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05.두려움 앞에 작은 문을 달아두었다

두려움을 벽이 아니라 ‘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뒤의 이야기

by 봉순이

일상이 천천히 회복되기 시작하던 어느 날, 나는 문득 ‘다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느꼈다.

사실 가장 두려웠던 건 병보다도 ‘내가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라는 감정이었다.


유방암 진단 후, 어렵게 키워온 IT 여성기업의 대표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회사는 결국 문을 닫았고, ‘엄마’, ‘대표’,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평범한 꿈들은 손에 닿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남은 건 체념뿐이었다.


“이젠 내 인생에 아이도, 커리어도 없겠구나.”


치료로 망가진 몸, 폐업의 상실감, 떠나간 동료들.
‘난임 시술’, ‘암 환자’, ‘폐업자’라는 단어가 뒤엉켜 마흔여섯의 나는 이름도, 역할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몸이 조금씩 회복되자 마음속 어딘가에서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멈춰 있을 순 없어. 폐물이 되어가는 중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거야.

다시 한번 해보자.”


작은 용기로 다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고, 단기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곳곳에 지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판교에 임시 자리가 있는데… 6개월 정도 가능하실까요?”


그 전화는 참 반갑고 고마웠다. 그러나 동시에 광풍처럼 두려움이 밀려왔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실수하면 어쩌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면…?’


걱정은 끝도 없었지만 “단 6개월만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판교 출근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6개월은 1년이 되었고, 프로젝트는 결국 2년 만에 마무리되었다.


▲ 다시 걸어보기로 했다. 아주 작은 용기로


그리고 끝일 줄 알았던 그 인연은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새 프로젝트가 생기면 다시 연락을 주는 사람들.
힘든 날 따뜻한 말을 건네는 동료들. 점심시간에 자전거를 타며 웃던 순간들.


눈치를 보며 움츠리던 나날을 지나 나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살아 있는 나’로 돌아오고 있었다.


두려움은 여전히 내 앞에 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벽으로 보이지 않는다.


“벽처럼 보였던 것들이 사실은 열 수 있는 문이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나는 내 앞의 두려움마다 작은 문을 하나씩 달아두었다.

문 앞에서 망설이던 날들도 있었지만, 조금씩 손잡이를 잡고 열어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문이 열릴 때마다
멈춘 줄 알았던 내 삶은
다시 아주 조용히 흐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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