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이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
살아 있다는 것이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 글은 무엇을 의미하는 글인가?
왠지 섬뜩하게 느껴진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도 소문처럼 불분명하고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살아 있음’의 의미가 이렇게 생각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사실,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내 안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의 기억 속에서 나는 어떻게 자리 잡고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잊어버리는 순간, 그 사람은 내 마음 속에서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오래전 자주 연락하고 보아왔던 친구조차, 지금 내 머릿속에는 살금살금 지우개가 작동하고 있듯이 말이다. 그럼 어느 날, 누군가 내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게 된다면, 나 역시 그 사람에게서 영영 지워질수 있다는것이다.
내가 정말 잘 살아 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결국 타인의 기억과 시선이 어느 정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는 살아 있고 싶고, 누구보다 확실한 존재라고 믿고 싶지만, 정작 누군가는 나를 ‘그저 그런 사람’으로 쉽게 치부하거나 머릿속 지우개로 지워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종종 남의 평가나 인정에 집착한다. 남들이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봐주길 바라면서, 때로는 진짜 내 모습이 아닌 것을 스스로 포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포장된 삶이 과연 ‘진짜 살아 있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겉보기에는 좋아보일지 몰라도, 내면 깊은 곳에서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이게 정말 나인지, 내가 원하는 삶인지. 오늘 ”짧은 필사 문장 하나가 여러가지의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가 누군가를 지워버리는 순간, 그 사람에게서도 나는 쉽게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존재가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거 같다.
결국 ‘살아 있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숨을 쉰다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존재하는 방식이자, 타인과 연결되고 기억되는 형식인 것 같다.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 전전긍긍하기보다, 내가 진정 원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누군가의 존재 또한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여유와 배려를 갖추는 것. 그렇게 함께 살아갈 때, 비로소 나도 온전하게 살아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게 아닐까?
오늘 이 순간도 나 스스로에게 묻고, 주변을 둘러보고, 때때로 흔들리고 다시 일어서며 더 나은 삶을 그려 나가는 것. 그 것 자체가 진짜 살아 있음’에 한 발 다가서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