금에도 얼굴에 노을이 퍼지는데, 하는데, 과연 그렇다. 음. 막 가자는 거지. 맛 가자는 거지. 좋아, 좋아. 하는데.
연주는 무르익는다. 밀 익는 마을,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들.
친구는 조금 울었단다. 무대 위, 내가 키운 남자의 매력에 매혹되어서. 동시에 내가 그를 어떻게 길러 냈나가 파르르 지나가서.
뭐, 나는. 그럴 새가 없었다. 앞 연주가 따분해서, 따분한 주제에 쉬는 시간도 안 주고 줄창 한 시간을, 둘씩 짝지어서, 따분하시다고요? 그럼 내내 그러십시오, 투로 연주한 게 얄미워서, 그러다가 마지막 순서인 '합주'가 '같이 술 마시는'것인 게 천만다행이어서 그럴 짬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