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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03. 개근상이라 불린 오빠의 마음

가장 오해했던 사람이 가장 지켜온 사람일 때

by 봉순이

엄마가 대장암 판정을 받은 뒤, 오빠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던 사람이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5년을 버텼고, 엄마의 병원 일정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집안일까지 하나둘씩 맡기기 시작했는데, 쓰레기봉투 하나 버리기 어려워하던 사람이 설거지와 청소까지 해내는 모습을 보며 나는 굳게 닫아두었던 마음을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가 말했다.


“3개월 동안 태국 좀 다녀오려고. 회사도 그만뒀어.”


나는 그 말에 얼어붙었다.


“엄마 병원은? 그럼… 나보고 다 하라는 거네?”


전화를 끊자마자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역시 사람은 안 변해. 검은 머리 짐승을 믿는 게 아니라더니.

분노를 안고 엄마 집으로 향했다.'


엄마의 병원 진료 날, 의사는 나를 보며 물었다.


“오늘은 아드님이 안 오시고 따님이 오셨네요. 아드님은 어디 가셨어요?”

“오빠는 잠시 안식년을 갖고… 제가 대신 왔어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러시구나. 5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어머님을 모셨거든요. 개근상이라도 드려야겠네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제야 오빠의 ‘꾸준함’이라는 다른 얼굴을 의사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들었다.




그날 항암은 네 시간이 걸렸다.
나는 중간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고, 다시 병실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어디 갔다 왔어? 예전엔 오빠가 옆에서 졸면서 기다렸는데…”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또 조금 흔들렸다.


며칠 동안 엄마를 모시고 다녀보니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버거웠다.
노인을 병원에 데리고 다니는 일은 단순한 효도가 아니었다. 체력, 인내, 감정, 시간이 동시에 소모되는 일.

그걸 오빠가 5년 동안 해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속에서 뭔가 천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엄마 말로는 오빠가 회사를 그만둔 것도 내키지 않아서가 아니라 경영난으로 인한 정리해고에 가까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안함이 밀려왔다.


나는 스스로 만든 “오빠는 변하지 않는다”는 이미지 속에 갇혀 오빠의 노력을 보지 못한 채, 오랫동안 미움만 키워왔다.


엄마 곁을 지키며 잠 못 자고 기다리는 그 밤들 속에서 오빠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두렵고, 버겁고, 지쳤을까.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사랑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사랑보다 더 큰 책임과 더 깊은 소모가 필요한 일이었다.


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 생각에서 천천히 빠져나오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는 일은, 미움과 이해 사이를 오가며 천천히 마음의 매듭을 풀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날 문득 생각했다. 오빠가 내 곁에 있어 다행이라고.
그리고 이런 생각에 닿기까지 나도 꽤나 먼 길을 돌아왔구나, 하고.


“오빠 없는 동안, 내가 엄마 잘 돌볼게. 재미있게… 쉬다 와.”


그 말을 건네며 나는 오빠와 나 사이에 조금씩 다시 흐르던 감정의 온도를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그가 떠나기 전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조용히 마음속에서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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