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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Feb 03. 2024

영국 스탠딩 팝의 거장, 톰 존스(Tom Jones)

톰 존스가 자기에게 오라고 내게 손짓했던 노래, 딜라일라(Delilah)

1. 나와 톰 죤스


2024년.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 들 중에 영국 웨일스 출신의 가수 톰 존스(Tom Jones, 1940~)를 알거나 기억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비록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고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공연을 해 왔다고는 하지만, 톰 존스의 전성기는 틀림없이 1960년대 후반이니 올드 팝에 푹 빠진 경우가 아니라면 젊은 세대들이 톰 존스를 알기는 어렵다. 뿐만 아니라 웬만큼 나이를 먹으신 분들도 톰 존스의 노래에 빠지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톰 존스를 정확히 기억하고, 그의 노래를 여전히 좋아한다. 그것은 형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2학년이던 1968년부터 Pop에 빠져들기 시작했지만, 나를 Pop의 세계로 본격적으로 끌어들인 가수는 바로  톰 존스이기 때문이다. 비키(Vicky Leandros, 1949~)가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유혹했다면, 톰 존스는 그의 별명이 되어버린 Tiger의 강렬함으로 나를 사로잡아 버렸다. 미성(美聲)과 준수한 외모 등과 같은 여성적 매력을 가지고 어필했던 폴 앵카(Paul Anka, 1941~)와 클리프 리차드(Cliff Richard, 1940~)도 좋아했지만, 그들은 나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에서 톰 존스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당시의 가수 가운데 톰 존스와 비견될 수 있는 이로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1977)가 있고, 전 세계적 지명도는 냉정히 말해 엘비스 프레슬리가 한수 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번 연재에서도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성악 파트로 이야기하자면 바리톤쯤에 해당하는 중저음과 마치 목 어딘가에 우퍼라도 장착한 듯한 강렬함, 그에 더하여 허스키한 분위기를 풍기다가도 터질 때에는 제대로 빵 터지는 시원함으로 무장한 톰 존스의 노래는 비교 불가할 정도의 카리스마가 있다. 그러나 이런 느낌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고, 톰 존스가 자기에게 오라고 내게 손짓한 것은 역시 "딜라일라(Delilah)"이다. 성악을 공부한 가수 조영남이 번안하여 불러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했던 "Delilah"를 들어보자. 톰 죤스의 이 노래를 들으면 그 누구라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과 같은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톰 존스를 실황공연을 통해 만나지는 못했다. 그를 만날 수 있는 3번의 기회가 모두 나를 비켜갔기 때문이다. 첫 번째 기회는 톰 존스가 우리나라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1983년이었는데, 그의 내한 공연에 당연히 관심을 가졌지만 공연장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다는 쉐라톤 워커힐(현 그랜드 워커힐 서울) 호텔 내 가야금 식당이니 가난한 대학교 4학년 생인 나로서는 직관은 꿈꿀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 톰 존스의 내한 공연 소식이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27년이 흘러 버린 2010년의 일이었는데, 잔뜩 별렀건만 그의 내한 공연은 공연 직전 급성 후두염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그리고 2016년. 76세의 노구를 이끌고 톰 존스가 다시 한번 우리나라를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당시 나는 연구년으로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Uni. Freiburg)에 객원 교수로 나가 있었기 때문에 달려갈 수가 없었다. 아래 포스터를 보면서 나와 톰 스는 연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 후문에 의하면 이 공연 또한 가족의 건강 문제로 취소되었다고 한다.

톰 죤스 내한공연 포스터.  사진출처: https://m.news.naver.com/read?oid=028&aid=0002313156


2. 톰 존스, 그는 누구인가?


톰 존스의 본명은 토머스 존 우드워드(Thomas John Woodward)라고 하는데, 그의 전성기는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이었다. 톰 존스는 이른바 영국 스탠다드 팝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앞에서 소개한 "Delilah"는 영국의 국민가요에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히트를 했다. 파워를 갖춘 남성 솔로 가수라는 점, 그리고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로 인해 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와 자주 비교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둘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으리란 추측이 난무하기도 한다. 그러나 톰 죤스는 5살 위의 엘비스 프레슬리를 자신의 우상처럼 생각하여 존경심을 나타냈고, 엘비스 프레슬리 또한 톰 존스의 목소리에 반해 그에게 ‘The Voice’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돈독했다.


톰 존스는 1965년 1집 앨범 'Along Came Jones'를 들고 가수로 데뷔했는데, 같은 해 영화 007 시리즈 중 하나인 썬더볼 작전의 주제가인 "Thunderball"을 불러 빌보드 차트 25위에 오르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듬 해인 1966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고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데뷔 초부터 인기가도를  달리더니,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1969년부터 71년까지는 자신의 이름을 딴 TV쇼 'This Is Tom Jones'를 진행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1980년대 후반 이후에도 "Kiss", "Sex Bomb" 등을 또다시 히트시키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70세를 넘긴 2012년까지도 매년 새로운 싱글을 발표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런 점이 인정을 받아 1999년에는 대영제국 훈장(OBE)을 수상하고, 2006년 3월에 기사의 작위를 부여받는다. 그로부터 그를 부르는 공식명칭은 톰 스 경(Sir. Tome Jones)이 되었다.


다만 내가 아는 한, 2012년 이후에는 별도의 싱글이나 앨범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물론 음악과 관련된 활동은 꾸준히 이어갔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The Voice UK'의 심사위원을 맡기도 하고, 2015년에는 자신이 신인상을 수상했던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제시 제이와 함께 You've Lost That Lovin' Feeling을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77세 때인 2017년에 'The Voice UK'에서 '다시 한번 열창을 뿜어내는데, 그를 통해 멋있게 늙어가는 모습을 너무도 잘 보여주었다.

77세의 톰죤스. 사진출처: 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50&code=3792


3. 톰 존스의 음악


1968년에 발표한 "Delilah"가 톰 존스의 대표곡으로 꼽히기는 하지만, 그의 노래 중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곡은 그 한곡에 그치지 않는다. 1965년에 데뷔해서 1970년대 중반까지 히트곡 제조기라고 불릴 정도였고, 한 해에도 여러 장의 앨범을 낼만큼 활발히 활동했기 때문에 그의 히트 곡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따라서 그의 히트 곡을 모두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여기서는 그의 히트 곡 중에서 내가 다시 듣고 싶은 몇 곡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 Keep on Running

"Keep on Running"은 The Spencer Davis Group이 이미 발표했던 곡인데, 발표 당시에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톰 존스가 1965년에 고고 리듬을 본격적으로 가미하여 부르면서 크게 히트했는데,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 노래를 가장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글쎄, 당신이 톰 존스의 음악 자체를 좋아했는지, 아니면 "계속해서 뛰어"라는 제목이 당신이 강조하던 표어인 "중단 없는 전진"과 비슷한 이미지를 풍겨서 좋아했는지는 내 알 수가 없다. 이미 돌아가셨으니 물어볼 방법도 없고.


(2) Geen Green Grass Of Home

"Green Green Grass Of Home"’은 고향의 푸른 잔디, 사랑하는 부모님, 그리고 체리빛 입술과 금발의 연인과의 만남 등을 담은 서정적 가사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가사에 반전이 있다. 지금까지의 가사는 사형수의 꿈속 이야기였던 것이고, 정신을 차려보니 감옥과 교도관 그리고 신부님이 보인다. 사형집행이 행해지려는 것을 암시라도 하는 건가? 어쨌거나 이런 가사가 쓰인 이유는 이 노래의 작곡가가 'Asphalt Jungle'이란 영화의 범죄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썼다는 것에서 찾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Green Green Grass Of Home"은 1965년에 조니 대럴(Johnny Darrell)이란 가수가 처음으로 취입을 한 이래, 많은 가수들이 같은 해만 해도 앞다투어 리코딩을 했다(저작권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나 보다). 톰 존스는 그러한 여러 버전 가운데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의 노래에 감명을 받아 다음 해인 1966년에 런던에서 이 곡을 싱글로 발매하게 되는데, 이 곡은 영국 차트 1위, 빌보드 차트 11위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둔다.


(3) I Who Have Nothing

톰 존스는 16살에 이미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고, 가족을 위해서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데뷔 앨범을 발표한 것이 그의 나이 25세 때인 1965년이니 결혼 후 무려 9년이란 긴 시간을 경제적 어려움 속에 살아나가야 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톰 존스는 가난을 잘 이해하고 있었는데, 1974년에 발표한 "I Who Have Nothing"은 그 어려운 시절을 잘 표현한 노래이다. 빈털터리 주제이지만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려고 알아본 결과 "I Who Have Nothing"은 톰 존스가 처음 발표한 것이 아니라 벤 킹(Ben E. King)이란 가수가 작사작곡하여 이미 1963년에 발표한 것이었다.


(4) Sexy Bomb

1999년, 세계 음반시장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이 발생한다. 전성기를 지나도 한참 지난 가수가 환갑이 다된 나이에 발표한 곡이 영국 싱글 차트에서 3위에까지 오르며 대 히트를 한 것인데, 그 주인공은 바로 톰 존스였다. 여전히 Tiger의 위용을 뽐내는 건장한 모습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발표한 곡이 제목부터 충격적인 "Sex Bomb"인데, 60세에 다다른 톰 죤스가 노익장을 과시한 이 곡을 안 들어볼 수는 없다.


(5) 기 타

톰 존스의 주옥같은 히트 곡 중 가려 뽑고 뽑았는데도 듣고 싶은 곡이 너무 많다. 그렇지만 톰 존스를 떠올리면 너무도 자연스레 떠오르는 곡들을 Skip 하기는 싫었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과는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고, 톰 존스를 전혀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는 그를 소개해 주고 싶은 욕망이 컸다. 어떤 가수의 히트 곡을 이야기할 때면 미국과 영국 기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차트에서 어디까지 올랐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내가 팝 칼럼니스트도 아니고, 이 글 또한 그저 내가 듣고 싶은 곡들을 소개하는 수준이므로 그런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다만 차트를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는데, 유럽과 미국은 확실히 그 음악적 취향을 달리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1967년에 발표한  "Never Fall In Love Again"은 미국시장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유럽시장을 대표하는 영국에서는 싱글 차트 2위에 오를 정도로 히트를 한다. 그런가 하면 1970년에 발표한 "Without Love"와  1970년에 발표한 "She's Lady"는 빌보드 차트에서 각각 5위와 2위에 오를 정도로 미국 시장에서는 뜨거운 반응이 있었지만, 막상 영국에서는 그저 그러했으니 말이다. 이들 곡들 또한 그냥 넘어가기에는 많이 섭섭한 곡들이어서 들어보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


먼저 Never Fall In Love Again(1967)이고,

다음으로 Love Me Tonight(1969),

그리고 Without Love(1970)이다.

마지막으로 She's Lady(1971)를 들어 본다.


4. Epilogue - 스탠딩 팝의 귀환을 꿈꾸며.


언젠가부터 댄스나 각종 퍼포먼스가 뒷받침되지 않는 곡들은 음악의 주된 소비계층의 하나인 젊은이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그런지 심지어 미스(미스터) 트롯의 출연진들도 거의 대부분은 댄스로 무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솔직히 난 이런 추세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이는 댄스(퍼포먼스)가 주가 되는 공연을 보고 나면  훌륭한 플레이팅을 자랑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분위기에 취해 멋진 식사를 했지만, 막상 음식 자체가 맛깔스러웠던 기억은 별로 없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 난 아직도 점잖게 선 채로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오로지 노래 하나로 관객을 사로잡는 스탠딩 팝에 빠져 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내가 좋아하는 우리나라 가수가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5년 남짓한 가수 생활에 200여 곡을 취입하고 요절한 천재가수 배호(裵湖, 1942~1971)이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악보 위의 음을 따라 부르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그를 기본으로 하여 자신의 노래를 만들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특히 동영상이 남아 있는 "누가 울어"는 정말 압권이다. 무대 위에는 양복을 점잖게 빼어 입은 배호가 서있고, 가벼운 손짓 하나가 전부이건만, 그것만으로도 듣는 이를 사로잡기에는 너무도 충분하다. 너무 일찍 떠나버린 천재를 추억하며, 그가 부르는 "누가 울어"를 들어본다. 스탠딩 팝의 귀환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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