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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Apr 16. 2024

바흐(Bach)에 관한 간단한 이야기를 해봅시다(1)

바흐의 삶은 그가 살아갔던 5개 도시를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들어가며


이 땅 위에 그리도 많은 위대한 음악가들이 왔다 갔지만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뿐이다. 그런데 바흐의 삶 내지 바흐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면 그가 살아간 궤적을 바탕으로 일정한 시대를 구분하여 논하는 것이 통례인데, 오늘은 바흐의 삶을 구분 짓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내가 아는 한 바흐는 평생 독일을 벗어난 적이 없는데, 이 점에서 그와 동시대를 살아갔던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 등과 같은 독일 음악가들이 영국이나 이탈리아 등지에서 (기간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삶을 영위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뿐만 아니라 바흐의 삶은 독일 내에서도 구 동독지역에 있던 아이제나하(Eisenach), 아른슈타트(Arnstadt), 바이마르(Weimar), 쾨텐(Köthen) 그리고 라이프치히(Leipzig)의 5개 도시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바흐 연구가들은 바흐의 삶을 이들 5개 도시를 기준으로 하여 나누어 고찰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때문에 그 누구라도 바흐를, 또 그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이들 도시의 이름을 집어넣어 "~ 시대"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바흐의 한 도시에서의 삶은 다른 도시에서의 삶과 확연히 구분되는 면이 있음을 고려하면, 바흐 연구가들의 바흐의 삶에 대한 이러한 접근방법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 또한 그의 삶을 이런 시각을 가지고 접근해 보려고 한다.


아, 바흐 또한 연주 여행이나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를 관람하기 위해 뤼벡이나 함부르크 등의 도시들을 찾기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분히 일회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또한 뤼네브르크(Lüneburg)에서 소년 가수로 활약한 적도 있지만 그 또한 정식으로 음악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고 보기 어려운 어린 시절의 일일 뿐이다. 이에 반해 아른슈타트(Arnstadt)에서 활약하다 바이마르로 넘어가기 전에 약 1년간 뮐하우젠(Mühlhausen)에서 오르가니스트로 활약했던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바흐가 뮐하우젠에서 머물렀던 기간이 워낙 짧은 데다가(1년) 음악적으로도 다른 도시에서의 족적과 확연히 구분되는 측면도 거의 발견되지 않아서 그런지 바흐 연구가들은 뮐하우젠에서의 바흐의 삶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뮐하우젠 시대'라는 표현 또한 사용하지 않고 있다.



2. 바흐의 삶의 시대 구분


결국 앞에서 이미 언급한 기준에 따르면 바흐의 삶은 아이제나하 시대, 아른슈타트 시대, 바이마르 시대, 쾨텐 시대 그리고 라이프치히 시대... 이렇게 5개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바흐는 독일의 거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튀링엔(Thüringen, 아래 지도 참조) 주의 아이제나하(Eisenach)에서 태어나 그의 인생의 전반기를 이곳 튀링엔주에서 보낸다.

참고로 독일의 정중앙, 사람으로 치면 배꼽에 해당하는 곳인 니더도를라(Niederdorla) 또한 튀링엔주에 있는데, 니더도를라엔 이곳이 독일의 정중앙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 관하여는 이미 다른 곳에서 글을 써 놓은 것이 있으니, 관심 있다면 아래 사이트를 방문해 보기를...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 바흐 연구가들이 정해 놓은 바흐의 삶의 구분방식에 따라 바흐의 삶에 접근해 보기로 하겠다. 자구.


(1) 아이제나하 시대

아래 사진 속 튀링엔주 지도 맨 왼쪽에 아이제나하(Eisenach)란 지명이 보일 텐데, 바흐는 이곳 아이제나하에서 태어나서 음악가로서 그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이곳에서 성장한다. 그리고 바흐 연구가들은 위대한 음악가 바흐의 음악적 삶이 이곳에서 태동되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시기를 '아이제나하 시대'라고 명명하여 따로 고찰하고 있다. 실제로 바흐는 이곳에서 당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였던 파헬벨(Johann Pachelbel, 1653~1706)의 제자이었던 맏형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Johann Christoph Bach, 1671~1721)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파헬벨의 음악양식과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의 작품들에 접근하게 되는데, 이렇게 보면 이 시기야말로 바흐가 음악적 소양을 쌓아 나가는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2) 아른슈타트 시대

바흐의 음악가로서의 삶은 그가 오르가니스트로 활약했던  아른슈타트(Arnstadt)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아래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른슈타트는 아이제나하에서 4번 고속도로(A4)를 따라 동쪽(오른쪽)으로 달리다 71번 고속도로(A71)와 만나는 지점에서 남쪽(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만나게 된다.


(3) 바이마르 시대

아른슈타트에서의 활동으로 바흐의 오르가니스트로서의 명성이 점차 높아져가던 1708년, 바흐는  바이마르(Weimar)의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자리를 옮시게 된다. 그리고 6년 후에는 궁정악장이 되면서 음악가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꽃 피우기 시작하는데, 바이마르는  아른슈타트에서 71번 고속도로를 타고 북상하다가 4번 고속도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동쪽(오른쪽)으로 달리면 금방 만나게 된다(위의 지도 참조).


(4) 쾨텐 시대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바흐는 지신의 음악가로서의 삶을 완성할 수 있는 여건을 찾아 드디어 튀링엔주를 벗어난다. 그러나 다른 음악가들처럼 오페라나 새로운 형식의 음악에 빠져 이태리 또는 영국 등으로 날아가지는 않았고, 그저 자신의 음악을 완성시켜 나가기에 좋은 환경을 찾아 최소한의 이동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맨 처음 선택한 곳이 튀링엔주 바로 위쪽에 붙어 있는 작센-안할트(Sachsen-Anhalt) 주의 쾨텐(Köthen)이란 도시였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쾨텐은 헨델이 태어난 곳인 할레(Halle)를 지나 9번 고속도로(A9)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달리다 보면 만나게 된다.


(5) 라이프치히 시대

바흐는 쾨텐 시대를 끝으로 세속적 음악에서는 거의 손을 떼고, 종교음악에 전념하게 된다. 이는 바흐가 독일 종교 음악의 성지인 라이프치히(Leipzig)의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Kantor, 음악감독)로 자리를 옮긴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아, 라이프치히는 튀링엔주/작센-안할트주 동쪽에 붙어있는 작센(Sachsen) 주의 서북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주의 경계를 달리할 뿐 쾨텐과 지척에 있다.


* 바흐의 삶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들 5개 도시 중 아른슈타트와 쾨텐에 대하여는 브런치 스토리의 매거진에서 상세히 소개해 놓았으며, 바흐의 삶을 구분 짓는 기준으로 삼고 있지는 않은 도시 뮐하우젠에 대하여서도 매거진에서 상세히 소개해 놓았습니다.


한편 아이제나하, 바이마르, 라이프치히에 관해서는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를 통하여 글을 써 놓았는데, 글이 많아서 링크를 걸어 놓지는 못하고, 주소만 밝혀 놓기로 하겠습니다: blog.naver.com/jbsuh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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