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선고 합니다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중에서
"나는 당신이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소합니다. 당신은 사랑을 놓쳐 버렸고,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했으며, 그 체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갔기 때문에 이에 대해 고소합니다. 당신은 사형 선고받아야 하지만, 고독을 선고합니다..."
이 문장을 필사하다가, 문득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너는 너 자신에게 충실했니? 사랑을 놓치진 않았니? 행복하려 애썼니?’
그리고 나는 조용히 대답해 본다. “아직 노력 중이야.”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의무’라는 이름으로 다가올 때, 나는 마치 사형 선고 대신 고독을 선고받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오래전, 시부모님과 함께하며 힘겹게 살아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 긴 시간을 지나 분가하게 되었을 때, 내게는 처음으로 자유가 찾아왔다. 그 자유와 행복이 오래가지 않을까 봐, 나는 온몸으로 그 시간을 붙잡으려 했다. 내 나이 40대 초반이었다. 초등학교 동창들을 수소문해 한 명 한 명 찾아내어 동창회로 불러들이고, 담임선생님을 찾아뵙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모임에 자주 참석했다. 그때의 나는 ‘지금 이 시간’을 아낌없이 살아내고 있었다. 어제, 동창 친구와 톡을 하던 중 들은 말. “너, 우리 중에 제일 바쁘게 살아. 조금만 줄여.”
그 말은 나의 건강을 걱정하는 진심이었다.
새벽 다섯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쉼 없이 살아가는 나. 하루가 나에게는 늘 부족하다.
가끔은 나도 묻는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바쁘게 살아가는 걸까?”나는 힘든 일이 생기면 더 바쁘게 움직인다.
주저앉을 것 같은 순간에도 무언가에 몰두하며 견뎌낸다. 오기처럼, 객기처럼, 미련을 털어내기라도 하듯 더 치열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지금은 즐김이다. 내가 원해서 만들어 가는 즐김의 시간이다.
생각해 보면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지만, 종종 떠오르는 건 힘들었던 기억들이다. 아직도 나는 과거라는 그림자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을 향해 말한다.
“지금의 내가 좋아. 지금이 제일로 행복해.” 어쩌면 그 말은 나 자신에게 거는 최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최면이라도 괜찮다. 그 말이 나를 살게 하고, 나를 사랑하게 한다면, 그건 분명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말이니까. '그래 맞다 맞아' 우리는 모두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그 의무를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쓰고, 살아간다. 행복해야 할 의무, 이제라도 다하려 한다.
당신도 혹시, 행복해야 할 의무를 잊은 채 바쁘게만 살아가고 있진 않나요?
오늘만큼은 나처럼, 자신에게 조용히 물어보세요.
“지금, 나는 나에게 충실한가요?”
그리고 부디, 당신도 이렇게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 노력 중이야. 그리고 지금, 조금은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