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대회 D-70
그러니까 착각이 이렇게 위험한 거다.
체육관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트레드밀로 5km 달리기에 성공했을 때, 10km 마라톤 대회에 신청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직 두 달이나 남았으니 조금씩 속도를 높이고 거리를 늘리면 원샷으로 골인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생애 첫 마라톤의 골인 포즈를 대여섯 개쯤 그려보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멋지게 털어냈다. 훗.
그동안 실내 체육관에서만 달리다 새벽 더위가 한 풀 꺾여 밖으로 나갔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아파트 단지였는데도 야생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뺨에 닿는 공기의 온도와 무게, 오묘한 색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아침 해, 저마다 바쁜 새들의 말소리와 나비의 날갯짓은 트레드밀의 작은 전광판에만 집중하던 몸의 감각들을 두드려 깨웠다.
3, 2, 1, GO! 스마트폰 달리기 어플의 신호에 맞춰 야심차게 발을 내딛는 순간, 아, 뭐지, 이 오작동의 느낌은?
꿈쩍 않는 땅 위에서 달리는 것은 일정한 속도로 바닥이 뒤로 밀려나가는 트레드밀 위에서 뛰는 것과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발가락부터 머리 끝까지 엉망진창이었다. 전체적인 리듬은커녕 한 쌍인 두 다리끼리도 속도와 보폭, 각도 모두가 다 엉망이었다. 그 와중에 책에서 본 건 또 있어서 발의 가운데 부분으로 착지하려 하다 보니 어색한 꼴로 뒤꿈치가 들리면서 무릎이 뻗은 것도 아니고 굽힌 것도 아닌 각도가 됐다. 줏대없이 흔들리는 이 자유로운 팔들은 또 어쩌나. 유튜브에서 앞뒤로 움직이라고 했는데 내 팔들은 왜 좌우로 흔들리나. 호흡은 코로만 하랬는데, 아니, 그게 가능한 겁니까? 그나저나 지렁이들은 왜 이렇게 많이 나와 있는 거야. 요리조리 녀석들도 피해야 하고... 엉거주춤, 절뚝절뚝 정말 못 뛰어도 너무 못 뛴다.
못 뛰는 것도 속상한데 무릎도 아프다. 트레드밀에서는 통통 탄력 있게 뛰었는데 'No!' 땅은 아직 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재야의 무술 고수를 다리 찢어지게 쫓아가는 기분이랄까. 운동신경 없는 애가 널뛰기에 올라 뛰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랄까. 내 무릎, 괜찮을까?
요상한 자세로 동네 한 구석을 뛰는 동안 미운 오리새끼가 된 것 같았다. 이상하다. 체육관에서는 잘 뛰었는데...
걷다 뛰다, 뛰다 걷다 겸손하게 시작하는 일요일이었다. 자만하지 말자. 암. 그래야 하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