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은 이색이나 월남 이상재만큼의 전국적 지명도를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서천을 빛낸 인물로 꼽기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분으로 청암 이하복(靑庵 李夏馥, 1911~1987)이라는 분이 계신다. 이하복 선생은 한산 이씨로 이색 선생의 후손인데, 와세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보성전문(고려대학교의 전신)에서 교편을 잡으셨던 분이다. 사실 당신이 단순히 교수로서의 삶을 살아간 것에 그쳤다면 내가 당신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할 필요는 별로 없다. 그런데 이하복 선생은 그저 교수로서의 삶을 살다 가신 것이 아니라 말년에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학교를 짓는 등 교육사업에 헌신하셨다는 점에서 우리의 귀감이 되시기 때문에 당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선생이 살았던 집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잘 보존되어 있어서 20세기 초중반 중부지방의 전통적인 농가의 모습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는데, 이번 글에서 이야기하는 "이하복 고택(李夏馥 古宅)" 이 바로 그것이다. 아, 이 같은 사료(史料)로서 가치를 인정받아서 이하복 고택은 국가민속문화재 제197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이하복 고택을 찾게 될 때 제일 먼저 마주치는 모습인데, 집 앞의 넓은 공간 왼편의 계단을 올라 고택으로 들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아랫 마당에 무언가가 나란히 줄지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가징 왼쪽에 있는 것은 이하복 선생의 유언을 돌에 새겨 넣은 비석으로 당신의 삶이 담백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세상을 뜰 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이 겨우 "왔다 갔다"라니... 아, 왔다가 가기 전까지 한 일은 "사랑했다"였네.
그리고 위의 비석 옆으로 보이는 것들은 모두 이하복 고택에 대한 안내와 설명을 담고 있는 것들이다. 이하복 고택의 집의 구조 등에 관하여는 이것 이상 자세한 설명이 없으니 아래 사진 속의 설명을 잘 읽어 보기를...
아래사진은 이하복 고택의 전체 모형도인데, 위의 설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가져왔다. 왼쪽 앞에 보이는 것이 사랑채, 그 뒤에 ㄱ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안채, 그리고 왼쪽의 조그마한 것이 광채이다. 이렇게 보면 이하복 고택은 전체로는 ㅁ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오른쪽에 있는 것들은 나중에 내달은 집으로 편의상 윗채와 아랫채로 불리고 있다.
사랑채의 모습.
사랑채와 오른쪽의 안채 사이에 있는 문위에 가목재(稼牧齋)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관개토왕비문 연구에 일가를 이루셨던 여초 김은현(1927~2007) 선생의 글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목재에서 가(稼)는 이색 선생의 아버지인 이곡 선생의 호인 가정(稼亭)에서, 목(牧)은 이색 선생의 호인 목은(牧隱)에서 따온 것이라고.
가목재라고 쓰인 현판 밑의 문이 굳게 잠겨 있어서 보존 등의 문제로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겉모습만 보고 돌아서려니 무언가 허전해서 아랫마당으로 내려와 오른쪽으로 빙 둘러 돌아가보니 윗채와 아랫채 사이로 문과 같은 구조물 하나 없이 공간이 뻥 뚫려 있다. 오른쪽이 윗채고, 왼쪽이 아랫채인데... 비록 붙어 있기는 하지만, 안채와 사랑채와는 완전히 차단된 별도의 공간으로 독립적 생활이 가능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윗채와 아랫채가 이런 구조를 취하게 된 것은 며느리를 본 이후에 아들 내외가 편안히 독립하여 살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보존 내지 복구를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 아래 사진과 같은 고즈넉한 옛 농가의 풍경을 만날 수 있었을 터인데... 암만 생각해도 아쉽다.
이곳에는 예전에 사용했건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 또한 사료로서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윗채와 아랫채에 관한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각종 공사로 난리가 아니었다. 해서 차분히 무엇을 둘러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고, 때문에 고택을 꼼꼼히 살펴보지는 못했다. 안채의 모습을 볼 생각도 못할 정도였으니 정신이 없었다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보여주지 못하는 안채의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고.
돌아 나오며 한 장의 사진을 더 남겼다. 공사판이라는 말이 실감 나지?
아, 내가 이곳을 찾았던 때가 2020년 8월인데, - 위의 사진에서 이미 감을 잡았겠지만 - 당시 이하복 고택은 집안팎을 가리지 않고 온통 공사판이었다.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알 수 없는 돌멩이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고, 흙바닥은 온통 뒤집어져 있고.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어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하복 고택 바로 옆에 '이하복 고택 전시관'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아채릴 수가 없었다. 물론 이런 곳의 존재를 미리 알았더라면 눈여겨 찾아보았겠지만, 이하복 고택을 찾았을 당시에는 이곳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래, '이하복 고택 전시관'이란 것의 존재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이런 글을 발견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이 글을 보니 '이하복 고택 전시관'은 비교적 최근인 2018년 11월에 개관했다고 하네.
내 참 이렇게 크고 번듯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어떻게 이곳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무리 주변이 공사 중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하복 고택 전시관은 이런 구조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아, 다른 분의 블로그에서 사진을 퍼오다 보니 이렇게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 글을 쓰려고 블로그를 뒤지는 중에, 이런 사진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이하복 고택 근처 어딘가에 왼쪽으로 가면 이하복 고택이, 오른쪽으로 가면 이하복 (고택) 전시관이 나온다는 내용의 이정표가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단언컨대 난 어디서도 그 같은 이정표를 본 기억이 없다. 추측건대, 공사를 한답시고 저 이정표도 뽑아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코로나 사태로 문이 닫혀 있었던 한산모시관을 다시 방문하게 될 때, 이곳도 다시 한번 찾아와 봐야 하겠다고 다집을 하고 돌아섰는데... 4년이 지나도록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