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01.똥손이라 불리던 내가 '봉순이'가 되기까지

드로잉 모임에서 시작된 작은 용기와 나의 첫 캐릭터 이야기

by 봉순이

판교의 프로젝트는 처음엔 6개월 계약이었다.
하지만 연장에 연장을 거듭해 어느새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 돌아보면,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특히 판교 프로젝트를 하며 함께했던 작은 소모임이 내겐 유난히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이 먼저 앞섰다.
화가들이 화면 위에 쌓아 올리는 섬세한 묘사와 표현 앞에서 마음이 벅차오르던 날도 많았다.

결국 나도 그림을 처음 배워보고 싶어 아이패드를 샀다.


그리고 회사 안에서 그림 모임 하나를 시작했다. 이름하여, ‘똥손탈출’.

우리는 모두 초보자였다.


어떤 날은 동그라미 몇 개만 그리고 끝나기도 했고, 사람을 그렸더니 이집트 벽화처럼 나와 다 함께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서툰 그림이었지만, 서툴다는 이유로 오히려 더 따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그린 그림이 사람들을 웃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그에 대해 글을 쓰면 동료들이 읽으며 웃고 즐거워했다. 그때 느낀 행복감은 정말 최고였다.


그렇게 나에게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프로젝트를 마친 뒤, 나는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일이 없을 때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하나하나는 아주 작지만, 완성할 때마다 또렷한 성취감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도서관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에 발을 들였고, 동네 ‘당근 드로잉 모임’에도 나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MZ세대들과 나란히 앉아 웃고 그리며 깨달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이라는 벽’이 생각보다 훨씬 얇고 투명하다는 것을.


특히 드로잉 모임에 처음 참석했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참석자 넷 중 40대는 나뿐이었다. 그중 한 청년의 그림 실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사진 속 캐릭터를 오차 하나 없이 펜으로 재현해내는 솜씨를 나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 놀라운 관찰력과 정확도의 비결이 궁금해 결국 슬쩍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잘 그리세요? 비법이 있나요?”


그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잡지떼기 했어요. 잡지를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그리는 거예요.”


그 압도적인 실력은 타고난 천재성이 아니라, 묵묵히 반복해온 시간의 결과였다. 그 말이 가슴 깊숙이 박혔다. 그날의 감동이 채 가시기 전,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생애 첫 인스타툰을 그려 올렸다.



▲ 똥손인 내가 처음 동네 당근 드로잉 모임에 참석했던 날



그때부터 기분 좋은 고민이 시작됐다.


“나도 나만의 캐릭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종이 위에 동그란 얼굴을 그리고, 단발머리를 얹고, 내가 즐겨 쓰는 빨간 머리띠를 둘러주었다. 그렇게 익숙하고 친근한 얼굴이 완성되었다. 나의 분신, ‘봉순이’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곁에는 코가 발그레한 남편의 캐릭터도 나란히 그려 넣었다.







그 후의 일들은 마치 눈사태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캐릭터를 다듬고, 부부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미니멀 가족 그림일기’를 시작했다.


아직은 표현할 수 있는 표정이 몇 개뿐이지만, 나는 이 단순한 그림들이 무척이나 소중하다.

서툴지만 그 속에 진짜 ‘나’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하루, 나의 감정, 나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붙잡아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커다란 기쁨이 되었다.


중년의 회복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연필 끝에서 시작된 선 하나, 작은 캐릭터 하나, 허술해 보이는 낙서 한 컷. 그 미세한 움직임들이 내 하루의 방향을 바꾸고 마음의 숨구멍이 되어주었다.


이제 나는 안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똥손’이 아니다.

서툴러도 괜찮은, 아니 서투름조차 나만의 결로 빚어내는

나는 지금, 당당한 창작자가 되어가고 있다.








keyword
이전 17화4부-05.두려움 앞에 작은 문을 달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