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있던 관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
“사람이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박혀 있었다.
미움이 습관이 되고, 의심이 방어가 된 채 나는 오빠의 변화를 믿지 못했다.
믿으려고 하면 다시 무너질까 봐 오히려 마음의 벽을 더 높게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가 말했다.
“회사도 그만뒀어. 세 달 정도… 태국 가서 쉬다 오려고.”
순간, 폐 안쪽이 싸늘해졌다.
예전의 도망치고, 싸우고, 무너지고, 외면하던 모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 길로 나는 오빠를 찾아갔다.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다시… 돌아올 거야? 또 예전처럼 되는 거 아니지?”
오빠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아주 작은 미소를 지었다.
어른이 된 얼굴인데, 어쩐지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네가 나 어떻게 보는지 알아. 억울하고, 밉고… 그럴 거야. 너도 마음을 닫았고, 나도 닫혀 있었지.
근데, 매주 엄마 보러 오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지내는 너를 보면서 나도 많이 미안하더라.
과거엔 진짜 못되게 굴었어. 근데 이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잠깐만 쉬고 올게. 약속할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랫동안 굳어 있던 경계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완전히 믿는 건 아니었지만 믿고 싶은 마음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솔직히, 오빠에게 그 5년은 다른 사람에게 20년을 버틴 것과 다름없었을지도 모른다.
회사를 몇 달 다니다 그만두던 사람이 5년 동안 출근을 하고, 엄마의 병원 일정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집안일을 나누고, 병원비를 내고, 항암 맞는 긴 시간을 묵묵히 기다렸다는 사실.
그건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분명한 의지였다.
스스로를 나약하다고 여겼던 사람이 현실에 뿌리를 두고 다시 삶을 시작하려 애쓴 시간들.
그 사실을 나는 뒤늦게 이해했다.
“고마워. 그리고… 무엇을 하든, 오빠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 말을 건넨 순간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미움을 정당화하며 버티던 어린아이 같은 나를 그제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용서란, 누구의 잘못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나를 붙잡고 있던 미움을 조금씩 내려놓는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가족 안에서 시작된 작은 화해는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기다리고, 조금 더 솔직해지는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사이에 쌓였던 오래된 벽은
이 고약한 병 덕분에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조금씩 다시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