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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Jan 27. 2024

상큼발랄의 대명사 "Olivia Newton-John"

마침내 "Physical"로 Pop의 여왕의 자리에 등극합니다.  

1. 올리비아 뉴튼 존, 그녀는 누구인가?



전 세계에서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모든 곡들을 제치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한다는 건 실로 어렵고 또 엄청난 일이다. 우리가 흔히 전설이라고 칭하는 뮤지션들 가운데에도 일생에 걸쳐 단 한 번도 싱글 차트 1위에 오르지 못하고 스러져간 경우가 허다할 만큼 말이다. 그런데"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John, 1948~2022)"은 그 어렵다는 빌보드 싱글 넘버원에 무려 5곡을 올리며,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팝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사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이와 같은 인기를 끌만한 여러 가지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와 미모는 물론이고, 무언가 지적인 면모 또한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의 집안은 학자집안으로 유명한데, 올리비아 뉴튼 존의 외할아버지는 1954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이고, 아버지 또한 멜버른 대학의 교수였다고 한다.

올리비아 뉴튼 존.   사진출처: https://m.blog.naver.com/mrchoi86/222961184599

이처럼 다분히 보수적인 집안 출신의 그녀가 가수의 길로 접어든 이유에 대해서는 부모의 이혼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녀의 가수생활은 클리프 리차드(Cliff Richard)의 백 보컬리스트로 시작한다. 그러다 그녀 나이 23살이 되던 1971년에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한 밥 딜런(Bob Dylan, 1941~)의 원곡 "If Not for You"로 데뷔하면서 팝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유튜브에서 23살의 그녀가 부르는 "If Not for You"를 찾았는데, 정말이지 상큼 발랄한 모습. 신데렐라가 따로 없다.

지금부터 이런 그녀, 올리비아 뉴튼 존을 그녀의 음악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겠다



2. 컨트리 가수, 올리비아 뉴튼 존(?)


올리비아 뉴튼 존을 디스코나 소프트 록 가수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녀가 가수로 데뷔한 때부터 한동안 빠져 있던 음악적 장르는 사실 컨트리이다. 앞서 이야기한 "If Not for You"(1971년)가 그러했고, 1973년에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 차트 6위에까지 올랐던 곡인 "Let Me Be There"(1973년) 역시 컨트리곡이었다. 그리고 이 곡으로 그래미 최우수 컨트리 여자 가수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는데, 때문에 사람들은 1973년을 실질적인 올리비아 뉴튼 존의 데뷔시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1971년에 데뷔한 이후 근 2년간 그녀가 취입한 곡들은 모두 선배 뮤지션들이 불러 히트했던 노래들을 카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올리비아 뉴튼 존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게 만들었던 "Let Me Be There"를 부르던 시절의 그녀의 모습은 이러했다.

올리비아 뉴튼 존.   사진출처: https://www.discogs.com/ko/release/2801464-Olivia-Newton-John-Let-Me-Be-There/im

올리비아 뉴튼 존이 부르는 "Let Me Be There"인데, 컨트리 느낌이 묻어나는가?

한편 올리비아 뉴튼 존에게는 그 흔한 2년 차 징크스가 없었다. 그녀는 실질적 데뷔곡이라고 해도 좋은 "Let Me Be There"를 히트시킨 다음 해인 1974년에도 싱글 차트에 여러 곡을 올렸는데, 그 가운데 5위에 올랐던 "lf You Love me, Let me know"도 역시 컨트리였다. 그녀가 불러 히트한 또 하나의 컨트리 "lf You Love Me, Let Me know"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처럼 연이어 컨트리를 히트시키고 그래미 등에서 컨트리 음악 상을 수상하는 등의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미국의 정통 컨트리 음악가들은 그녀를 컨트리 가수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가장 큰 이유로는 그녀의 너무도 깔끔한 창법이 컨트리 특유의 읊조리는 듯하고, 꺾어대는 창법과는 많이 달랐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창법상의 문제 이외에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 예상했겠지만 그것은 바로 그녀가 미국인이 아닌 영국인이었다는 것, 그것도 호주에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마치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이 미국이나 영국에서 건너온 화가들을 (화풍의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인상파의 테두리 안에 감싸 안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3. 컨트리에서 (어덜트 컨템퍼러리) 발라드로?


컨트리 음악을 사랑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정통 컨트리 음악가들에 의해 컨트리 가수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올리비아 뉴튼 존의 노래에도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컨트리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레파토리에 다른 장르의 음악으로도 분류될 수 있는 곡들이 장착되기 시작한 것인데, 1974년에 발표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랭크된 "I Honestly Love You"가 그러한 변화를 대표하는 곡이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이 곡으로 이번엔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보컬과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컨트리에 국한되지 않는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다. 올리비아 뉴튼존의 음악에 변화의 조짐을 보인 "I Honestly Love You", 안 듣고 넘어갈 수 없는 곡이다.

올리비아 뉴튼 존의 인기는 그다음 해인 1975년에도 좀처럼 시들 줄을 몰랐다. "Have You Never Been Mellow"로 또 한 번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를 정도로 말이다. 한편 1974년과 1975년에 연이어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두 곡은 사실상 발라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 곡을 통해 올리비아 뉴튼 존은 서서히 컨트리와 작별을 고하게 된다. 그녀의 두 번째 싱글 1위 곡, "Have You Never Been Mellow"이다.


4. 디스코와 팝록으로의 방향 전환


컨트리와 발라드, 이들 두 개의 장르를 넘나들며 인기를 누리던 올리비아 뉴튼 존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원래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고, 열흘 붉은 꽃은 없는 법이듯 1975년을 정점으로 올리비아 뉴튼 존의 인기는 급전직하한다. 그러나 이 위기를 그녀는 뮤지컬 영화 그리스(Grease)에의 도전을 통해 현명하게 극복하며 다시 인기몰이를 시작한다. 영화 그리스에서 올리비아 뉴튼 존은 과감하게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상큼 발랄함을 벗고, 섹시한 이미지를 입고 나타난 것이다. 타이트한 블랙톤의 가죽바지와 어깨선을 훤히 드러내고, 입에 담배까지 꼬나물은 모습은 종전의 그녀의 이미지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올리비아 뉴튼 존 in: Grease . 사진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353954851965546082/

어느새 30줄에 들어선 그녀는 영화 속에서 샌디란 이름의 고등학생으로 분하는데, 30이란 나이가 무색할 만큼 극 중 배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낸다.  그만큼 최강동안을 자랑하던 그녀였는데, 아래의 그리스의 공식 스틸 사진 속의 그녀는 좀 나이 들어  보인다.

Grease 스틸사진사진출처: https://buzz.tt/movie/grease-2866

한편 올리비아 뉴튼 존의 변신은 (옷을 포함한) 외모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 영화를 시발점으로 하여 그녀의 음악도 바뀌게 된다. 컨트리와 발라드 정도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디스코, 팝록, 소프트 팝 등 다양한 음악 형식을 소화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그리스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올리비아 뉴튼 존과 존 트라볼타가 함께 부른 "You’re The one That I Want" 또한 히트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 삽입된  "Hopelessly Devoted to You"가 빌보드 차트 3위, "Summer Nights"가 5위에 함께 오르면서  동시에 싱글곡 2개를 차트 5위권 안에 진입시키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그녀의 인기는 예전보다 더 강하게 활활 타오르는데, 이를 가능케 했던 그리스의 삽입곡 중에서 존 트라볼타와 함께 부른 "You’re The one That I Want"를 들어 보자.

그리스의 성공에 힘입어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80년에 다시 한번 뮤지컬 영화에 도전한다. 공상 과학 뮤지컬 영화 제너두(Xanadu)가 그것인데, 제너두는 그리스와 달리 흥행에 실패한다. 그렇지만 올리비아 뉴튼 존이 ELO와 함께 담당한 사운드트랙 앨범은 이번에도 성공을 거둔다. 타이틀 트랙인 "Xanadu"가 8위, 오랜만에 클리프 리차드와 호흡을 맞춘 발라드 "Suddenly"가 20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같은 앨범에 실린 "Magic"은 대망의 1위에 올랐으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던 "Magic"과 "Xanadu", 놓치기 아까운 곡들이니 차례대로 들어보기로 한다. 먼저 "Magic"인데, Magic"으로 활동하던 시절 화이트 톤에 역시 화이트 부츠를 신은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Xanadu"이다.


5. 마침내, Physical이여.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사실 참으로 대단한 업적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났다면, 올리비아 뉴튼 존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 1942~), 아이린 카라(Irene Cara, 1959~2022), 마돈나(Madonna, 1958~)가 등장하기 전까지 여자 솔로로서는 원탑이었다고 말하기는 조금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이 진정한 팝의 여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1981년에 발표한 "Physical"에 힘입은 바 크다. 그만큼 "Physical"은 그 이전의 곡들과는 그 차원을 달리했다. 처음으로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나는 바로 대박을 예견했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Physical"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무려 10주 연속 1위를 고수하는 가히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우는데, "Physical" 이전에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0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것은 데비 분(Debbie Boone, 1956~)의 "You Light Up My Life"(1977년)가 유일했다.


"Physical". 참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노래야 그렇다 치더라도,  섹시 + 건강 + 에어로빅을 소재삼아 코믹으로 맛을 돋운 뮤직비디오 또한 실로 대단했었다. 우연히 화면에서 마주치게 되면, 멈춰 서서는 넋 놓고 바라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Physical"이 수록된 앨범 재킷으로 인터넷에는 아래 사진과 같은 것이 떠있다. 그러나 1981년에 내가 구입했던 앨범의 재킷은 이것이 아니었다. 내 또렷이 기억하거니와 우리나라에서 판매된 앨범에서는 스키니(레깅스?)에 상의는 완전 탈의한 상태에서 두 팔을 교차시켜 가슴을 가리고 있는 올리비아 뉴튼 존이 있었다. 너무나도  육감적인 모습이 Physical이란 노래제목과 딱 어울리던...

Physical 앨범 재킷.   사진출처:  https://m.blog.naver.com/igrammy/222934985663

올리비아 뉴튼 존이 부르는 "Physical". 이왕이면 공식 비디오로 보는 것이 좋겠다.


6. Epilogue...  끝을 향하여


컨트리 가수로서는 목소리가 너무도 맑다는 치명적인 약점(?)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음악의 방향을 바꾼 것이 전 세계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동력이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변신을 거듭하며 숨 가쁘게 달려왔던 올리비아 뉴튼 존의 가수로서의 삶도 서서히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녀의 가수로서의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1985년도에 발표되어 싱글 차트 20위에 오른 "Soul Kiss"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삶 자체의 종지부는 아니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환경운동가로서, 또 사회사업가로서 활발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으니 말이다. 유방암과의 지리한 싸움도 이어나갔고. 물론 가끔씩은 가수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두 번에 걸친 내한공연에서 우리는 가수 올리비아 뉴튼 존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사진 이기는 하지만 2016년, 68세에 이른 올리비아 뉴튼 존의 모습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올리비아 뉴튼 존 내한공연 포스터.   사진출처: https://www.mcst.go.kr/kor/s_culture/culture/cultureView.jsp?pSeq=15588

내가 이런 글을 한창 쓰고 있던 2022년 8월, 올리비아 뉴튼 존이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는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팝의 여왕이라 불리던 그녀가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적접적 사망원인은 그녀의 삶 속에서 늘상 그녀를 괴롭혀 왔던 유방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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