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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Jan 04. 2024

역사와 풍광의 콜라보레이션 "서천(舒川)" 주유기

Chapter 5. 스카이 워크? 난 "기벌포 해전 전망대"라고 부른다.

장항 솔숲을 이야기할 때 잠깐 언급했던 "스카이 워크(Skywalk)"는 근래 들어 서천의 확실한 명소로 자리 잡은 곳이니, 서천을 찾은 이상 이곳을 놓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이곳을 둘러보려면  - 신분증을 소유한 서천군민이나 65세 이상의 분들이 아니라면 - 입장료(2,000원)를 내야 한다. 아, 두 번째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2,000원의 입장료를 내면 서천군내의 카페며 편의점 등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을 주던데, 늘 이런 시스템으로 운용되는 것인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스카이 워크(Skywalk)라는 이름에 걸맞게 꽤 높은 곳에 이렇게 걸려 있다. 

정확히 계단을 얼마나 올라가야 스카이 워크가 시작되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아래 사진을 첫 번째 층을 오르다 찍었던 것만은 확실하게 기억이 난다. 해송(곰솔)은 이렇게 해를 등지고 봐도 검은빛을 띠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가? 해송의 영어 이름은 Black Pine이다. 

이곳이 스카이 워크가 시작되는 시점인데, 이렇게 보니 그 길이가 상당해 보인다. 아, 사진 끝에 사람들이 조그맣게 보일 텐데, 거기에서 다시 바닷속으로 스카이 워크가 이어진다. 

사실 근래 들어 좀 경치가 좋다는 곳에는 앞다투어 스카이 워크를 만들어  놓고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아 끄는 것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행이다. 예컨대 호주의 경우는 이렇게 열대우림(?)같은 곳에 스카이 워크를 만들어 놓고 있는데,

깊은 숲 한가운데서 수십 미터 아래의 골짜기로부터 솟아있는 나무들을 바라보게 되면, 형용불가한 감동을 받게 된다. 이에 더하여 비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골짜기를 흐르는 호호 탕탕한 물소리를 만끽할 수도 있고.

이것은 리투아니아의 팔랑가(Palanga)라는 해변 휴양지에 있는 것인데, 스카이 워크는 아니지만 바닷속 꽤 깊은 곳까지 다리가 이어져 있어 새로운 재미를 맛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시 장항 스카이 워크로 돌아오자. 앞만 보고 걸어가다,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저 멀리 장항제련소, 그리고 갯벌이 이어지는 해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말 그대로 훌륭한 풍광이다. 

장항 스카이 워크를 따라 웬만큼 걸으면, 이제 바닷속으로 들어가 있는 스카이 워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난간 때문에 몸을 더 빼지 못하고 사진을 찍었더니, 한께 여행했던 사람의 얼굴도 딸려와서 그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바다 쪽으로 나아가기 직전에 원형의 넓은 공간이 나와. 그리고 그 한복판에 "기벌포 해전 전망대"라고 적힌 기념비(?)가 서 있다. 그렇다면, 항 스카이 워크는 그저 단순하게 관광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백제 때 지금의 서천군 장항읍 일대를 일컫던 '기벌포(伎伐浦)' 앞바다에서 벌어졌던 '해전'을 떠올리게 할 요량으로 만들어졌던 것인가 보다. 


기벌포(伎伐浦)라. 틀림없이 내 머릿속 기억의 저장탱크에 있던 지명이어서 작동을 시켜보니 윙윙 거리는 소리 끝에 중앙처리장치가 기억장소를 찾아냈다. "기벌포.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부여의 사비성(泗沘城)으로 이르는 중요한 관문. 전략적 요충지여서 신라와 백제 그리고 당나라가 서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힘을 겨루었던 곳". 이렇게... 한번 작동하더니 연이어 관련자료가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오는데, 이번엔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 때의 충신이었던 좌평 성충(成忠)이 죽음으로 의자왕에게 간언(諫言)했던 말을 찾아냈다: “만일 외국 군대가 백제를 침범하는 경우 육로에서는 침현(沈峴: 옛 충남 대덕군 마도령)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군(水軍)은 기벌포 연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기벌포 해전 전망대라고 적힌 기념비 뒤쪽으로 기벌포 해전에 관한 설명이 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만들었는지 시인성이 거의 제로에 수렴하여 읽어 내기가 쉽지 않다. 

이곳에서 북쪽을 향해 바다를 바라보았더니 탁 트인 서천의  바다와 해송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위에서 말한 기벌포 해전 전망대가 있는 곳에서 바다 안쪽으로 다시 돌출된 구조물이 이렇게 이어져 있다.

여기가 끝인데, 그래서 나도 이렇게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었다. 그런데, 사진 속의 두 남녀는 저 공간을 상당한 시간 동안 오로지하고, 움직일 줄을 모른다. 이제 그만 좀 나오라고 말을 하기는 영 어색하고, 그렇다고 중앙에서 쫓겨나 한쪽 구석을 간신히 차지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건 모양새 빠져 싫고. 결국 사진을 못 찍었는데, 돌아가신 양주동 박사라면 이렇게 얘기하셨을 것이 틀림없어. "당신들 때문에 이곳까지 와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돌아선 사람들이 무릇 기하며?..."

그래, 팔랑가 해변에서 얻었던 이런 사진과 유사한 사진을 얻고 싶었던 것인데...

바다와 해송이 어우러진 옛 기벌포의 모습을 머리와 가슴에 담아 두고 발걸음을 돌려 돌아 나오는 길 위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 일제강점기에 광물수탈을 위해 세웠던 장항제련소가 보인다. 그러고 보면, 서천... 참 기구한 역사와 운명을 가진 곳이다.

스카이워크 입구에 서천의 구석구석을 다녀보고 그를 기억하고 싶은 이를 위해 이런 것이 준비되어 있는데, 혹시 서천 9경을 모두 다녀 볼 요량이라면, 종이 한 장을 준비해서 찍고 다니는 것을 고려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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