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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과 남음

시간이 주는 선물

by 은빛지원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그러나 시간은 또한 우리가 싫어하는 모든 것, 모든 사람들, 우리를 증오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또 고통, 심지어 죽음까지도 파괴하는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시간은 우리들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상과 모든 고통의 원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지나간다

미셸 투르니에의 문장을 읽으며, 시간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은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우리가 애써 붙잡고 싶은 순간도, 소중한 사람들도, 때로는 영원할 것 같던 감정들도 결국 시간 앞에서는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동시에, 시간이 사라지게 만드는 것 중에는 우리가 미워했던 것, 견디기 힘들었던 고통과 아픔도 포함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좌절과 아픔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를 붙잡아 주고, 버틸 힘을 주는 말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그 순간들은 우리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만 같았지만, 결국 우리는 살아남았고, 시간 속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 파괴된 시간 속에서 더 단단해지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오래 함께했던 직원이 가정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함께한 시간이 길었기에 정이 많이 들었고, 익숙한 얼굴이 사라진다는 게 아쉽지만, 나쁜 감정이 아니기에 편한 마음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걱정 마, 나 잘할 수 있어. 자기가 떠난다 해도 우리는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는 사이잖아."

그 직원도 웃으며 말했다."사장님, 언제든 큰일 있으면 불러요. 저도 떠난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수시로 연락하고 올 건데요, 뭘… 그런데 이젠 사장님이라고 안 부를 거예요. 언니라고 할 거예요."

"그래, 그래." 마음은 섭섭하지만, 보내야 할 사람은 보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가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단순한 직원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정말 감사한 사람이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그리고 아팠을 때, 누구보다도 내 곁에서 힘이 되어 주었다. 특히 몸이 아파 가게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을 때, 딸과 함께 매장을 지켜주며 내가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다. 그 고마움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나보다 더 ‘사장님’처럼 손님을 맞이하고, 진심을 다해 일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더 고맙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이제는 두 분의 아픈 부모님을 지켜봐야 하고 살펴야 하는 상황, 그가 감당해야 할 시간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을 알기에 걱정은 된다. 무엇을 하고 어디를 가든 잘 살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나는 또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며, 조금 더 집중해서 가게를 운영해야 한다.

이 또한, 내가 해내야 할 몫이고 시간의 일부라 생각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지만, 동시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나는 오늘도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지만, 그 속에서 나만의 삶을 만들어간다. 그게 결국, 시간이 내게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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