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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Jan 20. 2024

진보라색이 잘 어울리는 그룹  "Deep Purple"

나를 헤비메탈의 세계로 이끈 노래, "Smoke on The Water"

1. Prelude



진한 보라색, 너무나도 그 색이 강렬하고 화사해서 미모라면 어느 누구에도 빠지지 않는 연예계 스타들도 입기를 꺼려하는 아이템이다. 때문에 보라색을 잘 소화해 내는 연예인이야말로 진정한 미인이라는 속설이 지배한다. 그런데 진한 보라색이 갖는 이러한 강렬한 이미지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그룹이 있는데, -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그리고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와 함께 - 영국의 하드 록 내지 헤비메탈을  대표하는 그룹 딥 퍼플(Deep Purple)이 바로 그들이다. 



사실 딥 퍼플은 더 이상의 설명이나 수식이 필요 없는 최고의 그룹이다. 1968년에 데뷔한 이래 정규앨범만 무려 21장을 냈고, 그들의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억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니 말이다. 내 워낙 과문하다 보니 2020년에 21집을 발표한 이후의 소식은 접한 바 없는데, 그때를 기준으로 해도 활동기간만 줄잡아 50년을 훌쩍 넘긴다. 문자 그대로 전설적 그룹이고, 로큰 롤 명예의 전당의 한 자리는 당연히 그들의 몫이었다.


이런 딥 퍼플을 내가 무엇이라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가 주제넘은 짓이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1960~70년대의 Pop을 이야기하면서 딥 퍼플을 건너뛸 수도 없는 일이다. 해서 최소한 겸손하게, 그리고 팩트 위주로 간략하게 딥 퍼플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딥 퍼플은 활동기간만 50년을 헤아리는 그룹인 만큼 멤버들이 끊임없이 바뀌었다. 이 때문에 딥 퍼플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어떤 것이 적당할지 많이 고민했었는데, 딥 퍼플의 최고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제2기 멤버들의  사진을 택했다. 사진 왼쪽으로부터 ... 


이안 길런(Ian Gillan, 1945~ 보컬)

로저 글로버(Roger Glover, 1945~ 베이스)

존 로드(Jon Lord,  1941~2012 키보드 )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 1945~ 기타) 

이안 페이스(Ian Paice, 1948~ 드럼)

딥 퍼플 2기 멤버.  사진출처: https://i0.wp.com/oildale.s3.amazonaws.com/wp-content/uploads/2015/01/22100927/D

황금과도 같은 제2기 딥 퍼플 멤버들의 음악성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현재 활동을 하고 있는 밴드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최고의 밴드로 꼽힐 정도이며, 그 이후에 활동한 헤비메탈 밴드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하나같이 제2기 딥 퍼플의 음악을 카피하다시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딥 퍼플에게 붙은 별명은 바로 '메탈계의 요한 세바스찬 바흐'이다. 



2. 나에게 다가 온 딥 퍼플



내가 1968년부터 Pop을 들었다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헤비메탈이란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 없었고, 딥 퍼플이라는 그룹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에 불과한 나로서는 형이 사들이는 레코드에 수록되어 있는 곡들만을 들을 수 있었을 뿐인데, 형이 딥 퍼플의 앨범을 사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초등학생인 나는 영어의 알파벳조차도 모르는 상태였으니 내 스스로 다양한 장르의 Pop에 접할 기회는 전무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상기류가 감지되었는데,  그것은 형이 사들이는 레코드 속의 노래들이 조금씩 시끄러워져만 갔다는 것이다. 지금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대학에 입학한 형의 음악적 취향이 하드 록 쪽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인데, 그 과정에서 드디어 딥 퍼플의 제6집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난 그중의 한 곡에 그야말로 빨려 들어갔는데, 그것이 바로  "Smoke on The Water"였다. 


이 곡에 내가 빠져들었던 데에는 사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Smoke on The Water"를 처음으로 만났던 때의 다음 해인 1973년, 난 중학교에 입학했고, 자연스레 영어라는 신세계가 내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아무 뜻도 모른 채 내 귀에 들리는 대로 외워대던 노래의 제목을, 내가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Smoke on The Water"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내게 새로운 꿈이 생겨났어. 물에 반쯤 몸을 담근 채, 담배 하나를 꼬나물고, 하드 록에 몸을 맡긴 채 흔들거려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그렇지만 고백하건대, 저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Smoke on The Water는 제네바 호숫가의 몽트뢰(Montreux)에 작업차 간 딥 퍼플이 근처 건물에 화재가 일어나 호수 위에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는 것을 보고 작곡한 곡으로, Smoke on The Water는 말 그대로 '호수 위에 자욱한 연기' 정도의 의미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다. 이해되지 않았던 fire in the sky...라는 가사의 의미를 알게 된 것도. 그것을 어쭙잖은 영어 실력으로 내 마음대로 해석하여 헛된 꿈에 빠졌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다.


어쨌거나 1972년 말경부터 나를 온전히 사로잡고 내 음악적 취향에 변화를 가져온 곡, "Smoke on The Water"를 들어보자. 

"Smoke on The Water"를 통해 하드 록에 빠져 들 무렵 내 음악 인생에 중대한 위기가 찾아온다. 내게 음악의 세계를 보여줘 왔던 형이 군에 입대하게 된 것이다. 내 음악 듣기에 단절이 생겨날 그러한 절체절명의 위기에 예기치 않은 도움의 손길이 생겨났는데, 그것은 당시 음악 방송에 흠뻑 취해 있던 누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누나를 매개자로 매일 밤 임재범과 손지창의 아버지인 임택근, 그리고 트윈폴리오의 멤버였던 윤형주가 진행하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들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 되던 1974년, 드디어 난 형과 누나의 압제(?)에서 벗어나 음악적으로 독립을 했다. 한없이 작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겼고, 그 방에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놓였고, 떠듬떠듬이나마 나 스스로 영어를 읽어 내려갈 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난 마침내 내가 원하는 음악을 가려듣게 되기 시작했다.  



3. 딥 퍼플의 음악.



지금부터는 내가 다시 듣고 싶은 딥 퍼플의 곡들을 통해 그들의 음악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아, 너무 거창하다. 소박하게 얘기하자. 함께 나누고, 함께 듣고 싶은 딥 퍼플의 노래를 소개하겠다.


(1) Hush

딥 퍼플은 1968년 영국에서 리치 블랙모어, 존 로드, 닉 심퍼(Nick Simper, 1945~ 베이스), 이안 페이스, 로드 에번스(Rod Evans, 1947~ 보컬)의 5인조 밴드로 출발한다. 

딥 퍼플 제1기 멤버.     사진출처: https://namu.wiki/w/%EB%94%A5%20%ED%8D%BC%ED%94%8C

그런데 1968년의 데뷔앨범인 'Shades Of Deep Purple'부터 좋은 반응을 얻는데, 특히 미국 가수 빌리 조 로열(Billy Joe Royal, 1942~2015)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Hush"가 빌보드 싱글차트 4위에 오르는 기적을 낳는다. 이어서 닐 다이아 몬드(Neil Diamond, 1941~)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Kentucky Woman"도 인기를 끄는 등 딥 퍼플은 영국 그룹인데도 특이하게, 미국에서  먼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딥퍼플 데뷔앨범사진출처: https://en.m.wikipedia.org/wiki/Shades_of_Deep_Purple

그리고 데뷔 다음 해인 1969년까지 2년 새에 또다시 2장의 앨범을 쏟아 내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초창기 팀의 리더 역할을 했던 존 로드가 워낙 잡식성이어서 앨범의 대부분을 커버곡으로 채웠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서의 딥 퍼플이 인기 가도를 달릴 수 있게 만들어 준 "Hush"이다. 


(2) Black Night 外

1969년 이안 길런과 로저 글로버가 로드 에번스와 닉 심퍼를 대신하여 합류하면서 딥 퍼플은 그야말로 인기그룹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이들이 합류하며 1970년에 발표한 제4집 앨범 'Deep Purple in Rock'에서는 "Black Night"(영국 싱글차트 2위)을 필두로 하여,  타이틀 곡인 "Speed  King"과 딥 퍼플의 넘버 중 비교적 잔잔한 "Child in Time"까지 무려 3곡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4집 앨범 Deep Purple in Rock .                사진출처: https://eil.com/shop/moreinfo.asp?catalogid=51770


딥 퍼플의 전성기를 구가한 2기 멤버들이 합류해서 히트시킨 이들 3곡을 차례로 들어 보기로 하겠다.

먼저 "Black Night"이고, 

다음으로 "Child in Time"이다.

마지막으로 "Speed King"인데, 1970년 공연실황이다 보니 레코드에서 듣던 것과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르지만, 딥 퍼플 제2기 멤버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특히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와 숨 가쁘게 질러대는 이안 길런의 열창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3) Highway Star 


딥 퍼플. 1971년은 "Strange Kind Of Woman"(영국 싱글차트 8위)으로 조용히 넘어가는가 싶더니, 1972년 문제의 앨범 'Machine Head'로 또 한 번 대형 사고를 친다. 'Machine Head'는 딥 퍼플의 앨범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을 거둔 음반으로, 영국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당당히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한다(미국에서는 7위). 뿐만 아니라 새로이 등장한 헤비메탈이란 음악 장르의 초기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등 대중음악사에 있어 기념비적 음반으로 거론되고 있다.

딥 퍼플 6집 Machine Head  사진출처: https://www.fuzz-bayonne.com/produit/deep-purple-machine-head-lp/

이 음반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Smoke On The Water" 이외에도 "Highway Star"와 

"Never Before" 등이 인기를 얻는데, 여기서는 딥 퍼플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곡 "Highway Star"를 들어보기로 한다.


(4) Soldier of Fortune

딥 퍼플의 최고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제2기부터 리치 블랙모어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지금까지 리더 역할을 해 온 존 로드와의 그룹 내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된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리치 블랙모어와 이안 길런/로저 글로버 간에도 다툼이 벌어진다. 이런 와중에도 앨범작업은 계속되었고, 1973년 발매된 7집 'Who Do We Think We Are'에 수록된 "Woman from Tokyo"는 그들의 베스트 앨범에 포함될 정도로 나름 인기를 얻었다. 

1974년에 들어서면서 멤버들 간의 대립은 극에 달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안 길런과 로저 글로버가 먼저 딥 퍼플을 떠난다.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 또한 11월에 발매된 'Stormbringer'를 끝으로 딥 퍼플을 탈퇴한다.

딥 퍼플 9집 Sormbringer.     사진출처: https://m.blog.naver.com/enbers/222953465532

이 앨범에서는  "Soldier of Fortune"이 인기를 끄는데, 딥 퍼플의 다른 곡에 비해 서정성이 돋보이는 "Soldier of Fortune"이다.


(5) Perfect Strangers

리치 블랙모어가 탈퇴한 이후 1976년부터  사실상 활동을 접었던 딥 퍼플이 1984년 다시 옛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 리치 블랙모어, 존 로드, 이안 페이스, 이안 길런, 로저 글로버를 멤버로... 그러나 8년의 공백은 너무나도 컸고, 이미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4년 발매된 앨범 'Perfect Stranger'는 딥 퍼플에 대한 옛날의 향수에 기대어 그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물론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딥퍼플 11집 Perfect Strangers    사진출처: https://www.udiscovermusic.com/stories/deep-purple-perfect-strang

이 앨범에 실려 있는 같은 제목의 곡, "Perfect Stranger"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딥 퍼플의 곡 중의 하나이다. 여전히 호소력 짙은 이안 길런의 보칼과 존 로드의 화려한 건반, 그리고 다시 터지는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까지. 완벽한 딥 퍼플의 재림. 이것을 어찌 그냥 넘길 수 있겠는가? 돌아온 딥 퍼플이 부르는 "Perfect Strangers"이다.



4. 리치 블랙모어와 레인보우



딥퍼플이 가장 딥 퍼플스러웠던 것은, 역시 리치 블랙모어가 기타를 잡고 중심을 잡아 주었던 1974년까지였다고 할 수 있다. 지미 페이지(Jimmy Page),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제프 벡(Jeff Beck)과 비견되는 그의 연주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딥 퍼플은 없었을지도 모르고, 실제로 그가 멤버들과의 불화로 떠난 이후부터 딥 퍼플은 차츰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편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을 떠난 1975년 조 린 터너(Joe Lynn Turner, 1951~) 등과 함께  레인보우(Rainbow)라는 새로운 그룹을 결성하는데, 레인보우의 보컬을 담당했던 뮤지션들에게는 매우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레인보우는 리치 블랙모어와 동의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부터 함께 했던 조 린 터너는 물론이고, 그 이후의 레인보우의 보컬을 맡았던 로니 제임스 디오(Ronnie James Dio, 1942~2010)와 그래엄 보넷(Graham Bonnet, 1947~) 등 또한 걸출한 뮤지션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난 리치 블랙모어를 보면 무려 30년 동안 그룹 부활의 리더역할을 수행해 온 김태원이 생각난다. 부활을 거쳐간 김종서, 이승철, 박완규, 조동하 등의 보칼은 그야말로 쟁쟁한  뮤지션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부활'을 김태원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처럼 많은 보컬들이 레인보우를 거쳐갔지만 레인보우의 전성기는 역시 (블랙 사바스에서도 활동했던) 로니 제임스 디오가 있을 때라고 할 수 있는데, "Temple of The King"과 "Catch The  Rainbow"가 바로 이 시절의 노래이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크게 히트했던 노래는 "Temple of The King"이었다.


5. 딥퍼플과의 재회


1995년. 비록 전성기가 지났고, 리치 블랙모어도 안 보이지만, 딥 퍼플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 그야말로 만사를 제쳐 놓고 그들의 내한공연이 펼쳐지는 올림픽 공원 내 체조 경기장으로 달려갔다. 철부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까지 나를 지배했던 그룹 딥 퍼플을 만나러 말이다. 내 살아생전 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현장에서 듣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그런 순간이 도래했으니 그를 놓칠 수는 없었다. 


광란의 도가니. 2시간여의 미칠 듯한 공연이 끝나고, 퇴장했던 멤버들이 "Smoke on The Water"의 전주와 함께 불빛 속으로 다시 나타나는 순간, 난 정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20여 년을 꿈꾸었던, 아니 꿈꿀 수조차 없었던 일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소리 질러 따라 부르고, 경미한 헤드 뱅잉까지. 아아,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또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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