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시간에 문법을 배울 때 우리는 '최상급'이라는 단어를 익히 들어봤다. 말미에 est를 붙이면 '무엇 중에서 최고의'라는 뜻이 되며 한글로는 짧게 말하면 '가장~의'이라고 불린다. 내 주변사람들은 비교급 보다는 최상급을 사용해서 소개해주고 싶을 정도로 모두가 다 개성있고 독특하며 매력적이다. 주변 사람들과 내 자신을 비교하려하기보다는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각각의 장점을 본받으려고 하다보니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는 것 같아 이 자리를 빌어 간단하게나마 소개하고 싶다.
Y씨는 요리 솜씨가 제법 좋아서 강된장을 베이스로 한 도시락을 매일 싸 왔다.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서 휴식시간을 주로 혼자 보냈고 그에게는 식후에는 꼭 체조를 해야하는 루틴이 있었다. 삭막한 회색빛 빌딩숲에서 자신만의 푸른 빛깔을 잃지 않고 가꾸어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어서 넌지시 물어봤다. "매일 건강하게 먹고 운동을 하는 게 힘들지 않나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태어났을 때 우리는 모유나 이유식같이 소박하게 먹고도 이렇게나 컸는걸요. 배부르게 먹어야만 삶이 유지되지는 않아요." 명쾌하게 대답했던 그의 답변은 나는 평생 잊을 수 없게 되었다.
J씨는 손을 포함해서 움직임이 정말 빠르던 사람이였다. 오전회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설 때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모든 사람이 나올 때까지 문을 붙들고 있기도 했으며, 점심시간에는 누구보다 먼저 물을 따르고 수저 세팅을 완료해서 내 할 일이 없어서 무안하기도 했었다. 목표한 시간은 얼마나 잘 지키는지 기계처럼 일한다는 수식어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건가 싶었다. 1분 1초를 아까워하는 나는 퇴근시간 직전에 일을 산더미 같이 쌓아서 넘겨주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데 어느 날 퇴근 10분전에 매니저로부터 날벼락 무전을 받았었다 "진아씨, 창고 1번 아우터 행거 바코드 찍어서 출시년도 별로 정리부탁드려요." 옷이 한 두개도 아니고 무게도 장난없는 아우터들을 10분안에 다 정리하라는 것은 완곡한 표현으로 야근을 뜻하는 것 아니겠는가. 무전을 받는 타이밍에 같이 창고에 있던 J씨 앞에서 나는 불만을 참지 못하고 궁시렁대기 시작했다. "아니 상식적으로 옷이 100벌이 넘는데 10분안에 하라는 게 말이 되나 진짜. 내 퇴근시간 모르는 거 아닌가 이정도면." 듣고 있던 J씨는 읊조리듯이 나지막히 나에게 한 마디를 했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진아씨도 잘 알지 않나요? 비록 오버타임으로 근무를 하게 될 지라도 일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천천히 느리게 배워서 남들보다 성장이 더뎌지는 것보다 흘러가는 순리에 맞게 빨리 터득해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게 더 좋지 않을까요?"
인생이 트랙이라면 그 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달리기와 걷기만 있는게 아니라 걷기에서 달리기로 가기 위한 뜀박질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K씨는 학원을 운영하던 원장님 아들로 태어났지만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였다. 한 가지에 몰두해서 집중하는 스타일이여서 주위 사람이 곁에 와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는 그 집중력으로 공부를 했으면 아버지 학원 1등 영재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끝까지 공부와는 인연이 없었고 게임과 독서를 즐겨했었다. 그 집중력은 성인이 된 이후에 이어졌으며 턱걸이 성적에 맞춰서 간 대학교에서 드디어 빛을 발하고 말았다. 추출시간과 물의 온도에 따라서 향과 맛이 달라지는 원리에 흥미를 느낀 그는 그렇게 커피의 길을 걸었다. 라떼아트에 흥미를 느껴서 라떼아트 챔피언 대회에도 나가기도 했으며, 커피 원두 산지를 가기 위해 남미까지 다녀오곤 했다. 그를 알게 된 이후로는 쉽사리 무엇을 좋아하고 열광한다고 말을 하기 망설여졌다. 그 정도로 내가 애정을 보였던 적이 있는가 싶어서 말이다.
S씨는 고 3때 알게 되었다. 고 3 첫 모의고사가 중요하다는 얘기에 잔뜩 긴장을 한 채로 일렬로 나열된 책걸상에 앉아서 시험을 쳤었다.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고 월등히 잘하지도 않았던 나는 소위 중상위권 성적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학생이였다.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온 날, 담임선생님 호출에 교무실로 불려간 나는 처음 상담을 하게 되었다. 바로 이 담임 선생님이 S씨이다. "내가 너를 너무 과소평가했나보다. 전교 13등이라니 정말 숨겨진 실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구나. 심화반에 들어갈 준비를 해라." 연신 웃는 그의 얼굴에서 속사포 같이 쏟아져 나온 이 말에 나는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믿지도 않을 것 같아서 그저 미소로 화답하고 교무실을 빠져나왔었다. 수리 과목을 비정상적으로 잘 찍어서 내 수준에도 맞지 않는 2등급이 나왔어서 운좋게 전교 13등을 해버렸고, 그로 인해 성적 우수자들만 모아놓고 등수대로 방구석부터 차례로 앉는 심화반에 배정받은 내 자리는 나에게 가시방석과 같았다. 다음 모의고사가 끝난 후에 나는 또 교무실에 불려갔다. "성적이 너무 떨어졌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니? 몸이 아프거나 안 좋은 일이 있니?" 라고 얼굴이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S씨는 나에게 물어왔다. "아니요 원래 이게 제 실력이에요. 저번 모의고사에서는 찍기를 제가 너무 잘해서 그만..." 나의 대답을 들은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진아 너는 인생의 모든 운을 다 쓴 것 같구나. 로또에 당첨되기는 글렀네 허허. 그렇게 잘 찍었다니."
그가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이 말이 저주가 된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태껏 로또에 5천원도 당첨되어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