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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토 May 13. 2024

[영화] 애프터양(2022)

덕분에 세상이 좀 더 아름답게 보여요


이 영화를 재작년 여름,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었다. 잔잔한 분위기에 감정이 격해지는 장면도 없는 영화임에도,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났다. 양의 기억을 하나하나 열어볼수록 관객인 나도 점점 가족 구성원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나오는데, 새파란 6월의 하늘과 푸른 나뭇잎들이 마치 내가 아직 영화 속에 있는 듯했다. 그 광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사진을 잔뜩 찍었다. 양이 3초씩의 짧은 영상으로 기억을 저장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영화를 보고 나온 순간이 비슷한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 것 같다. <애프터양>은 그렇게 남아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4인 가족의 댄스 경연으로 시작한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이질적으로, 사이버틱하면서 신나는 음악과 함께 가족들이 춤을 추는 모습은, 이 영화를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든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애프터양>의 상징처럼 남은 이 장면, 영화의 얼굴 같은 오프닝 시퀀스를 이렇게 표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애프터양>의 주인공 가족들은 구성원들이 모두 다른 인종으로 이루어졌다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가족 댄스 경연에 참가하는 가족들도 전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댄스 시퀀스는 우리가 춤추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지켜보도록,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만약 다른 방식으로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표현했다면 이만큼의 임팩트는 없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펼쳐질 가족의 이야기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영화는 안드로이드 ‘양’의 기억을 통해 가족에 대해,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양이 동생 미카에게 그녀의 현재 가족과 중국인으로서의 뿌리를 접목에 빗대어 알려주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다른 나무에서 온 가지를 접목하면 새롭게 이어 붙인 나무의 일부로 온전히 녹아든다. 그리고 새 나무만큼이나 그 가지의 기원이 되는 원래 나무도 중요하다. 자신이 태어난 정체성, 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가족의 일원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 양이 미카에게 바라는 것은 그것이었다. 이는 양 자신이 바라는 바이기도, 감독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안드로이드가 등장하고,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영화 중 <애프터양>만큼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영화가 없는 것 같다. 애프터양은 배경부터 희망적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과 꼭 닮은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인류는 안드로이드들을 인간의 노예로 마구 부리거나, 그들을 ‘가진 자들의 특권’같은 소유물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국제 입양아를 위해서, 그들이 사회와 가정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로서 안드로이드를 이용한다. 그렇게 안드로이드는 가족이 된다. <애프터양>의 세계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화합하여 가족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계이다. 안드로이드를 도구로 보는 풍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태도를 극복하고 그들을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데는 ‘기억을 들여다본다’는 과정이면 충분한, 평화롭고 희망적인 세계이다. 기득권층과 싸우고 혁명으로 변화를 일궈내는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이러한 몽글몽글한 이야기가 주는 여운도 좋다. 



가정을 화합하게 하는 열쇠가 된 양의 기억은 짧은 순간순간들을 촬영한 영상과도 같다. 이 ‘기억’이 ‘영화’의 은유로도 보인다. 3초씩의 순간이 모여서 기억이 되고, 그 기억들이 결국 그 사람 자체를 이룬다. 짧은 컷들이 모여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영화가 된다. 양의 기억을 들여다본 제이크가 양의 입장에서 세계를 보게 되고 양을 아들로서 받아들이게 된 것처럼, 영화라는 것도 카메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삶의 태도까지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매체가 아닐까. 그러니 <애프터양>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느릿하게 흘러가지만 매 순간순간에 감독의 의도가 정성스레 담겨 밀도가 높은 영화인 것 같다. 그것들을 하나씩 끄집어내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지 않을까. 다 말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그 많은 하고 싶은 말들을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참 아름다운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양이 세 번의 삶을 거치며 행복한 순간도, 슬프거나 외로웠던 순간도 있었지만 기억으로 남은 그의 삶이 그 자체로 아름다웠듯, 죽음과 이별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다시 봐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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