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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trainer Apr 16. 2024

해마다 봄이 되면

나에겐 해마다 봄이 되면 어머니 생각으로 몸살을 앓고, 어머니와 닮은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따라가서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오늘 거리에서 어머니와 꼭 닮은 노인분을 보고 한참을 따라가다가 묻었던 감정이 솟구쳐 주저앉고 말았다.

1997년 봄,  하는 일이 조금씩 기울어져 갔다. 그 무렵 내가 재산을 처분하여 고향을 뜰 거라는 이상한 헛소문이 돌았는데, 그 소문을 듣고 어머니가 생을 비관하여 집을 나가셨다. 만사를 제쳐두고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관련된 연고지 모두를 미친 듯 찾아 헤매다 성과 없이 빈 손으로 돌아오는 길, 활짝 피어난 봄꽃들이 큰 슬픔으로 다가와 목놓아 울었었다.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정 씨 집안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최 씨 집안으로 출가했으나 26살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다. 깊은 시름 속에 방황하던 어머니는 당시 가난한 노총각인 12살 많은 아버지를 만나 재혼을 했다. 그 후 병을 얻어 큰 수술을 했지만 늦게 둔 우리 5남매를 키우느라 아픈 몸으로 사시사철 쉬지 않고 일을 하며 고생하셨다.

아들이 없어 근심하던 어느 날 원추리를 지니면 아들 낳는다는 얘길 듣고 30리 길을 날아가듯 다녀왔다고 한다. 그 정성의 효과인지 43살 늦은 나이에 나를 낳았다. 어머니는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분이어서 우리들은 사랑받는지 잘 모르며 자랐는데, 내가 입대했을 때 달력에 975일 되는 전역 날짜를 표시해 놓고 날마다 지워가며 나를 기다리셨다고 한다.


어리석게도 나를 의지삼아 남은 생을 보내려 했던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리지 못하고 말년마저 아픔으로 끝맺게 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예뻐하시던 조그만 우리 애들이 성인이 됐고 고생 끝에 나도 다시 자리를 잡았지만, 어머니가 나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는 죄책감은 갈수록 커져 간다.
얼마 전 실종 상태로 있던 어머니 호적을 법원의 선고를 받아 정리했다. 혹시나 하는 맘으로 20년을 기다리다 신청한 것이었지만, 처리가 완료 됐다는 담당자의 문자를 받고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아, 불효의 이 무거운 짐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야 하나? 슬프면서도 어머니가 너무도 보고 싶은 요즘이다. 꿈에서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술에게 부탁해야 할 밤이다. (2018.5.6)

(1997년 3월 시골집에서 아버지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했던... 아프게도 이 사진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그해 봄 어머니를 잃고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봄꽃들이 누군가에겐 슬픔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올해도 봄이 되니 어머니 생각에 감정이 파도를 친다. 어머니를 찾아 헤매다 피어난 봄꽃들에 밀려든 그날의 커다란 슬픔... 봄과 어머니에 대한 내 기억은 그때에 멈춰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무뎌질 만도 한데 왜 그리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봄꽃에 맞춰 올해도 몸살이 왔다. 작년엔 미칠 듯한 그리움으로 며칠을 방황하며 내리는 비에 젖은 몸이 되고서야 진정되었는데, 올해는 3일을 아팠으니 비교적 잘 넘어간 듯하다. 4월이면 해마다 앓게 되는 몸살, 슬프지만 어머니가 당신을 오래 기억하라고 남기신 선물로 여기며 감사한다. 그리고 이제는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련다. 내가 불행한 것보다 행복한 것이 어머니가 원하는 것임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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