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는 베를린의 뒤를 잇는 명실상부한 독일 제2의 도시 함부르크(Hamburg)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이 위대한 음악가 브람스를 위해 함부르크 시(市)가 한 일이라곤 전쟁으로 파괴된 그의 생가(生家)를 복원하여 브람스 박물관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 일부 책자에 따르면 "브람스의 생가는 1943년 전쟁 중에 소실되어 현재 미복원상태이며, 그 자리에는 기념비 하나만 달랑 남아있다"고도 하는데, 글쎄 독일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태를 고려할 때 (개인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던 현재 함부르크에는 브람스 박물관(Brahms Museum)이 존재하고 있는데, 오늘은 이곳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기로 하겠다. 브람스박물관은 함부르크를 찾는 이들이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 성 미카엘교회(St. Michael Kirche)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두 곳을 묶어 둘러보는 것이 좋다.
1. 외 관
브람스박물관의 겉모습을 사진으로 온전히 담아내기는 쉽지 않다. 보통 이런 식의 얘기를 하면, "브람스 박물관이 너무 커서 앵글 처리가 쉽지 않은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일 터인데, 브람스 박물관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어려운 그 진정한 이유는 오히려 그 정반대이다. 즉, 브람스 박물관은 너무 작아서 이 박물관이 들어있는 건물의 극히 일부분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브람스 박물관'만'을 사진으로 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간에 브람스 박물관의 전경이다. 얼핏 보면 번듯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브람스 박물관은 사진 앞쪽의 초록색 문이 있는 부분이 전부여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박물관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
이처럼 브람스 박물관이 그리 크지 않은 관계로 (조금 과장하여 말하면) 박물관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면이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는 몰라도 내가 브람스 박물관을 찾았을 때에는 보도에 이렇게 피아노를 치고 있는 브람스의 모습이 담긴 입간판을 세워 놓고 있었다. 덕분에 "아, 저기에 브람스박물관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고 자신 있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는데, 솔직히 이 입간판이 없으면 브람스 박물관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2. 내 부
브람스 박물관 역시 내부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구입하여야 하는데, 아래와 같은 모양을 띠고 있는 입장권 어디에도 가격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내 기억력의 상자 또한 텅 비어있는 관계로 입장료에 관한 정보제공은 불가하니 모쪼록 양해하기를... 아, 입장권에 있는 브람스의 모습은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데, 브람스가 우리가 잘 아는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1878년부터 라고 한다.
브람스 박물관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내 눈을 잡아 끈 것은 빈(Wien)의 브람스의 묘에 있는 것과 비슷한 모습의 브람스 흉상이었다(더 정확히 말하면 박물관 일층에는 이것을 제외하면 전시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여행 중 내 사진을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함부르크에서 내 가이드 역할을 해주신 분의 도움을 얻어 사진 한 장을 남겼다. 한때 꽤 오랫동안 그것도 제일 좋아하던 브람스의 흉상 앞에서.
흉상 뒤로 나있는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면 2개의 전시실을 만나게 되는데, 제1전시실은 서가와 책상 그리고 피아노 한대가 전부인 아주 작은 공간이다. 아, 사진 왼쪽에 보이는 피아노는 브람스가 학생들에게 피아노 교습을 할 때 사용하던 것이라고 한다.
아래의 사진 두 장은 너무도 뻔한 사진이어서 설명도 필요 없다만, 제1전시실에 있는 피아노와 보면대를 강조하여 찍어 본 것이다.
제1전시실을 보고 그 건너편에 있는 전시실(편의상 제2전시실이라고 하자)로 넘어왔는데 관광객들의 시선을 한곳에 집중시키게 만들만한 전시물은 별로 없다. 그나마 조금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이 브람스의 데드마스크인데, 데드마스크를 전시하는 것은 이들의 전형적인 전시 방법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문제의 사진 2장인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눈에 띄는 전시물이 없는 제2전시실에서 전시물을 둘러보다 (당시에는) 내용 등에 있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찍어 놓은 것이다. 다만 이 사진들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는 전혀, 정말로 백지보다도 더 하얗게 기억이 없다.
3. 덧붙이기
브람스 박물관에서는 한글로 된 상세한 안내책자(브람스의 생애 등에 관한)를 얻을 수 있는데, 이를 통하여 브람스를 보다 자세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독일어 팜플렛을 우리나라말로 번역하고 이를 박물관에 비치하여 한국인 관광객에게 책자로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은 상당 부분 함부르크 독한 협회(회장 Frau 김- 이름이 밝혀지는 것을 싫어하실지도 몰라서, 여기까지만 소개하는 것으로 한다)의 노력에 기초한 것임을 밝혀둔다. 함부르크 독한 협회의 조직, 역사, 활동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는 팜플렛의 첫 장...
아, 브람스에 대한 관심 있는 친구들의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브람스의 생애를 간략히 소개해 둔다.
1833년 5월 7일 함부르크에서 출생
1847년, 그러니까 14살 때 벌써 피아니스트로 대중 앞에 서다.
1849년, 16살에 들어서는 이 해에 처음으로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주발표.
- 중 략 -
이때부터는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음악가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1871년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이사, 이때부터 그의 빈에서의 생활이 시작되고, 결국 빈에서 생을 마감한다.
1878년 브람스는 멋진 수염을 갖고 있는데, 그 수염을 이때부터 기르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의 브람스는 브람스박물관의 티켓에서 보듯이 수염이 없다)
1879년 명예박사학위 취득. "음악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는 현 독일음악가 중 가장 우수한 음악가"라는 것 을 이유로
1897년 64살을 끝으로 빈에서 사망.
3. 브람스 박물관 밖에서 만나는 브람스
함부르크에서 출생하거나 함부르크를 거점으로 음악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간 음악가들이 많은데, 함부르크시는 음악도시 함부르크의 이미지를 제고하고자 브람스 박물관을 중심으로 새로이 작곡가지구(Komponisten-quartier, KQ)를 조성했다. 그리고 작ㄱ고가지구에 들어갈 작곡가로 브람스, 멘델스존과 함께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