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깨달음의 샘물 Dec 23. 2023

1950년대 후반의 문화 아이콘 "Paul Anka"

영국 왕실의 옛 왕세자비를 떠올리게 만드는 노래 "Diana"

1. Paul Anka, 전설의 소환


록의 전설이라 불리우는 CCR 조차 단 한번도 밟아 보지 못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의 영예를  3번이나 누린 가수가 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의 나이 불과 16살이 되던 해에 발표한 자신의 첫 번째 앨범에 실린 곡 "Diana"로 첫번째 1위를 기록했다는 것인데, 그 주인공은 바로 캐나다 출신의 미국 가수 폴 앵카(Paul Anka, 1941~)이다.


작사와 작곡 능력까지 갖춘 싱어 송 라이터인 폴 앵카는 준수한 외모로 영화에까지 진출하는 등 다재다능을 뽐내며 일세를 풍미했을 뿐만 아니라, 가수로서도 오랜 기간 동안 전성기를 누리며 활동했다. 그로 인해 롱런 가수로서의 이미지 또한 확고하고.


아, 폴 앵카가 전혀 낮설기만 한 친구들도 있을지 몰라서, 일단 폴앵카의 모습부터 보여주도록 하겠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하나 있다. 앞서 언급한 "Diana"의 경우만 해도 그런데, 곡 자체는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만큼 유명하지만, 막상 이를 누가 불렀는지를 물어 보면 버벅거리며 답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얼굴없는 가수로 활동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미성(美聲)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목소리로 고음을 처리하다가, 갑자기 중후한 중저음으로 변모하는 마력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건만, 노래가 너무 유명해지면서 역설적으로 그 노래를 부른 폴 앵카는 잊혀버리게 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옛날 얘기지만 오렌지 쥬스 광고에 쓰인 '따봉'이란 멘트가 그야말로 대 히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사람들은 '따봉'이란 단어만 기억할 뿐, 그 오렌지 쥬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물론 나도 그 중의 한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 광고는 제품의 이름을 알리는 데 실패한 최악의 광고로 기록되고, 급기야 이 제품은 이름을 '따봉 쥬스'로 바꾸고 재출시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폴 앵카와 그의 힛트곡간의 관계가 이런 것 아닐까 싶다.


"Diana" 외에도 "Crazy Love", "You Are My Destiny", "Papa", "Put Your Head On My Shoulder" 등등 여전히 각종 매체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들 노래가 모두 폴 앵카의 것인데,  정작 폴 앵카는 잘 모르는 불편한 진실. 이번 이야기는 이처럼 '이름보다 노래로 더 잘 알려진 非運(?)의 가수' 폴 앵카에게 바치기로 한다.



2. Paul Anka, 그는 누구인가?


(1) 1950년대 후반의 문화 아이콘

폴 앵카는 시리아 출신의 아버지와 레바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캐나다의 오타와에서 출생했다. 그렇지만 1990년에 미국으로 귀화해서 폴 앵카의 지금 국적은 미국이다.


폴 앵카는 직접 곡을 쓰고 작사까지 하는 싱어송 라이터로, 불과 15세의  나이에 "Confess"란 곡으로 솔로 가수로 데뷔할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57년에 발표한 1집 앨범이 2백만장이 넘게 팔리는 빅히트를 하는데, 특히 이 앨범에 실린 "Diana"는 무려 13주 동안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놀라운 기록을 남긴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발표한 "You Are My Destiny" 또한 빌보드 차트 7위에 랭크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노래이다.

다음 해인 1958년에도 비록 전년의 성공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Crazy Love"로 다시 빌보드 차트 19위에 진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1959년, "Lonely Boy"로 또 한번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른다. "Put Your Head on My Shoulder" 또한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오르고. 결론적으로 말해 1957년부터 1959년까지의 이 3년간, 폴 앵카는 히트곡 제조기라고 하여도 전혀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최고의 뮤지션이었다.


(2) 영화 배우/음악가로의 변신

그리고는 조금 잠잠한가 싶더니 폴 앵카가 이번엔 영화배우로 깜작 변신을 해서 대중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마도 전쟁 영화로는 거의 All Time Best, 절대적 One Top이라고 할 수 있는 "The Longest Day"(1962년)에 조연으로 말이다.  아,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지상 최대의 작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는데, 여기서 지상 최대의 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말한다. 한가지 불가사이한 것은 The Longest Day가 개봉된 것이 내 나이 3살때인 1962년인데, 내 기억속에 이 영화가 또렷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The Longest Day의 포토는 아래 사이트에서 퍼 온 것이다. The Longest Day라는 영화에 관한 기본적 정보 또한 아래 사이트에서 얻을 수 있다.

The Longest Day의 출연진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만큼 호화로웠는데,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그 한명 한명이 곧 영화계의 전설들인 영화배우들이 이 작품에 모두 출연했다.

한편 폴 앵카는 놀랍게도 이 영화의 음악작업에도 참여했고, 같은 제목의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했다. 비록 60년전의 노래이지만 작은 북쯤으로 여겨지는 악기가 쏟아내는 이 리듬만은 여러분에게도 틀림없이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 나온김에 전쟁영화의 주제곡으로 이와 쌍벽을 이룬다고 생각되는 "콰이강의 다리 행진곡(The Kwai River March)"도 함께 들어두기로 한다. 휘파람 소리와 함께 경쾌하게 시작되는 노래 콰이강의 다리 행진곡이다.아, 이곡의 원곡은 'Colonel Bogey March' (보기 대령 행진곡) 이며, 1914년에 'Kenneth Alford' 가 작곡한 곡을 'Malcolm Arnold' 가 휘파람 소리를 첨가한 편곡으로 1957년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사용한 연주곡이다.


(3) 폴 앵카, 화려한 귀환을 알리다.

가수로서는 그렇게 잊혀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폴 앵카였는데, 그가 1974년 13집 앨범 'Anka'를 들고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역시 캐나다 출신의 여가수 Odia Coates와 손을 잡고 듀엣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 앨범으로 앨범 차트 9위까지 오르는데, 여기에 실린 "(You're) Having My Baby"는 "Lonely Boy" 이후 15년만에 빌보드 차트 1위의 영예를 폴 앵카에게 안겨 주게 된다.



3. 내게로 걸어 온 Paul Anka


폴 앵카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에 접어들어 수많은 히트 곡들을 남겼다. 때문에 나는 순전히 라디오의 음악방송을 통해서만 그의 음악에 접할 수 있었고, 당연히 그의 모습조차 알지를 못했다. 그런 폴 앵카가 1974년 'Anka'라는 앨범을 들고 홀연히 다시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때 그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앨범에 실려있는 "Papa"에 푹 빠지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순전히 전주부터 시작해서 전곡을 지배하는 단순한 리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Papa"는 내게로 다가와 나의 노래가 되어 버렸다. 33세, 한결 성숙해진 폴 앵카가 부르는 Papa를 내가 말한 리듬에 주목하며 들어 보기를 바란다.

이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Papa"는 미국에서는 공식 차트에서 상위에 오르는 기록을 남기진 못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나름 유명하다는 가수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앞다투어 번안곡을 발표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는데, 그러한 인기의 비결은 "Papa"라는 제목과 가사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잘 맞아 떨어졌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4. Paul Anka의 음악


폴 앵카의 수많은 히트곡 가운데, 내가 다시 듣고 싶은 몇 곡을 더 소개하는 것으로  폴 앵카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1) Diana

영국의 왕실,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적어도  세기의 결혼식을 운운하며 영국의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스펜서(Diana Frances Spencer, 1961~1997)라는 여인의 결혼식이 있었던 1981년까지는 말이다. 나이든 인간들이 왕실의 법도를 따지며  답답하게 살아가는 곳이라고만 여겼던 곳으로 내 또래의 여인이 왕세자비로 입궁(入宮)한 그 사건이 있은 후부터, 영국 왕실의 이야기가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영국 왕실의 이야기가 우리의 밥상머리 토크의 주제가 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추측건대 그러한 기현상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까지 갖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모습(아래 사진 참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Diana Spencer.    사진출처: https://www.luxuryacademy.co.uk/soft-skills-princess-diana/


그런데 다이애나 왕세자비 이야기가 나올 때면 마치 무슨 공식이라도 된 것처럼 흘러나오던 노래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폴 앵카가 부르는 "Diana"이다. 1957년에 발표한 곡이니 무려 60년도 넘은 곡인데, 이렇게나 우리에게 익숙하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인 폴앵카의 대표곡 "Diana"를 들어 본다.


(2) Crazy Love

"Crazy Love"는 1958년에 발표된 곡이지만, 내가 처음 이 노래를 들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인  1974년, 어찌어찌 해서 발을 들이게 된  안국동의 어느 음악 다방에서였다. 아직 미칠 정도로 그 누군가를 사랑해보지 못했던 중학교 2학년의 나에게는 Love라는 단어 앞에 그를 수식하는 형용사로 Crazy가 올 수 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지만,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Crazy Love에 미쳐갔다. 그렇다면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기 시작한 결정적 이유가 순전히 그 제목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데, 웃기는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네 삶, 특히 어린 시절의 그것이 매양 합리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15살로 넘어가는 겨울,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Crzy Love이다.

(3) 기 타

"Crazy Love"로 촉발된 폴 앵카에 대한 나의 관심은 같은 해 발표되어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Papa"를 거치며 한층 고조되었다. 그래서 폴 앵카의 옛노래를 찾아 듣기 시작했는데, 그 시절에 내가 즐겨 듣던 노래는 다음의 2곡이다.


먼저 "You Are My Destiny"이고,

다음으로 "Put Your Head My Shoulder"이다.

Crazy Love를 통해 폴 앵카를 알게 된 다음 해인 1975년 폴 앵카는 또 한번 내 마음을 잡아 흔드는 노래를 발표하는데, 그것이 바로 "I Don't Like To Sleep Alone"이다. 1년 사이에 영어 실력도 많이 늘었고, 감성도 풍부해져서 그런지 훨씬 더 여유롭게 노래를 즐길 수 있던 것이 기억난다. 1974년에 폴 앵카와 "You're Having My Baby"를 듀엣으로 불러 빌보드 정상에 올랐던 Odia Coates가 피쳐링을 맡았던 노래, "I Don't Like To Sleep Alone"이다.











이전 06화 신화라 불렸던 전설의 록그룹 "CC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