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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Aug 19. 2023

(D-57) 독소 배출






야호! 최장거리 기록을 세웠다. 6km!

어제 힘들게 달려서 오늘은 진짜 쉬어야 하나 다시 갈등했지만 '아니! 그래도 난 뛰고 싶어!' 님께서 눈을 땡그랗게 뜨고 달릴 자세를 잡으시길래 뛰기로 했다.


'아난뛰' 님의 압박도 있었지만 실은 어제 흡입한 독소를 털어버리고 싶었다.

3년째 채식을 하고 있지만 과자와 빵은 끊지 못했다. 아무리 각오를 다져도 이틀을 넘기지 못했다. 성분표에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가 쓰여있으면 먹지 않았지만 (이참에 크라운제과님, 콘칲에 소고기 분말 꼭 넣어야 했습니까?) 기름과 버터와 우유 포함은 못 본 척했다. 맛있으니까. 아, 정말이지 과자와 빵은 너무 맛있으니까!


얼마 전, 『동물복지 수의사의 동물 따라 세계 여행』이란 책을 읽어 알게 되었다.

과자와 빵에 많이 들어가는 팜유를 만들기 위해 인도네시아 숲이 모두 밀려나가고 있다는 걸. 멸종동물을 포함한 많은 생명들이 살 곳을 빼앗기고 다치고 목숨을 잃는다는 걸.

지금까지 내가 무슨 짓을 해 온 건지 절망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팜유 알러지'를 만들어줬다. 의지로 안 먹는 게 아니라 체질적으로 못 먹는 걸로.

괜찮은 방법이었다. 무려 열흘이나 과자에 손을 대지 않았다. 사무실에 있는 버터와플도 마가레트도 참크래커도 '못 먹는 거!' 하니 가위나 풀처럼 보였다. 엄마가 바삭한 꽈배기를 사 왔을 땐 흔들렸지만 여기저기 알러지 소문을 내놓은 덕에 체면도 있고 해서 먹지 않을 수 있었다. 신통방통.


그런데 어제 그만, 그 버터와플과 마가레트와 참크래커를 다 먹어버린 것이다. 출근하자마자 모조리 다. 한 번 입에 들어가니 멈출 수가 없었다. 아직 다 씹지도 않았는데 손은 다음 봉지를 뜯고 있었다. 맛있어. 냄새도 너무 맛있어!


그 정도 독만 먹었으면 자가배출이 됐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흑맥주!

몹시 사랑하는 차가운 코젤을 딱! 따서 긴 유리잔에 콸콸콸 따른 다음에, 입술에 대고 꾸울꺽 꾸울꺽 꾸울꺽, 캬!!! 사랑한다, 정말이다!

뇌혈관 염증을 치료하기 시작하면서 되도록 술을 마시지 않으려 하지만 어제는... 진짜 너무 맛있었다.


이상한 연관이지만 오늘 달리기만 하면 어제 흡입한 그 독소들을 모두 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달렸다. 토요일이어서 평소보다 늦게 알람을 맞춰놓았건만 4시 반에 눈이 활짝 떠져서 '앗싸! 뛰자!' 하고 일어나 달렸다. 그것도 최장거리를! 아무래도 일정량의 독소는... 필요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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