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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Jan 06. 2024

백인이 지배하던 Pop계의 이단아 "Boney M."

바빌론 유수(幽囚)를 모티브로 한 노래 "Rivers of Babylon

1. 독일 그룹의 미국진출기



시장성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대중음악의 메카는 역시 미국이다. 그러나 대중음악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1960년대부터 한동안, 아니 어쩌면 최근까지 대중음악의 흐름을 선도한 것은 단연 영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과거에는 이들 두나라 출신의 가수가 아니라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영국 이외의  유럽 국가 출신의 뮤지션들은 영국을 발판으로 삼아 미국으로 진출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곤 했었다. 그리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른 일본을 거점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실제로 대중음악의 변방이었던 독일 출신의 뮤지션들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나름대로 인기를 끌은 경우에도 끝내 미국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스러져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1975년에 이변이 일어났다. 독일 출신의 3인조 여성그룹 실버 컨베션(Silver Convention)이 미국 시장에 진출했을 뿐만 아니라, "Fly, Robin, Fly"라는 곡으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후 3주 동안이나 1위에 머무르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실버 컨벤션은 그 해 그래미상(Grammy Awards)을 거머쥐었고,  다음 해인 1976년에도 "Get Up and Boogie"로 빌보드 차트에서 3주간 2위에 오르는 족적을 남긴다.  이런 노래도 있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두곡을 연달아 링크를 걸어 놓을 터이니 들어 보기를 바란다. 1970년대를 살아갔던 사람이라면, 이들 노래를 모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Fly, Robin, Fly"이고,

"Get Up and Boogie"이다.

그런데 Silver Convention을 떠올리면, 이런 노래보다 당시 그들의 무대 의상이 먼저 생각난다. 등판을 다 드러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다리까지 온통 드러나는 무대의상을 입은 그녀들의 모습이 말이다. 지금 아이들이야 무덤덤하겠지만 이 노래가 히트하던 1970년대를 살고 있던 고등학생인 내게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다. 아래 사진을 보면, 당시에 내가 받았던 충격을 이해할 수 있을는지?

Silver Convention.     사진출처: https://m.blog.naver.com/saon24/222846602843


2. Boney M.의 탄생, 그리고 그 뒷이야기


보니 엠(Boney M.)의 탄생은 전적으로 독일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프랭크 패리언(Frank Farian)의 작품인데, 탄생의 기원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프랭크 패리언은 스튜디오 뮤지션을 동원하여 "Baby Do You Wanna Bump"라는 곡을 만들어 'Boney M.'이라는 가상의 그룹 이름으로 발표하면서, 곡의 분위기에 맞추어 이를 서인도제도 출신 흑인 그룹의 노래인 것처럼 가장을 한다.


Boney M. 그런데 이 곡이 독일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더니, 급기야는 유럽 전역을 강타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가상의 그룹 보니 엠의 실체를 보고 싶은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팬들의 성화 때문에 '실재(實在)'하는 보니 엠이 필요하게 되었고, 결국 프랭크 패리언은 가상의 그룹 보니 엠을 실재하는 그룹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오디션을 단행하기에 이르게 되는데, 선발기준과 관련하여서는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은 서인도제도 출신이라는 그룹 이미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1976년, 마침내 서인도제도 출신의 흑인 여성 3인, 남성 1인으로 구성된 혼성 4인조 그룹 보니 엠이 탄생하게 된다. 다만 프랭크 패리언이 오디션을 위해 서인도제도까지 날아가지는 않았고, 이미 독일에 들어와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서인도제도 출신의 뮤지션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보았다. 이처럼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특이한 과정을 거쳐 보니 엠이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프랭크 패리언이 급하게 오디션까지 봐가면서까지 보니 엠이란 실재하는 그룹을 만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겨나는데, (전적으로 내 생각에 불과하지만) 프랭크 패리언이 1975년의 Silver Convention의 미국 시장에의 성공적 진입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즉, 보니 엠을 통해 자신도 미국 시장에 진출해서 대성공을 거두어보고 싶은 야망 때문이었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앞에서 내가 지루할 정도로 독일 그룹의 미국 진출기를 이야기했던 이유도 바로 이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3. Boney M. 알아보기


(1) 보니 엠의 음악 여정

탄생과정이 독특하기는 하지만 보니 엠은 결성된 직후부터 연이어 히트곡을 쏟아내며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데뷔 싱글인 "Daddy Cool"만 해도 3,500 만장이 판매될 정도였으니 당시 그들의 인기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Daddy Cool"의 인기는 대단했는데, 보니 엠의  데뷔 싱글 "Daddy Cool"이다.

그리고는 데뷔한 이듬해인 1977년에는 "Sunny"로 인기몰이를 이어갔고, 1978년에는 "Rivers of Babylon"과 "Brown Girl in the Ring" 등과 같은 히트곡을 그야말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단기간에 전 세계적으로 무려 6,0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Sunny"의 성공에 힘입어 미국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미국 시장에서 보니 엠의 활약은 극히 미미했다. "Rivers of Babylon"이 빌보드 차트 30위에 랭크된 것이 전부이니 말이다. 보니 엠조차도 이런 대접을 받는 것에 그친 것을 보면, 미국 시장에의 진입 장벽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아울러 Silver Convention의 미국에서의 성공이 얼마나 이례적인 것인지도 새삼 느끼게 되고.


(2) 내가 본 보니 엠

수많은 명곡들이 팝의 역사를 통해 명멸했건만 내가 보니 엠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은 목록에 포함시킨 이유는 보니 엠에게는 다른 그룹에게서 볼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함이 있었기 때문인데,  간단하게나마 그를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보니 엠이 등장하기 전까지 나는 팝은 백인들의 전유물이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이유는 보니 엠이 등장하기 전까지 내가 만난 팝 아티스트들은 거의 예외 없이 백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인도제도 출신의 흑인 그룹이라니... 그야말로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충격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에 나 또한 부지불식간에 백인우월주의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둘째, (어느새 백인우월주의에 빠져) 보니 엠의 도전을 백인들의 영역에 도전하는 불경스러운 짓을 범하는 것이라고 폄하하고 싶었는데,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블루스도, 컨트리도, 록도 아닌 것이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지금이야 레게(reggae), 유로 디스코 등으로 설명하지만, 당시에는 그냥 무작정 좋았을 뿐이다. 물론 신디사이저 사운드, 그리고 사람이 아닌 기계가 두드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빠른 드럼 리듬 또한 신선했고.


셋째,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묘한(다른 표현이 불가하다) 의상에, 결코 전형적 미인의 범주에 포함될 수는 없는 여성 멤버들의 묘하디 묘한 섹시미 또한 사람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었다. 그에 더하여 저런 것도 춤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바비 패렐(Bobby Farrell)의 흐느적 거림 또한 커다란 볼거리였다.

Boney M.    사진출처: https://hifiway.live/2018/10/03/boney-m/
Boney M. 사진출처: https://knoji.com/article/9-boney-m-hits-flasback-to-the-disco-years/


4. Boney M.의 음악


보니 엠의 수많은 히트곡 중에서 '내가 다시 듣고 싶은' 곡을 몇 곡 추려 보았다. 미국에서 싱글 차트에서 몇 위까지 올라갔는지 등과 같은 객관적 기준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이다.


(1) Rivers of Babylon

내 머릿속에 보니 엠이란 이름을 각인시킨 곡, 아니 그 정도를 넘어 보니 엠과 동일시되는 곡, 그것은 그들이 1978년에 발표한 "Rivers of Babylon"이다.


Rivers of Babylon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멜로디와 리듬이 맘에 들었을 뿐인데, 그다음엔 성경에서나 만날 수 있던 '바빌론 유수(幽囚)'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됐다. 그리고 사제복을 떠오르게 하는 묘한 의상을 걸친 멤버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흑인들의 영가 속에 풍덩 빠지기라도 한 듯한 묘한 기분을 느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충격적이었던 노래. 보니 엠이 부르는 "Rivers of Babylon"이다.

이렇듯 나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던 "Rivers of Babylon"은 사실 리바이벌 넘버로, 이 노래의 원곡은 1963년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결성된 멜로디안스(The Melodians)라는 밴드의 것이다. 결국 멜로디안스의 노래가 15년이 흘러 보니 엠에 의해 새로이 조명을 받게 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2) Brown Girl in the Ring

같은 해에 발표된 "Brown Girl in the Ring"도 참으로 독특했다. 처음 보는 묘한 의상은 물론이요, 적극적으로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공연 모습 또한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공연 모습에 익숙한) 우리들에겐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리듬은 또 얼마나 밝고, 쉬우며 친숙했던지. 이 노래에 맞춰 수건 돌리기 놀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던 보니 엠의 노래, Brown Girl in the Ring"이다.


(3) Sunny

사실 발표시기 순으로 이야기한다면, 제일 먼저 이야기했어야 될 것은 "Sunny"이다. Sunny는 보니 엠이 데뷔 다음 해인 1977년에 발표한 곡인데, 제목만큼이나 밝은 노래이다. 다만 이 곡 또한 흑인 가수인 바비 헵(Bobby Hebb)이 이미 1966년에 발표했던 것을 리바이벌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Rivers of Babylon"에 이어 "Sunny"까지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곡들에 다시 생명력을 부여하는 보니 엠의 재능은 참 놀랍다고 아니할 수가 없다.

Bobby Hebb.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againlife_/222266760834

"Sunny"는 2011년에 제작된 영화 써니의 주제가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50을 넘긴 나이에 이른 내가 영화 속 등장인물의 어린 시절을 맡았던 2명의 여배우에 끌렸던 일이 생각난다. 아, 이들은 훗날 충무로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자리매김하는데, 바로 심은경과 강소라가 그들이다.

영화 써니의 포스터.    사진출처: https://m.blog.naver.com/dcm24kr/222923196151

이쯤에서 영화의 엔딩 장면을 흐르는 곡, "Sunny"를 보니 엠의 노래로 들어보기로 하자.

(4) 기 타


보니 엠의 노래 몇 곡을 더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맺을까 한다. 먼저 "Gotta Go Home"인데, 1979년에 출시된 보니 엠의 4집 'Oceans of Fantasy'에 실린 "Gotta Go Home"은 가사의 태반이 '우우우 우우우 우우우 우우'였을 만큼 독특하고도 재미있는 노래였다.

미국시장에의 진출 시도에도 불구하고 미국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에 가로막히면서 보니 엠의 인기도 하락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1980년대에 다시 한번 보니 엠의 노래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데, 그것이 바로 "Happy Song"이었다. 영국 차트에서 5주간이나 정상에 머물렀던 노래 "Happy Song"은 아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일에서조차 7위에 그칠 정도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노래 한곡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많은 국내 가수들이 번안하여 불렀고,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사용되었으며, 야구장에서도 심심찮게 흘러나오던 그 노래는 바로 "Bahama Mama"이다. 아, Bahama Mama는 "나는 다시 태어났다(I'm born again)"라는 뜻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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