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대한민국의 산과 바다를 접수했던 노래 "Proud Mary"
1. 1995년, CCR이 돌아왔다.
1995년은 Pop, 특히 록 밴드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정말 황홀한 한 해였다. 연초부터 하드 록의 전설적 그룹인 영국 밴드 딥 퍼플(Deep Purple)이 - 비록 기타리스트가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 에서 스티브 모스(Steve Morse)로 바뀌었지만 - 초기 멤버 그대로 내한 공연을 해서 하드 록 축제의 서장을 열어젖히더니, 연말에는 창단 멤버인 베이시스트 스투 쿡(Stu Cook)을 중심으로 20여 년 만에 재결성된 미국 록밴드 CCR의 내한공연이 세종문화회관에서 펼쳐졌다. 이 때문에 1995년에는 나도 덩달아 바빠졌고, 금전적 출혈 또한 극심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세종문화회관은 클래식 공연 위주로 운영되었고, 대중가수들에게는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세종문화회관이 전설의 록그룹 CCR의 20년 만의 귀환을 축하하며 그들의 내한 공연을 위해 문을 열어 주었는데,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 벅차오른다. 세종문화회관 외벽을 온통 뒤덮을 크기의 붉은색 휘장에는 아무런 설명 없이 CCR, 이렇게 단 세 글자만 크게 쓰여 있었는데, 그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그래, CCR... 이것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의 주절거림은 그야말로 사족에 불과한 것.
그날의 감동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36살의 내가, 공연장을 찾은 관객 중 가장 어린 축에 드는 생소하기만 한 공연장의 풍경이라니. 청바지를 차려입은(?) 미중년의 관객들은 공연 내내 자리에 앉아 있기를 거부하며 열정적으로 1970년대를 재연해 갔다. CCR을 매개로 20년 전 당신들의 모습을 토해내신 것이다. 도대체 이 분들이 그동안 이 열정을 어떻게 달래 가며 살아오실 수 있었는지가 의심스럽기만 할 정도였다. 그래, 이번 글은 1993년 록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헌액된 전설, CCR을 쓰련다. 그날의 감동을 추억하면서 말이다.
2. CCR, 어떤 그룹인가?
(1) CCR, 밴드의 결성
CCR의 태동은 1945년생 동갑내기 중학교 친구 3명, 즉 존 포거티(John Fogerty), 스투 쿡(Stu Cook), 더그 클리퍼드(Doug Clifford)가 1959년에 결성한 The Blue Velvets에서 시작된다. 겨우 14살의 중학생들이 리드보칼, 베이스, 드럼으로 이루어진 밴드를 결성했던 것들만 봐도 이들의 음악적 재능은 대단했던 것 같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존 포거티의 형 톰 포거티(Tom Fogerty, 1941∼1990)를 멤버로 영입하여 4인조 밴드로 재편하면서 "Have You Ever Seen The Rain"을 발표하고, 1963년부터는 Golliwoges란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이어 1964년에는 샌 프란시스코의 Fantasy Records와 정식으로 앨범계약을 체결하기도 했고.
(2) CCR이란 이름에 관하여
그러던 1967년, 이들은 밴드 이름을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름인 CCR로 다시 한번 바꾸고 비상을 시작하는데, 이때 주력멤버들의 나이는 겨우 22살이었다. 아, CCR(C.C.R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은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머리글자들을 따서 부르는 이름인데, 문제는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이란 풀 네임이 지어지게 된 배경 내지 의미에 대하여는 설명방식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정설이라 여기는 것은 조금은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를 간단히 이야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Creedence는 존 포거티의 친구 이름인 Credence Newball에 'e'를 추가하여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단어 Creedence를 네이버의 영어사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긍정적인 뉘앙스)'을 뜻하며,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쉬운 명곡들을 많이 불렀던 밴드인 CCR의 이름에서 비롯된 신조어(新造語)라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Clear Water는 TV 광고 속 Olympia Beer의 선전 문구에 나오는 '순수한 물'에 꽂혀서 밴드의 이름에 사용하기로 마음먹었고, 마지막으로 Revival은 4명의 멤버가 다시 뭉쳤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덧붙여졌고.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이란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다.
Clearwater와 Revival이란 단어에 착안해서 CCR이라는 이름이 '더럽혀진 물을 정화해서 재공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설명도 있기는 하다.
3. CCR의 음악과 음악활동
(1) CCR의 음악적 뿌리, Rock
1950년대 후반부터 대중음악에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생겨나서 유행하기 시작하는데, 재즈와 블루스에서 분리된 이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사람들은 Rock이라고 부른다. CCR이 그 기원을 1959년에 결성된 3인조 밴드 The Blue Velvets에 두고 있음을 생각하면, Rock이 그들 음악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CCR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면, 흔히 Rock 앞에 늪지대를 의미하는 'Swamp'를 붙여 Swamp Rock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조차 막상 Swamp Rock의 실체를 꼭 집어 이야기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루이지애나 주 남부의 아카디아나 지역에 토착된 음악 장르라거나, Southern Rock으로 Blues와 Jazz를 가미한 음악이라거나, 그도 아니면 흑인들의 영가인 Jazz와 당시에 유행하기 시작한 Rock을 버무려 만들어진 Country Rock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이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묘한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바로 지역적으로는 미국 남쪽(서부)에 기원을 두고 발달했고, 흑인 영가인 재즈와 백인들의 록이 녹아들어 가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어려운 이야기인데, 사실 CCR의 음악을 즐기기 위해 이런 것을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2) 신화에 비견되는 CCR의 음악활동
1967년에 밴드 이름을 바꾸고 의욕적으로 출범하였지만, 존 포거티와 클리포드가 군대에 가게 되는 악재가 발생하면서 CCR은 음악활동을 잠시 중단하게 된다. 그리고 1968년, 멤버들이 군대를 마치고 복귀하면서 1집 앨범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을 발표하는데, 이 앨범에 수록된 "Suzie Q"가 미국 내 인기가요 순위 11위에 오르면서 비로소 CCR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69년, CCR은 그야말로 포텐을 터뜨린다. 우선 연초에 문제적 앨범 'Bayou Country(2집)'를 발매하는데, 여기에 수록된 "Proud Mary"가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CCR의 최대의 히트곡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불과 7개월 후 Bayou Country의 이러한 대히트에 만족하지 않고 3집 앨범 'Green River'를 발매하는데, 이 앨범으로 CCR은 드디어 처음으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앨범에 수록된 "Bad Moon Rising"은 또 한 번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랭크된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CCR은 또 한 장의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CCR의 대박 행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 해인 1970년에 발매한 5집 앨범 'Cosmo's Factory' 또한 미국 앨범차트에 1위에 오르고, 이 앨범에서 "Who’ll Stop the Rain"과 "Long As I Can See the Light"의 2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Cosmo's Factory는 영국에서도 앨범 차트 1위에 올랐고, 이에 힘입어 CCR은 첫 유럽 순회공연에도 나선다.
그러나 아쉽게도 CCR의 신화는 여기까지로 끝이 난다. 1971년 음악적 견해 차이로 톰 포커티가 밴드를 떠나고, 1972년 마지막 앨범을 발표한 뒤 해체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짧은 기간 동안 CCR이 이뤄낸 성과는 실로 대단했다. 비록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곡은 없지만 무려 5곡을 2위에 올렸고, Top 5에는 7곡을 올렸다. 그리고 앨범차트 1위에는 두 번이나 올랐고. 실질적 활동기간을 고려할 때 록의 역사에 있어 CCR 만큼 뚜렷한 족적을 남긴 밴드는 찾아보기 어렵고, 록큰롤 명예의 전당의 한 자리는 당연히 이들의 몫이었다.
4. CCR의 명곡 퍼레이드
(1) Proud Mary
영국과 미국에서 발원한 록은 1960년대 말부터 고고란 이름으로 세계를 강타하기 시작하는데, 이런 고고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당시만 해도 지금 같지 않아서 세계 음악의 추세와 우리나라의 그것은 적지 않은 시차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첫 장을 바로 내가 이야기하는 CCR의 "Proud Mary"가 장식한다. 1970년, 대한민국의 산과 들 그리고 바다는 "Proud Mary"가 접수하는데, 내가 기억하는 한 당시 "Proud Mary"는 그야말로 비교불가의 One Top이었다. 당시의 "Proud Mary"의 열풍과 비교할 수 있는 상황은 "Proud Mary"의 인기가 잦아들 때쯤 혜성처럼 등장해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네덜란드 록밴드 Shocking Blue의 "Venus", 그리고 계속해서 유럽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던 미국의 자존심을 살려 준 립스 잉크(Lipps Inc)의 "Funky Town" 정도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훗날 조영남이 "물레방아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부르기도 했던 그 노래 "Proud Mary"를 다시 한번 들어 보자.
여성가수로서 파워를 이야기할 때면 첫손가락에 꼽힐만한 티나 터너(Tina Turner, 1939~)가 90년대 초에 이 곡을 다시 들고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티나 터너 조차도 파워로는 도저히 CCR에 범접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편곡을 해서 발표했는데, 글쎄 내 마음속에 CCR의 자리가 워낙 커서 그런지는 몰라도 CCR의 그것과는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물론 전문적으로 음악을 하시는 분들은 다른 평가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내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그건 리바이벌이 아니라 원곡을 훼손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 싶다.
뿐더러 도입부의 쓸데없는 주절거림은 후반부를 듣고 싶은 생각마저 사라지게 할 만큼 최악이다. 내가 생각하는 음악, 그것은 음식만큼이나 깔끔해야 된다. 음식에 비유하면 일식집에 회를 먹으러 갔는데 즈끼다시(미안, 일식을 얘기할 때 이만큼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단어가 없다)가 과도해서 그를 먹다 보면, 그것이 입속에 잔 맛으로 남아 있어 메인 메뉴인 회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티나 터너의 노래 도입부에 나오는 주절거림은 나에게는 정말 먹기 싫은 곁들이찬인데,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니 티나 터너 버전의 "Proud Mary"를 들어 보기로 하자.
(2) cotton Fields
사실 "Proud Mary"가 초등학교 시절에 그 의미도 모르면서 마냥 따라 부를 정도로 좋아했던 곡이고, 이를 계기로 CCR이란 그룹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먼저 이야기했을 뿐, 노래가 갖는 강력한 이미지로만 치면 그에 전혀 꿀리지 않는 곡이 있다. 어쩌면 내 화류계 생활 40년간 줄잡아 100 여번은 불렀고도 남을 곡, 그것은 바로 "cotton Fields"다. 도입부의 가사(~베이비 베이비 마마 하마~)와 리듬의 반복이 주는 묘한 중독성 때문에 한 번만 들으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심지어 흥얼거릴 수 있게 되는 마력을 지닌 노래 "cotton Fields"이다.
국내에서의 인기 또한 대단했는데, '하사와 병장'이란 남성 듀오는 목화밭이란 이미지만 차용하여도 자신들의 노래를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CCR의 "cotton Field"와는 전혀 다른 노래 "목화밭"을 발표하기도 했다.
(3) Susie Q
"Susie Q" 또한 CCR을 이야기할 때 빼놓으면 많이 섭섭해할 곡이다. 물론 CCR 본인들의 창작곡이 아니라 1956년에 Dale Hawkins가 부른 것을 리메이크한 곡이었지만 당시 빌보드 싱글 차트 11위에 오를 정도로 미국에서도 히트를 했고, CCR의 존재를 확연히 부각시킨 곡이니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대단한 히트를 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Susie Q"가 엄청나게 유명해진 것은 전적으로 돌아가신 코미디언 이주일씨에 힘입은 바 크다. 이주일씨 특유의 어눌한 말투와 오리를 연상시키는 기괴한 스텝(춤)이 대한민국을 강타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국민이 "Susie Q"를 외쳐 댈 정도였으니 말이다. 당신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워낙 수없이 많은 코미디언들에 의해 이주일씨의 말투와 스텝이 계속해서 리바이벌되었기 때문에 그 시절을 살아가지 않았던 젊은이들 또한 너무 잘 알고 있는 곡 "Susie Q"를 들어본다.
아, "Susie Q"는 영화 속에서도 꽤 자주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영화로는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2008년에 개봉한 "님은 먼 곳에", 그리고 미국 영화로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1979년작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등이 있는데, 베트남에서의 위문공연 장면에 삽입된 "Susie Q"를 볼 수 있다.
(4) Who'll Stop The Rain, 그리고 Have You Ever Seen The Rain
비(Rain)라는 것은 우리네 감성을 묘하게 자극하는 면이 있다. 60줄에 들어서며 점차 감정이 메말라만 가는 우리네 마음 한구석에도 잔잔한 풍랑을 일으키는가 하면, 아주 드물게는 격랑을 일으켜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 일탈을 꿈꾸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를 옛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가 회상의 늪에 허우적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예술적 감각이 충만한 뮤지션들에게 비는 너무도 훌륭한 오브제가 된다. 그리하여 음악을 하는 수많은 뮤지션들은 그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수많은 '비' 노래를 만들어 냈는데, 그것은 CCR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CCR의 작품 중 비를 주제로 한 노래로는 다음과 같은 2곡이 있다.
그 하나는 1970년에 발매된 5번째 스튜디오 앨범 Cosmo's Factory에 수록되어 있는 "Who'll Stop The Rain"인데, 이 노래는 빌보트 싱글 차트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뿐만 아니라 "Who'll Stop The Rain"은 격주로 발행되는 미국의 대중문화 잡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이 2004년에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곡'에 포함될 정도로 음악성에 있어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문자 그대로 불후의 명곡이다.
한편 "Who'll Stop The Rain"에 대하여는, 가사 중의 비(Rain)가 월남전에서 쏟아지는 폭탄과 고엽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견해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들으면, 내용이 얼추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한걸음 더 나아가 CCR을 반전(反戰)의 메시지 등이 담긴 사회성 짙은 노래를 부른 진보적 성향의 그룹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조금 과한 해석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멤버 중 맏형 격인 톰 버거티의 인터뷰 내용이나 세 번째 앨범인 Green River에 담긴 곡들을 보면 그렇게 해석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Who'll Stop The Rain"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고, '비'를 주제로 방송에서 특집 프로그램이라도 제작하는 경우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 같은 존재였다. 이쯤에서 "Who'll Stop The Rain"을 들어 보기로 하자.
비를 주제로 한 CCR의 또 하나의 명곡은 자신들이 어린 시절에 만들었던 곡을 훨씬 세련된 감각으로 다시 새롭게 꾸며 1971년에 발표한 "Have You Ever Seen The Rain"이다. 이곡 또한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는데, 톰 버거티가 돌연히 팀을 떠나면서 더 이상의 인기몰이에는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다음 해인 1972년에 CCR은 전격적으로 해체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톰 버거티가 팀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시절의 마지막 노래 "Have You Ever Seen The Rain"을 들어 본다.
(5) 기 타
CCR의 곡들은 어느 것이라고 할 것 없을 만큼 거의 모든 곡들이 히트를 했기 때문에 그들의 노래 가운데 몇 곡을 소개한다거나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곡들 또한 그냥 내가 조금 더 많이 좋아했던 곡들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정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려고 했는데, 막상 이대로 CCR 이야기를 마치려고 하니 눈에 밟히는 곡들이 몇 곡 더 있었다. 그래서 특히 마음이 끌리는 3곡을 별도의 이야기 없이 소개하면서 글을 맺을까 한다.
먼저 "Hey Tonight"이고,
이어서 "Bad Moon Rising"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Lookin' Out My Back Door"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