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자 없는 그림책에 글을 쓰며)
우연히 글자 없는 그림책을 보게 되었다. 요즘 동화책을 보면 그림만 가지고 내용을 전달하는 도서가 은근 눈에 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몇 명 만난 적이 있다. 그 아이들은 마침 학교가 끝나자마자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왔다.
그날 난 그 아이들에게 [나는 지하철입니다]라는 책을 펼쳐 그림만 보여 주었다. 그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난 아이들에게 글은 보지 말고 그림만 보자고 언질을 주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그림만 열심히 보았다.
시골 학교 아이들이라 그런지 지하철을 타 본 적이 없다는 말이 태반이었다. 그렇지만 지하철이란 교통수단에 무척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까지 아주 정확하게 그림을 통해 내용을 이끌어 내었다.
그 뒤 곧바로 글을 따라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역시나 아이들은 먼저 그림으로 책을 한 번 읽어서 인지 집중하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또한 이해력도 상당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화란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글이 그림을 대신하고 그림이 글을 대신하는 상호 보완적 도구임을 분명히 그날 알게 되었다.
과거 몇 년 전 환경과 관련된 글 없는 그림책을 우연히 읽고 서 난 무척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모두가 기후변화나 환경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요즘 쓰레기, 기후, 환경에 관한 생태적인 그림책들이 부쩍 많이 출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내가 읽은 책도 그런 종류라면 이해가 충분히 갈 것이라 여긴다. [나무와 강]이란 단어 무척 자연적이다. 이 책은 일러스트부문과 독일 뮌헨 국제청소년 도서관에서 화이트 레이븐스 상을 받았다. 첫 장면은 무척 목가적이다. 전원에 펼쳐져 있는 어느 아름드리나무의 풍경은 누가 보아도 평화로우며 여유롭고 생명력이 넘친다.
처음 몇 페이지는 강 주변에 집도 사람도 강도 뗏목도 아이들도 물과 함께 나무와 함께 더불어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우린 이 관계란 어떤 것인가를 늘 고민해야 한다. 나와 타인의 관계, 타인과 나의 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그런데 그림을 몇 장 펼치다 보면 그 관계가 점점 무너지는 것이 보인다. 나와 타인과의 부재, 타인과 나의 부재, 그리고 더 나아가 자연의 부재 현상.
이런 현상을 목격했을 때 왜 에런 베커가 이 동화를 썼는지 분명히 알 수가 있었다. 아름드리나무가 계속해서 마치 애니메이션 영화처럼 그림마다 등장한다. 그 나무는 아이들을 품었고 강을 사랑했으며 아낌없이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자랐다.
그런데 왜 인간은 저 나무를 저 거짓 없이 늘 끊임없이 값없이 자신의 모든 것은 내어 주는 나무를 메마르고 건조하며 가지가 없으며 맺을 열매가 없는 불모의 나무로 변하게 만들었을까? 이런 동화를 통한 생각의 사유는 인간의 치부인 탐욕에 일침을 날린다.
누구는 말이다. 나무를 살리려 애쓰고 또 그 반대는 문명을 발달시키려 나무를 베어 버리고 그 터에 도로를 놓고 아파트를 세우고 그것도 부족해 아예 나무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버린다. 난 이 나무와 강을 읽으면서 몇 년 전 우리 주변에 골프연습을 위한 4층 짜리 건물이 지어지면서 그 마을을 지켰던 그것도 몇 백 년은 버텼을 물푸레나무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 물푸레나무는 더울 때는 그늘을 추울 때는 새들의 둥지를 그리고 비바람이 칠 때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 자리에 그 나무는 없다. 그리고 새들도 오지 않는다. 오직 골프 회원을 모집하려는 현수막만이 볼품 사납게 붙어 있을 뿐이다.
그 뒤로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가 터지자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자연을 파괴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난 해년마다 그 자리를 지나가면서 꼭 있어야 할 인간의 양심이 지하로 아주 깊숙이 잠식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무는 지상과 지하 두 곳의 세계를 비춰주는 신비한 영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물이 말랐을 때는 지하 깊숙이 물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고 더 나아가 더울 때는 인간보다 더 위대하게 지하 몇 백 미터까지 뿌리를 내려 잎을 키워 사람들의 그늘을 만드는 모습을 본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저 나무보다 못한 우리가 우리 수명보다 몇 곱절 더 오래 산 그 나무를 아주 뿌리째 포클레인을 가지고 와서 파 해져 버리는지.
이 나무와 강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아주 처참하다. 나무는 겨우 밑둥지만 남아있고 그 나무를 비롯해 다른 나무들도 거의 잿더미로 변해 있다. 그리고 그 많던 집도 아이들도 동물도 거의 사라져 오직 보이는 것은 사슴 한 마리.
난 이 동화를 아이들이 거꾸로 읽었으면 한다. 다시 나무가 부활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