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과정들이 나를 다시 살렸다
우리 부부는 동네 근처에서 소소하게 주말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벌써 4년째다.
암 치료로 몸이 약해져 있던 어느 날, 농장에서 바로 따온 유기농 채소를 먹은 적이 있었다.
아픈 몸에 첫 숟가락이 닿는 순간, 입안에 퍼지는 신선함과 달콤함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그 이후 우리는 동네를 수소문해 10평 남짓한 작은 고랑 하나로 텃밭을 시작했다. 땅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자 조금씩 욕심이 생겼고, 지금은 어느새 50평이 넘는 작은 농장 같은 공간이 되었다.
출석률이 높아서인지 주변 어르신들과도 정이 들었다.
고추와 상추를 한 줌 얹어주시고, 나무 자르는 일이 생기면 남편이 출동한다.
그런 소소한 풍경들이 우리 텃밭의 일상이다.
얼마 전에도 우리는 텃밭에 갔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 하지 않던가.
가을 햇살이 비치는 텃밭은 늘 그렇듯 나에게 가장 큰 힐링 공간이다.
배추와 무 몇 포기를 점검했다.
농약을 하지 않아 벌레 먹은 자국이 가득했지만 겉절이 해 먹기엔 딱 좋을 만큼 단단하고 싱싱했다.
“흙의 신령님이 길러주셨나?”
괜히 그런 마음이 들 만큼 신통했다.
마늘과 양파를 심기 위해 고랑을 다시 정리했다. 농작물을 다 뽑아낸 뒤의 텅 빈 땅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그 땅에서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개미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미생물을 가득 품은 흙은 마치 살아 숨 쉬듯 들썩거렸다.
농작물들은 그저 결과물일 뿐이었다. 그 사이에 흐른 수많은 시간들이 진짜 생명이고 행복이었다.
바람과 비, 벌레들의 흔적, 흙의 미생물, 햇빛과 온도.
그 모든 과정이 쌓여 땅의 농작물을 만들었다.
과정이 없었다면 그 결과는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이 있었다.
텃밭 한가운데에 밤이 한 움큼 떨어져 있었다.
누가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도 아니고,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담벼락 너머로 밤나무 가지 하나가 조용히 우리 텃밭 위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 가지에서 떨어진 밤들이 텃밭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온 것이다.
작은 가지 하나에서 먹고도 남을 만큼의 밤이 떨어지다니, 자연의 나눔은 볼 때마다 참 신비롭다.
오늘도 자연의 기운을 한아름 받아 흙냄새를 깊게 들이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따뜻한 겉절이와 갓 떨어진 밤으로 소박하게 차려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다시, 내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