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성 기억상실증을 다룬 이야기
이치조 미사키의 소설은 제26회 전격소설대상 '미디어워크숍문고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작품이다.
매일 기억이 리셋되는 선행성 기억상실증. 평범하지만 한없이 다정한 소년 가미야 도루가 사고로 기억장애를 앓는 소녀 히노 마오리를 만나
서툴지만 따뜻하게 마음을 쌓아가는 이야기는
두 주인공의 모습에서 따스함과 사랑스러움, 애틋함, 슬픔, 안타까움, 깊은 여운 등이 묻어 나왔다.
나는 평생 나 자신을 놀라게 하는 일 없이 살 줄 알았다. 내 행동에 나답지 않다든가 스스로가 믿기지 않는다든가 같은 느낌을 받으며 놀라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 방과 후, 나 자신에게 놀랐다. 학년이 바뀌고 얼마 후부터 반 남학생 몇 명이 한 남학생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시키는 대로 주범인 남학생이 시키는 대로
" 1반 히노 마오리한테 고백해. 오늘 중으로"
라고
그런데 소녀가 하는 말이
"너랑 사귀어도 되지만 조건이 세 개 있어."
"그러고 보니 이름이 뭐랬지?"
" 아, 응--- 가미야, 가미야 도루."
같은 학교 여자아이를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가미야가 히노 마오리를 그것도 걸어갈 인생이 다른 여자 아이를 사귀게 된 이야기.
가미야의 누나는 초목처럼 조용한 사람. 가미야는 히노를 데리고 공영 임대 아파트를 소개한다.
"가미야네 집은 진짜 깨끗하네. 이 시간에 가족분은 안 계신다고 들었는데--'"
청결감은 꾸밀 수 있지만 위생감은 꾸밀 수 없다. 히노의 친구 와타야.
어머니와 둘이 사는 와타야. 어머니는 책 장정을 하는 디자이너. 밤엔 집에서 일하고 낮에는 외출하는 엄마.
그런 와타야는 알바로 자료 찾기와 서류 작성, 영수증 관련 일을 돕는다. 도루의 아버진 소설 쓰기가 취미이고 낙인 분.
"나는 사고로 기억장애를 갖고 있어요. 책상 위에있는 수첩과 일기를 읽어 보세요."
어제의 기억밖에 생각나지 않는 히노.
과거의 일을 기억하려 매일 수첩과 노트를 읽어보는 나.
장애자 특례를 받고 학교에 출석하는 나. 이런 내가 가미야와 사귀기 위한 세 가지 조건.
1. 학교 끝날 때까지 서로 말 걸지 말 것.
2. 연락은 짧게 할 것.
3. 마지막으로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
그런데 그 가미야가 히노의 모든 병이 다 나왔을 때 도루가 그토록 소녀의 병이 완치되도록 헌신한 그 도루가 심장마비로 죽고 이 세상에 살아 있지 않다는 기록을 보았을 때 히노는 다시 죽고 싶어요 라며 절규하는 이야기.
더 이상 지켜줄 수 없다고.
머리는 너를 잊어도 심장은 너를 잊지 않았어.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실제로 영화로도 보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작품을 보면서 사람은 기억으로 사는 동물이 아닌 심장. 팔팔 뛰는 심장, 결코 사라지지 않는 애틋한 추억으로 사는 것임을.
그리고 늘 언제나 내일 일을 그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 그래서 현재 있는 순간 가미야처럼 삶에 위생감을 가져야 함을.
그래도--' 온갖 것이 변해간다 해도 인생을 삶으로써 과거가,아름다운 것이 흐릿해진 다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있다.
마음이 그리는 세계는 언제까지고 빛바래지 않는다.
상실뿐인 세상에서 도루는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마오리 안에서 도루는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마오리가 언젠가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우린 늘 내 주변을 청결히 해야 함을. 그리고 잊히지 않기 위해 메모하고 기억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갈수록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또 잊고 사라져 버릴지 모를 이 내용을 여기에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