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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Apr 22. 2024

독일에 남아 있는 브람스(Brahms)의 흔적, 그 1

바덴 바덴(Baden Baden)의 "브람스하우스(Bramshaus)"

헝가리무곡, 독일 레퀴엠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음악가인 브람스(J. Brahms, 1833~1897)는 독일 북부의 항구 도시 함부르크(Hamburg)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브람스는 슈만(R. Schumann, 1801~1856))의 소개를 얻어 빈으로 진출한 이래 자신의 조국 독일을 별로 찾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함부르크의 브람스기념관을 제외하면) 막상 독일에서 브람스의 삶의 발자취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브람스의 독일 내에서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곳이라고는 그가 1865년부터 1874년까지 매년 여름에 찾았던 바덴 바덴(Baden Baden)이 유일하다. 한편 브람스가 당시에 머물었던 집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브람스하우스(Bramshaus)"가 바로 그것이다.  


브람스하우스는 계단 위에 위치하고 있어 브람스하우스 바로 앞에는 주차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브람스하우스가 바라다 보이는 길 건너편의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걸어 올라야 하는데, 주차장에 차를 대면, 브람스 하우스(Bramshaus)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길을 하나 건너면 이런 안내판을 만날 수 있는데, 안내판 속에 보이는 모습이 이 주변의 옛날 모습인가?

위 사진 속 안내판 옆으로 나 있는 계단에 들어서면 하얀 집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집이 바로 브람스하우스이다.

그리고 계단을 조금 더 오르면, 우리가 사진에서 많이 보았던 브람스하우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여러 번 보아서 내 머릿속에 또렷한 그 모습과 정말 똑같다.

몇 발자국을 더 뗀 후에 다시 사진 한 장을 남긴다.

벽면에 브람스하우스(박물관)의 개관시간과 출입구 등에 관한 설명이 붙어 있는데, 특이하게 화요일과 목요일은 휴관이다. 다만, 밑에 쓰여 있는 글씨를 보면 개관시간이 아니어도 71172로 전화를 해서 말만 잘하면 관람이 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 브람스가 1865년부터 1874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브람스는 이 건물을 여름별장 개념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아래 사진 속의 표지판 중간 부분에 보이는 "Sommerwohnung"이라는 단어 때문인데, Sommerwohnung이란 단어는 Sommer(여름) + wohnung(주거)의 합성어이다.    

마냥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던 하얀색 건물을 돌아서면 조금은 초라한 벽면이 나타나는데, 건물 끄트머리에  불빛이 비쳐 나오는 곳이 입구이다.

입구 오른쪽 위에 "브람스가 이 집에서 1865년부터 1874년까지 살았다"라고 적혀 있는 동판이 붙어 있다.

막상 브람스하우스 내부는 그리 볼 것이 많지는 않다. 아주 좁은 공간에 그저 사진 몇 점과, 흉상, 그리고 브람스가 실제로 사용했는지 여부에 대한 특별한 설명이 없는 가구가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침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두었고,

이어서 거실로 생각되는 공간을 2장의 사진으로 나누어 담아 두었다.

자, 지금부터는 브람스하우스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며 남긴 사진을 위주로 브람스하우스 내부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하겠다. 우선 이것은 브람스의 트레이드마크인 수염으로 뒤덮인 그의 흉상.   

브람스는 - 우리가 지금 그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는 조금 달리 - 당대에는 물론이고 심지어 죽은 후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러한 이야기는 내가 브람스와 관련된 곳을 몇 군데 돌아다녀 본 결과 받은 느낌에 기초한 것이다. 실제로 다음 주에 이야기할 함부르크의 브람스기념관 또한 그가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2층짜리의 작은 집에 다소 초라하게 마련되어 있고, 그가 말년을 보낸 빈에는 아예 브람스를 만날 수 있는 독자적 기념관조차 없이 그저 하이든 박물관의 한 구석에 방 한 칸을 간신히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면 이곳 브람스하우스는 그래도 상당히 번듯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도 전시물들은 그리 눈길을 꼭 던져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고 말할 만한 것은 없고, (좋게 말하면 그의 소박한 풍모를 반영하고 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저 잔잔하다. 브람스의 모습이 담긴 자금마한 동상이 왼편에 두 개 보이고, 이런저런 소품들이 있을 뿐. 제일 오른쪽의 사진은 멘델스존인데, 음악가로서의 두 사람의 삶이 공존했던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 그러고 보니 라이프치히(Leipzig)의 멘델스존 하우스에서 브람스가 "내가 헤브리덴 서곡과 같은 작품 하나만 쓸 수 있다면, 내 모든 작품을 기꺼이 내놓겠다"라고 멘델스존을 극찬했던 말을 읽었던 것이 생각난다.    

유럽 사람들이 즐겨 만드는 데드 마스크가 있는데, 그 오른쪽으로 손도 보인다. 글쎄 유럽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많이 보아서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이런 것을 만나면 여전히 섬찟하다.

아무런 설명이 없어서 자신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브람스의 자필 악보로 추정되고. 

이곳에 있는 전시물 중 가장 재미있게 본 것은 이것이다. 브람스가 잠깐 지휘자로 활동했던 시절이 있었는데(1893/1894년), 이 시절의 브람스 모습을 Willy vom Beckerrath란 사람이 간략히 스케치를 해두었던 것이다. 아, 이 그림은 액자 없이 판매하고 있는데, 관심이 있다면 사두는 것도 괜찮을 듯도 하다.   

이것은 독일 전역에 있는 음악가들의 기념관(박물관) 안내도인데, 북쪽의 함부르크에 브람스기념관이란 글씨가 보인다.

이 두 사람을 빼놓고는 브람스를 이야기할 수 없는데, 바로 슈만(R. Schumann, 1810~1856)과 클라라(Clara, 1819~1896)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브람스를 빈인의 음악계로 소개해 준 사람이 슈만인데, 브람스는 유럽 사교계를 주름잡던 그의 부인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주위를 항상 맴돌았다. 이로 인하여 추측할 수 있는 이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말하기는 그렇고, 궁금하면 '클라라'라는 영화를 보기를...

브람스하우스인데, 브람스의 사진보다 슈만과 클라라 사진이 더 많다. 그러고 보니 브람스는 사진도 별로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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