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줄 아는 자세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모든 것은 제때에 온다.”
레프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몇 해 전, 막내아들이 고등학생이던 어느 초겨울 저녁. 시골에 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 딸과 함께 차에 있었고,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들을 데리러 가던 중이었다. 차는 막히고,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바람은 날카롭게 몰아쳤다. 불안한 마음으로 학원 앞에 도착했을 때, 30분 넘게 정류장에서 기다린 아들은 평소처럼 담담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 아이는 비를 피해 뛰는 성격이 아니다. 시험 기간에도 조바심 내는 법이 없다.
그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킬 뿐이다. 나는 종종 그런 아들에게서 침착함과 인내를 배운다.
반면, 남편은 불같은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멀쩡하다가도 언제 어떤 이유로 감정이 폭발할지 알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
그런 시간이 수십 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슬슬 그가 내 눈치를 본다.
어찌 보면 아들의 태도는 가장 평범한 것일지 몰라도, 늘 돌발적인 남편과 함께 살아온 탓에
나는 아이들의 조용한 기다림에도 지레 가슴이 콩콩 뛰곤 했다.
어른들은 말했다.
“불같던 성격도 나이 들면 사그라든다.” 일흔을 바라보는 남편은 분명 예전보다 많이 누그러졌다.
가끔은 여전히 성질이 불쑥 올라오지만, 이제 내 심장은 크게 요동치지 않는다.
그 모든 시간을 견디고 살아낸 나는, 많이 단단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참고 기다린다는 건, 억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다름을, 약함을, 그리고 나이 들어가며 변해가는 마음을. 미워도 고와도, 결국 끝까지 함께할 사람은 배우자뿐이다. 기댈 곳도, 기대어줄 사람도 결국 서로에게 밖에 없다.
이 또한 나이 들어가며 새롭게 깨닫는 진리다.
그러니 나는 믿는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을.
조용히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우리도 그렇게 서로의 곁에 머무르며 익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