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7) 오지랖

by 이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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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대회 D-67


새벽에 달리다보면 늘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비슷한 시각에 나가 고만고만한 코스를 돌고 그이들도 그 즈음에 나와 거기 어디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여자는 작고 동그란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어떤 남자는 늠름해 보이는 진돗개와 걷는데 내가 1/4쯤 달렸을 때 310동 언저리에서 이 둘을 한꺼번에 만난다. 매번 강아지가 진돗개에게 캉캉 거리고 진돗개는 별 반응이 없다.


어떤 남자는 111동과 112동 사이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아마도 그 날의 첫 담배를 맛있고 씁쓸한 표정으로 피운다. 머리는 산발이고 당연히 세수도 하지 않은 몰골인데 그래도 자기만의 외출 예절인 건지 꼭 카라 있는 티셔츠를 입고 나온다.


한 아주머니는 우레탄이 깔린 100m 트랙을 아주 빠르게 걷는데 꼭 오른팔을 90도쯤 굽혀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걷는다. 일부러 취하는 동작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제기를 찰 때 의지와 상관없이 한 팔이 휙휙 꺾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100m 직선 코스를 엄청난 속도로 왕복 뺑뺑이를 하신다.


중년의 한 아저씨는 티셔츠 앞부분을 밑에서부터 돌돌 말아올려 가슴 부분에서 야무지게 매듭을 짓고 (어떻게 한 건지 정말 궁금하다) 맨발로 걷는다. 이 아저씨를 멀리서 발견하면 그때부터 나의 문제가 시작되는데 발바닥이 따끔거리면서 집중력이 흩어지고 혹시 땅에 유리조각이나 철사 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닌지 살피게 되면서 달리는 폼이 (전보다 더) 이상해진다.


그리고 할머니들.

보행차를 밀고 슬금슬금 지나가시는 할머니, 지팡이를 짚고 절뚝절뚝 건너가시는 할머니, 운동기구 하나에 셋이 붙어 같은 것도 같고 다른 것도 같은 동작을 하는 것도 같고 안 하는 것도 같이 하는 할머니들. 그러니까 느리고 균형도 안 맞고 미숙하고 아주 취약해보이는 할머니들.

그들 곁을 달려서 지나가는 것이 불편하다. 젊은 몸으로 지나가는 것이, 속도를 내는 것이, 통통 튀어오르는 것이 어쩐지 미안하다. 거친 숨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生의 에너지를 부각하는 것도 같아 폐가 터질 것 같아도 숨을 작게 쉰다.


이게 웬 오지랖?

할머니들에겐 시커멓게 입고 뛰는 내가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엉성한 폼으로 아장거리는 날 보며 저게 걷는 거여, 뛰는 거여 한심해 하실 수도 있다. 빨개진 얼굴과 헉헉거리는 꼴을 보며 짠한 마음을 품으실지도 모른다. 저거 저러다 도가니 나가지, 혀를 차실 수도.


어디에서 비집고 나오는 우월감인지 모르겠다. 남사스럽다. 누가 엿볼까 조마조마하다.

내일도 할머니들은 거기에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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