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깨달음의 샘물 May 02. 2024

내 어머니의 고향 공주를 이제서야 찾습니다.

Chapter 4. 태화산자락에 숨어있는 천년고찰, 마곡사(麻谷寺)

# 첫째 마당: 들어가며



공주의 볼거리를 이야기할 때면 으레 마곡사(麻谷寺)가 화두처럼 등장한다. 마곡사가 신라 선덕여왕 9년(640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가 창건한 절로서 무려 140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는 천년고찰일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에 포함된 7개 사찰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도 그럴만하다. 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들어 있는 7개 사찰은 마곡사와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이다

.

마곡사가 위치하고 있는 태화산 자락은 산과 물이 쌍태극을 이루는 명당으로 기근이나 병란의 염려가 없는 길지로 유명한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비록 몇 번에 걸친 중수를 거치기는 했지만) 마곡사는 창건된 이래 천년이 넘도록 그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마곡천을 끼고 있는 마곡사의 풍광은 특히 봄에 빛나서 - 가을에 절경을 뽐내는 갑사와 대비하여 - 춘마곡(春麻谷)이라 불리고 있다. 



## 둘째 마당: 마곡사 가는 길



마곡사는 충남 공주시 사곡면의 태화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지도상으로 보면 당진영덕고속도로(30번)를 타고 가다 유구 IC에서 내려서 604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될 것 같다.

마곡사 가는 길. 차를 몰고 가다 중간중간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만큼 아름답다. 그리고 실제로 몇 번씩이나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는데, 전혀 위압적이지 않은 마을 풍경은 또 얼마나 정다운지...

독특한 빛깔을 가진 나무 또한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게 만드는데, 워낙 과문한 관계로 나무 이름은 모른다.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없는 풍경이 계속해서 펼치지는 길, 마곡사 가능 길이다.

이런 길을 한참을 달리다 보면 마곡사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이런 이정표를 만나면 누구라도 이제 2km만 가면 마곡사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2km를 더 가면 실제로 무료인 마곡사 주차장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곳에 차를 주차하고 씩씩하게 걷기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그곳부터 마곡사 일주문(一柱門)까지가 상당한 거리이고,  뿐만 아니라 일주문부터 본격적으로  마곡사가 시작되는 곳까지는 또 한참이기 때문이다.


결국 무료인 마곡사 주차장을 그냥 지나쳐서 계속 자동차를 몰아가는 것이 좋다. 그러면 마곡사로 들어가는 산문 가운데 첫 번째인 일주문과 마주치게 된다. 다만 공휴일 등과 같이  방문객이  많은 날은 일주문쪽으로의 차량운행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 셋째 마당: 마곡사를 둘러봅시다.



1. 일주문에서 남원(南院)까지


마곡사 경내가 시작되는 곳임을 알려주는 일주문인데, 여기까지 차를 몰아 왔다면 일주문 옆으로 뻗어있는 길로 접어들어 조금 더 오르기를 바란다.

그러면 마곡사가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의 본사이고,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음을 알리는 기념석을 보게 된다. 그리고 예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드디어 입장권을 구입하는 매표소가 나타난다. 

매표소에 잠시 멈추어서 있는 자동차가 보일 텐데, 이처럼 자동차를 탄 채로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다.

입장료. 자동차를 가지고 들어가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표소를 지나치면 '백범 김구 명상의 길'에 대한 안내판이 나온다. 웬 백범? 이란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마곡사에서 이처럼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9) 명상의 길을 조성한 이유는 1896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날, 백범 선생이 그에 대한 복수로 일본군 중좌를 살해한 사건과 연관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김구 선생은 살인범으로 인천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되는데, 복역 중 탈옥을 감행하여 1898년에 마곡사에서 은신하게 된다. 이때 하은당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서 수도생활을 하였는데, 법명은 원종(圓宗)이었다고 하네.

이렇게 스님이 된 김구 선생은 삭발을 하게 되는데,  당시 삭발을 했던 곳을 삭발바위, 마곡천과 삭발바위를 연결하는 다리를  백범교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백범교는 마곡사에서 마곡천 절경을 굽어보는 또 다른 명소가 되고 있다고 한다. 삭발바위와 백범교의 모습인데,

내가 찍은 것은 아니고 여기에서 퍼왔다.

백범 김구명상의 길을 걸으신 분들은 계시던데, 그분들의 글에 있는 사진은 (많이 죄송스럽게도) 건질만한 것이 없었다. 하여  공주시 홈페이지의 문화관광 사이트에서 명상의 길 사진 두 장을 가져왔다. 

공주시 홈페이지의 문화관광 사이트 홈페이지는 아래사진에서 보듯 깔끔하게 정비가 되어  있던데, 링크를 걸어 놓을 테니 관심 있으면 아래 주소를 클릭해 보기를.

'백범 김구 명상의 길' 안내판 뒤로 마곡사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 중앙에는 마곡사의 전체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는데, 보다시피 전각의 수가 무척이나 많다. 그리고 그들 전각들 중에는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801호)을 비롯하여 대광보전(大光寶殿, 보물 802호), 영산전(靈山殿, 보물 제800호) 등과 같이 문화재로 지정받아 보존되고 있는 것들도 많다. 그러나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에는 무려 30여 개의 전각이 있었다고 하니, 당시의 마곡사는 지금보다 훨씬 더 규모가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사진의 양 옆으로 마곡사 연혁이 우리글과 영문으로 적혀있는데, 한번 읽어두면 마곡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마곡사의 창건이나, 마곡사란 이름의 유래,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마곡사는 국가적 지원을 받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적혀있으니 말이다. 아, 마곡사의 창건과 관련하여서는 마곡사를 신라의 보조선사 체징(體澄, 804~880)이 9세기에 세웠다는 설이 있다는 것도 이곳에 쓰여 있다.

안내판을 지나쳤다고 바로 마곡사가 그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다시 이런 길을 조금 더 달려야

비로소 마곡사 입구의 주차장이 나타난다. 글쎄, 정확히 거리를 재보지는 않았지만, 마곡사 무료 주차장에서부터 이곳까지는 줄잡아 2km는 훨씬 넘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곡사를 찾는 분들이 많은 만큼 주차장은 넓게 마련되어 있는데, 아침 9시가 채 안된 시간인데도 벌써 꽤 많은 차량이 들어서 있다.

주차장 한편에 서 있는 둥근돌로 만들어진 비석

멋들어진 기와를 얹은 한옥이 주차장 옆으로 들어서 있는데, 

그 실체는 커피 등을 판매하는 카페 Amitié이다. 

다루정이라는 이름도 보이던데, 한자로는 茶樓亭이라고 쓰지 않을까 싶다. 


2. 마곡사의  남원(南院)


마곡사는 계류(마곡천)를 사이에 두고 남원과 북원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이미 18세기에 현재의 가람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말해도 느낌이 잘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아래와 같은 사진을 가져와 보았다. 아래 사진 한가운데 물길이 보일 텐데, 그것이 마곡천이고, 그 왼쪽으로 보이는 전각들이 남원이다. 물론 오른쪽에 보이는 전각들은 북원(北院)이고. 

위 사진은 아래 사이트에서 퍼왔고, 번호는 내가 붙인 것이다. 1이 해탈문, 2가 천왕문, 3이 대광보전, 4가 대웅보전... 유독 4개만 번호를 붙인 이유는 보다시피 이들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으면서 마곡사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원은 영산전(靈山殿)을 중심으로 한 전각들이 배치되어 있어 마치 북원(北院)과 독립한 또 하나의 사찰인 것처럼 보일 정도의 규모를 보이고 있는데, 남원의 전체 구조는 아래의 안내판을 가지고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아래사진 오른쪽에 마곡사의 입구에 해당하는 두 개의 문이 있는데, 바로 해탈문(7번)과 천왕문(8번)이다. 그리고 왼쪽에 작은 마당이 보일 텐데, 이곳에는 영산전(2번)을 중심으로 좌우에 수선사(1번)와 매화당(4번)이, 그리고 앞쪽으로 흥성루(3번)가 들어서 있다.. 그리고 매화당 뒤편에 명부전(5번), 명부전 위쪽으로 국사당(산신각이라고도 한다. 6번)이 위치하고 있다. 다만 남원 가운데 수선사, 매화당, 흥성루는 스님들이 기거하며 정진하는 곳이어서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때문에 방문객들의 발길도 뜸한 편이다.

안내판옆에 서 있는 이것은 화면이 계속 바꾸며 마곡사의 구석구석을 잘 보여주는 것인데, 사진으로 남겼더니 이렇게 밖에는 표현이 안된다. 동영상으로 찍어 놓았어야 했는데...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마곡사 남원을 둘러보기로 하겠다. 남원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마주치게 되는 것은 해탈문(解脫門)이다.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불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며,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어 해탈문이라고 부른다고. 마곡사 해탈문은 건립연대가 불명하지만, 고종 1년(1864년)에 중수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워진 것만은 확실하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

해탈문 안내판.

해탈문의 중앙통로 양옆으로 금강역사상, 

그리고 보현, 문수동자상이 있다. 우리의 전통사찰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지만, 불교 그 자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보니 안내글을 읽어보아도 무슨 말인지를 잘 모르겠어서 이들에 관한 설명은 약하기로 한다. 

심지어 사진을 찍어 놓았음에도 어느 것이 문수이고, 어느 것이 보현인지도 모르겠고. 

해탈문을 지났을 때, 백범 김구 선생의 휘호가 눈에 들어왔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백범 김구선생이 명성왕후를 살해한 후에 마곡사에 은거했었고, 이를 이유로 내가 마곡사를 찾았던 2022년 6월에 선생이 공주 역사인물로 선정되었는데, 이 때문인지 김구 선생을 기리는 특별 전시회(?)가 마곡사 곳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선생의 휘호 또한 그러한 차원에서 전시되고 있었던 듯하다. 

하나같이 의미 있는 휘호들이기는 하지만 내 마음에 특별한 울림을 주는 휘호 몇 점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휘호의 의미는 사진 속에 잘 나와 있다. 

이건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를 기념하며 1949년에 쓰신 휘호라는데, 얄팍하게 아는 것조차도 행하기 어려운 나 같은 범인으로서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이다. 김구 선생은 아는 것이 어려울 뿐, 그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오히려 쉬우셨나 보다.  

이 충무공의 시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39주년을 맞아 쓰신 글인데, 서산대사가 남기신 명문이다. 내 유독 좋아라 하는 글.

이것은 조국의 광복을 위한 마음을 모아야 그날이 올 수 있음을 강조하신 듯하고.

김구 선생의 휘호를 모두 보고 나서 뒤돌아 해탈문을 바라보면 한 장의 사진을 남긴다.

해탈문을 지나면 영산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오는데,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매화당이고,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흥성루이다. 그리고 흥성루 뒤쪽으로 지붕만 조금 보이는 건물이 바로 영산전이다.  

다만 나는 위 사진 속에 보이는 계단을 오르지 않고, 해탈문을 지나면 마주치게 되는 또 하나의 문인  천왕문(天王門)을 지나 명부전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천왕문이고,

천왕문 안내판이다.

천왕문은 마곡사의 두 번째 대문으로, 문 안쪽에는 동서남북의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안치되어 있다. 건립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2호로 보존되고 있다. 사찰을 많이 다니니 사천왕상이란  것은 많이 보았지만, 막상 사천왕에  대해서는 그냥 조금은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마곡사의 경우 사천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놓고 있어서 한번 읽어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사진도 각기 한 장씩 남겨놓게 되었다. 이들 사천왕 이야기를 차례대로 해보자면... 먼저 동쪽을 수호하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이다. 설명에는 왼손에 칼을 들고 있다고 하는데. 막상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북쪽을 수호하는 다문천왕(多聞天王). 왼손에 늘 비파를 들고 있다. 

남방을 수호하는 증장천왕(增長天王). 오른손에 용을, 왼손에는 여의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서쪽을 수호하는 광목천왕(廣目天王). 오른손에 끝이 셋으로 갈라진 삼차극(三叉戟)을 들고 있고, 왼손에 보탐을 받들어 쥐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 왼쪽으로 접어들면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十王)을 모신 전각인 명부전(冥府殿)과 만나게 된다. 

설명을 읽어보니 시왕은 불교경전에서 등장하는 지옥의 신들로, 우리에게 익숙한 염라대왕은 그중 다섯 번째 왕이라고. 

명부전에서 바라보면, 저 멀리 대웅보전이 보인다.

명부전 왼쪽으로 보이는 이 건물은 매화당(梅花堂)인데, 이곳은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는 곳이어서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다. 아,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은 매화당의 뒤쪽 모습이고, 

매화당의 정면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매화당 옆에 남원의 중심 전각인 영산전(靈山殿)이 있는데, 영산전 내부에 7분의 여래불상과 1,000분의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어 일명 천불전(千佛殿)이라고도 불리는 건물이다. 보다시피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이고 지붕은 맞배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안내판에는 조선시대의 불전으로 마곡사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효종 2년(1651년)에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키면서 고쳐지었다고 적혀있다. 그러니까 영산전의 나이는 근 500살을 헤아리는 셈인데, 이런 점이 고려되어 보물 8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전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조선 제7대 왕인 세조의 글씨로 알려져 있는 현판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영산전 앞으로 또 하나의 전각이 있는데, 바로 흥성루(興成樓)이다. 이름에 루(樓) 자가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찰의 진입 누각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마룻바닥이 높지 않아 구조상으로는 누각이라고 보기 곤란한 면이 있다. 

홍성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을 취하고 있는데, 보통의 사찰들의 진입누각에 비해 상당히 큰 편에 속한다. 이처럼 영산전 앞에 흥성루와 같은 규모가 큰 누각이 있었다는 것은 마곡사 영산전 앞마당에서 대규모 행사가 이루어졌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한편 흥성루는 정확한 건축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은데, 건물의 구조나 양식으로 볼 때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흥성루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설명이 없어서 그랬는지, 별로 관심이 일지 않았다. 하여 흥성루 옆의 계단을 통하여 해탈문 쪽으로 내려왔는데, 내려오기 전에 계단 위에서 해탈문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이 건물은 수선사인데, 담장 밖에서 바라보며 사진을 한 장 남겼을 뿐. 아, 남쪽 권역에 속하는 건물 중 산신각에는 오르지 않았으니 그것은 보여줄 것이 없다. 


3. 마곡사의 북원(北院)


이제 마곡사의 북쪽 권역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마곡사는 마곡천을 사이에 두고 남원과 북원의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북원으로 들어가려면 마곡천 위에 걸린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이 다리의 이름은 극락교(極樂橋)이다. 극락교의 모습.

극락교 위에서 바라본 마곡천의 모습이고,

극락교를 건너와서 북원 쪽에서 바라본 극락교의 모습이다.

마곡사 북원의 안내도인데, 보다시피 많은 전각들이 밀집해 있다. 다리 앞의 붉게 표시된 곳이 현 위치인데, 그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범종루이다(7번). 현 위치 왼쪽으로 넓은 마당이 보일 텐데, 맨 앞에 보이는 것이 오층석탑(3번), 그 뒤로 보이는 두 개의 건물이 마곡사의 본전이라고 할 수 있는 대광보전(2번)과 대웅보전(1번)이다. 아, 마곡천 너머 왼쪽에 두 개의 전각이 보일 텐데, 앞의 것이 성보박물관(10번)이고, 뒤의 것은 템플 스테이 장소(11번)이다.

성보박물관은 마곡사의 성보(聖寶)인 괘불(掛佛) 1폭, 목패(木牌), 세조가 타던 연(輦), 청동 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  감지금니묘볍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제6권(보물 제270호),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 제269호) 등을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공간이다. 성보박물관은 1995년에 개관했는데, 시설을 보완해서 2019년에 재개관을 했다. 다만 성보박물관은 직접 가보지 못했는데,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위 사진의 출처는 이곳이다.

남원에서 극락교를 넘어 북원으로 들어오면 오른쪽으로 제일 언저 범종과 법고가 있는 범종루(梵鐘樓)가 보인다. 보통의 사찰들은 이를 범종'각(閣)'이라고 부르는데, 마곡사의 그것은 규모면에서나 건축양식면에서나 범종'루(樓)'라고 부를 만하다고 생각한다. 범종루는 용마루가 "亞자형(十자형)을 취하고 있고 각각의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는데, 10여 년 전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네. 연륜은 짧지만 건물이 멋지고 독특해서 한참을 바라보았고, 사진을 갖고 장난도 좀 쳐보았다.

각도를 달리하여 사진도 찍어 보았다.

뒷면에서도 사진을 찍었는데, 아쉽게도 현판은 읽을 수가 없었다. 한자, 그것도 흘려 쓴 글씨는 읽기가 참 어렵기만 하다. 

범종루 옆으로 상선약수가 있는데, 음용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마셔 보지는 않았다.

범종루 뒤쪽으로 있는 일군의 전각들은  심검당과 염화당 그리고 고방 등인데, 이들 전각은 잠시 뒤에 보도록 하고, 이제 마곡사의 본전들을 보러 큰 마당으로 나가 보자. 큰 마당에 들어서면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레 대광보전(大光寶殿)과 5층석탑에 머무르게 되는데, 한눈에 보아도 가람의 본전으로 제격을 갖춘 건물과 탑이고, 조용한 산사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가 마곡사를 찾았을 때는 위와 같은 장면을 만끽할 수 없었는데, 이는 각종 보수공사와 김구 선생을 기리는 특별전시들이 이어져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런 정신 사나운 부분을 제하고 내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은 이 정도였다는

대광보전 앞의 마당 중앙에 있는 5층석탑은 우리가 사찰에서 보통 마주치는 탑과는 다른 독특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한마디로 좀 길쭉하다. 때문에 안정감이 없어 보이는 면이 있는데, 그 이유는 탑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쌓은 데다가,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뒤에 다시 머리장식까지 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탑신의 지붕돌엔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아래 사진을 보면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다.

탑신의 몸돌에는 부처, 보살 등을 조각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5층석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대기의 머리장식인데, 그 독특한 모습은 이 탑이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즉, 고려 후기에 원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라마교 계통의 문화가 고려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탑을 그 문화의 한 예로 볼 수 있단 얘기이다. 

5층석탑에 관한 그 밖의 사항은 아래의 안내판을 참고하기를. 보물 제799호.

마곡사는 특이하게도 2개의 본전을 갖고 있는데. 이들 2개의 본전은 해탈문·천왕문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그 둘 가운데 앞에 있는 건물이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大光寶殿)인데, 지금 우리가 보는 건물은 불에 타버렸던 것을 조선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다만 아쉽게도 최초 건립시기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대광보전은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을 이고 있다. 앞면 5칸에는 각기 3짝씩의 문을 달았고, 천장은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꾸며져 있다는.

대광보전의 구조에 있어 독특한 것은 불단이 서쪽(왼쪽)에 마련되어 있다는 것인데, 따라서 비로자나불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대광보전이란 현판이 보이는 정면에서는 불상을 볼 수 없고, 오른쪽(동쪽) 출입구 쪽에서 불상을 바라볼 수 있다.  

사찰을 찾아도 법당 사진을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고, 더구나 법당에 직접 오른 기억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는데... 대광보전의 경우 불단 위에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닫집을 정교하게 꾸며 달았다는 설명도 있고, 불상 뒤의 탱화도 볼만하다고 해서 법당에 올라 사진을 한 장 남겼다.

대광보전을 비롯해서 마곡사의 모든 전각들의 기둥에는 주련(柱聯: 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이 걸려있는데, 이 가운데 대광보전의 주련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1946년, 48년 만에 마곡사를 다시 찾은 김구 선생 역시 대광보전의 주련, 특히 그중에서도 

"각래관세간(却來觀世間) 유여몽중사(猶如夢中事)" 

"물러나와 세상 일을 돌아보면, 모두가 마치 꿈속의 일만 같네"... 라는 구절에 감동받고 은거 시절을 회상하며 향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는 것이다. 

대광보전은 그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 양식이 독특한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하는데, 대광보전에 관하여는 아래 안내판을 참조하기를. 보물 제802호.

대광보전 옆으로 계단이 나있는데, 이 계단을 오르면 대웅보전에 이르게 된다. 

계단을 오르다 대광보전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아 봤다. 

계단을 오르면 대웅보전에 앞서 대향각과 마주치게 되는데, 

대향각은 스님들이 정진하시는 곳이라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굳게 닫힌 문에는 '그대의 발길을 돌리는 곳'이라고 완곡한 표현을 쓰고 있다는...

대향각 좌측에 대웅보전(大雄寶殿)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현존하는 전통 목조건축물 가운데 희귀한 중층 건물로 목조 건축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볼 수 있는데, 막상 내부는 시윈 하게 단층으로 되어 있다. 대웅보전이 처음 지어진 때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현재의 건물도 1651년  각순대사(覺淳大師)가 절을 다시 일으킬 때 고쳐 지은 것이라 하니 대웅보전은 그로부터 400년 가까이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지. 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801호로 지정되었다.

대웅보전의 규모는 1층이 앞면 5칸·옆면 4칸, 2층이 앞면 3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건물 2층에 걸려 있는 현판은 신라의 명필 김생(金生, 711~?)의 글씨라고. 

대웅보전으로 오르는 계단 가운데에 기왓장에 이렇게 써놓은 것이 보인다. 그렇지만 이 말이 계단 자체를 오르지 말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계단을 올라서 법당 안을 들여다보았다. 원래 대웅(보)전이라 함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마곡사의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나보다 뒤에 오신 분이 절을 하고 계셨는데, 도대체 몇 번이나 절을 하시는 것인지... 뿐더러 절하는 모습은 또 어찌나 신실해 보이시는지. 교회를 다닌다고는 하지만 겨자씨만 한 믿음도 없는 나와는 대비되게 신심(信心)이 우러나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다.

대웅보전에 관한 것은 아래의 안내판을 참조하기를.

대웅보전을 보고 돌아 나오는 길에 얼기설기 쌓아놓은 돌무더기 보여 대웅보전과 함께 사진에 담아봤다.

대웅보전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마곡천. 물소리가 참으로 시원하다.

꼭 어린 시절의 나 같은 놈을 만나서 잠시 동심에 빠져 들었다. 멀쩡한 징검다리를 놔두고 물길을 택한 놈이 있었는데, 영락없는 50여 년 전의 내 모습이다. 저 놈의 여파로 이번엔 다른 아이가 그 뒤를 잇는다. 

다시 마곡사 북원의 큰 마당 쪽으로 발길을 돌리며 걷다가 마곡천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는다. 멀리 보이는 다리는 남원과 북원을 연결해 주는 극락교.

대웅보전 쪽에서 다시 북원의 큰 마당 쪽으로 들어서면 백범 김구선생이 이곳에 은거했던 것을 기념하는 백범당(白凡堂)과 만나게 되는데, 백범 김구 선생의 일생에 대해서는 아래의 안내판을 참조하기를...

백범당 앞. 당신이 쓰신 불(佛) 자를 새긴 돌이 보인다. 

안내판 옆으로 향나무 한그루가 보이는데 이 향나무가  조국 광복 후 당신이 마곡사를 다시 찾았을 때 대광보전의 주련을 보고 감개무량해하며 심으셨다는 그 향나무이다. 

이런 이야기에 대하여는 아래 사진을 참조하기를.

백범당의 모습인데, 마루 왼쪽  끝에 당신의 전신상이 보인다. 

백범당의 마루 위 벽에는 행복이란 휘호와

당신이 즐겨 쓰시던 휘호인 서산대사의 글이 적혀 있다.

백범당 옆으로 보이는 이 건물은 부처님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제자인 16 나한을 모시고 있는 응진전(應眞殿)인데, 철종 3년(1852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응진전의 주련도 마음에 들어서 해설 부분을 사진으로 남겨 놓았다.

응진전에 관하여는 다음의 안내판을 참조하기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5호.

대광보전 오른쪽에 보이는 전각은 심검당(尋劍堂)인데, 건립연대는 미상이지만 정조 21년(1797년)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 심검당은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주로 선실(禪室)이나 강당에 이런 이름을 많이 붙인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이 심검당 앞에 6월의 공주 인물인 백범 김구 선생에 관한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 가운데 내가 주의 깊게 본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의미를 가진 여의(如意)라는 휘호. 如자의 오른쪽 口자안에 意자를 쓴 것이 독특하다. 

다음으로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 선생에게 정영국을 추천하는 글이 적혀 있는 김구 선생의 명함. 명함 전면에 이름 외엔 아무것도 적혀 있는 것이 없다. 허긴,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당신을 알리기에 충분하셨던 분이시니까.

그리고 이건 '백범 선생에게'라는 글이 적혀 있는 윤봉길 의사의 수첩. 보물 제568-2호.

심검당 북쪽에 있는 2층으로 된 창고인 고방(庫房)으로 들어가는 문인데 공사 중이어서 출입금지.

이곳은 고방과 이어지는 곳으로 스님들이 기거하시는 요사채라고.

심검당과 고방에 관하여는 아래 안내판을 참조하기를...

고방 뒤쪽으로 보수공사가 한창인 건물이 보이는데, 스님들의 생활공간인 연화당(蓮花堂)이다. 

연화당의 내부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심검당, 고방, 연화당 등에 관하여는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근래 들어 사찰들마다 앞다투어 템플스테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있는데, 마곡사 역시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템플스테이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어 그런지 성보박물관 옆뿐만 아니라 연화당 옆에도 그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입구에 마곡사 템플스테이란 글씨가 보인다.

마곡사를 뒤로 하고 돌아가는 길. 좀 떨어져 바라보니 대공보전과 대웅보전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찾은 주차장가에서 부모은중경의 한 구절을 만난다...










이전 21화 내 어머니의 고향 공주를 이제서야 찾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