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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파트먼트- 테드 웨인

두 예술가의 고군분투기

by 메리골드

빌리가 말하는 걸 처음으로 들은 건 내가 무릎을 내려다보며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저는 다른 분 들하고 의견이 좀 다른 것 같은데요."


그는 자신의 고향인 일리노이주의 지령만큼이나 편평한 바리톤의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뭔가를 잃어 간다는 말.

참 의미가 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진짜 남자다운 빌리. 그는 공화당 지지자이고 동성애를 혐오하고 지극히 보수적인 가치관의 소유자.


그런 빌리가 주인공에게 모든 면에서 우위를 차지.

아파트로 상징되는 나의 경제적 이점은 이 권력관계를 뒤집을 유일한 자원.


이 글은 중년이 된 나가 '세계 초강대국의 평화와 미국저구번영으로 이루어진 무딘 세계'였던 1990년대를 돌아보게 한다.


작가가 한 인터뷰를 보니 '90년대는 미국의 보수적인 지역 출신인 누군가가 컬럼비아 대학 MFA 프로그램에 속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미국에서 온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마지막 시기라고.


(그 당시 미국은 계층 상승 가능성이 거의 소멸되다시피 했다고 하니)


빌리는 아름답게 그리고 나는 부끄럽게 그려진 이 소설. 도널드 트럼프가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된 사건에 충격.


텔레비전 화면이 바뀌면서---

대통령이 자신에게 투표하고 승리를 예상하는 미소를 지으며--''


"클린턴은 서민 편을 든다면서 쇼를 하고 있지만 자기 같은 권력자들이 진짜로 값진 무언가를 초래할 필요가 없을 때에 한해서 편을 드는 거야."


나는 클린턴 역시 빌리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없이, 경제적으로 소외된 작은 도시에서 자랐고, 결함 있는 사람일지. 몰라도 자신의 지성과 노력의 힘으로 지금 있는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


그 순간 빌리가


" 그 인간한테 투표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


빌리는 늘 이렇게 말한다.

" 네 글에는 네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가 항상 드러나 있지 않잖아.

넌 그저 형식에 있어서는 전문가이고 예술가의 영혼은 없다는 얘기"


가을과 겨울 [캠프 레드우드] 거절하는 편지들이 쌓이고--' 그중 한 편지를 열어보면서 또 한 번의 거절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은 나.


[다른 편집자들은 선생님의 작품에 상당히 매료-'' 저희 봄호에 실을 수--']


그렇게 저 둘은 아파트에서 불법 동거를 시작.

대고모 집에서 아버지가 준 돈으로 세를 내고 친구를 도와주며 사는 나.


그런데 빌리의 작품이 우수하게 인정받아 장학금을 받을 위기에 처하자 빌리의 작품 원고를 지워버리고 강물에 통째로 노트북과 자신의 컴도 버려버리는 반전.


마치 도둑맞음 강도짓처럼.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게 바보 같은 짓. 빌리는 그 원고를 이미 다른 출판사에 넣어 계약을 딴 상태.


나는 놈 위에 뛰는 놈이라더니. 그러니 빌리가 장학금을 받았고 그와의 우정에 금이 가는 소설.


빌리는 그 경찰에 자신은 불법 거주지라고ㅡ. 친구는 아무 죄가 없다고ㅡ.


경찰 조사에 의하면 그 문은 절도 사건이 아닌 누가 부숴서 문을 열어 절도가 아니라고.


"왜 그런 짓을 했어?"

"왜?"


" 그건 내 소설 전부였어."

"내가 널 죽도록 패버리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알아."


"네가 존나 불쌍해서야."


두 학기 동안 가차 없는 비평을 들어 날 빌리가 불쌍히 여긴 이 대목.


그 말은 그를 아주 치졸하게 했지만 출구를 마련해 주었다.


그렇지. 친구니까 그 정도 말을 해 주지. 안 그래.

나랑 다른 아파트 찾아볼래?


사실 난 그와 친구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를 영원히 잃었음을 알았다.


나라는 인간의 껍질에서 가장 뚫고 가기 힘든 층이 늘어나다 빌리는 내가 그 안으로 들어오게 허락하는 일에 가까이 갔던 마지막 사람.


"우리나라의 소외된 남성과 여성들은 더 이상 소외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 당선자가 지지자들의 함성을 향해 맹세했다.


한 민주당 지지자의 자기반성에 가까운 서사의 글.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빌리가 빽빽하게 원고 여백에 적어 놓은 글과--'-

그 챕터 전체를 읽었다.


그리고 위축돼 있지도 않고요.


내 어깨뼈 사이에 앞발 하나가 느껴졌다.

빌리가 수업 시간에 쓴 수신이.


두려움을 무릅쓰고 그 껍질을 벗어나 상처받고자 한 걸음을 내딛는 이야기.

독자의 예상을 깬 배반으로 거듭난 소설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태도에서 진정성이 무엇인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조금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 이 글은 올 초에 읽고 두번 읽고 다시 쓴 글입니다. 처음과는 글의 깊이가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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