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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와 장비 탓 사이

숨겨진 재능과 남편 카드의 힘

by 봉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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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구갈동 주민복지센터에서 드로잉과 수채화 수업을 듣는다.


지난주에는 풍경화를 그렸다.

초등학교 때 해보고는 처음이라 낑낑대며 붓을 움직였다.


“아, 망했다…” 싶었는데, 막상 완성하고 보니 제법 괜찮았다.

가까이서 볼때는 엉성했는데 멀리서 보니 나무들이 풍경화처럼 어우려져 있었다.


선생님께서 그림 몇 군데를 정리해주시더니 말씀하셨다.

“처음보다 많이 늘었네요. 잘했어요.”


오랜만에 듣는 칭찬에 기분이 붕 떴다.

집에 와 남편에게 신나서 자랑을 늘어놓으며 폭풍 수다를 떨었다.


“남편, 선생님이 내 숨겨진 재능을 알아보셨어!. 오늘 칭찬도 잔뜩 들었어.

나 열심히 해볼까 하는데, 후원 좀 해줘.”


남편은 눈을 꿈벅이면서 물었다.


“무슨 후원?”


“물감도 전문가용으로 사야 하고, 수채화 종이도 코튼 100%가 필요해.

종이에 따라서 질감이 다르거든. 수채화는 종이와 연애하듯 해야한데. 밀당이라나~

호호호 그리고 이젤도 사야 하고... 에 또...”


나는 장비의 중요성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아주 진지하게 설명했다.

나의 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남편은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림 그리면서 장비 탓 하는 거 아닙니다.”


그 순간, 속으로 남편을 후려치는 상상을 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괜찮다.

내겐 남편 카드, 남카가 있으니까.

남카로 수채화 종이와 물감을 결제하며 나는 외쳐본다.


“남편~ 장비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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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딩이후 처음 그려본 풍경화. 그릴때는 이상한데 완성하니 괜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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