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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와 생각의 기록

by 은빛지원


네가 있든 없든 나는 어차피 외롭고 불행해

나는 고집스럽게 대꾸했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최진영 소설, <구의 증명>




오늘도 필사를 했다.

"더 좋은 어휘를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 "을 펼치고 짧은 문장을 옮겨 적는다." 그런데 필사를 하다 말고 책 표지를 다시 바라본다.

"이거 철학책이야?"

아니다. 이건 철학책이 아니라 필사책이다.

하지만 짧은 문장을 필사하고 나의 느낌을 정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깊이 있는 생각들이 따라온다.


오랫동안 일기 쓰듯 필사를 하고 있다.

처음 필사를 시작하던 때가 생각난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파란 잉크를 사서 펜에 찍어 글 쓰던 추억을 생각하며 잉크도 사고 만년필도 구입했다. 그렇게 따라 쓰기만 하고 때론 생각정리도 하고 바쁠 땐 그냥 덮어 버렸다. 이번 필사책은 생각 정리할 수 있는 여백이 많다.


글을 쓸 용기가 생겼다.

필사책에는 짧은 문장을 따라 쓰고, 나의 느낌을 적을 수 있는 여백에 내 생각을 채우다 보면,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노트에 적다 말고 브런치 스토리로 옮겨왔다. 매일 필사를 하고 생각정리 하다 보니 스토리글이 완성된다.


나는 더 나은 표현을 쓰고 싶다. 같은 말이라도 조금 더 세련되고 의미 있는 단어를 고르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말과 표현들이 많이 서툴다. 마음속에는 많은 감정이 있는데, 그걸 온전히 담아낼 어휘를 찾기가 어렵다. 이 책은 나 같은 초보작가들을 위한 필사 책이다.


외로움, 관계, 그리고 함께한다는 것

오늘 필사한 문장은 “네가 있든 없든 나는 어차피 외롭고 불행해.”

친구가 있어도, 가족이 있어도, 연인이 곁에 있어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외로움과 불행은 특정한 사람이나 관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는 누구나 크든 작든 외로움을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사가 이 문장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이 말이 큰 울림을 준다. 관계를 맺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행해도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우리는 보통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찾지만, 진짜 중요한 관계는 ‘행복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함께 견딜 수 있는 것 임을 깨닫는다.


오늘의 필사를 하며 나는 나의 외로움을 떠올렸고,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되새겼다. 친구가 있어도, 가족이 있어도 느껴지는 어떤 공허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놓지 않고 함께하는 이유.


글을 쓰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단순히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그저 불행해도 괜찮을 만큼,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도 필사를 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의 이야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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