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이우주

나는 왜 ‘책 읽는 사람’이 되었나.

꼬마 적부터 책 한 권만 손에 들면 해 지는 줄 몰랐다, 같은 폼나는 독서역사를 가졌다면 좋았겠지만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 책을 읽지 않았다. 집에 책이 몇 권 있었지만 꺼내 읽은 기억은 없고 방바닥에 깔아 놓고 폴짝폴짝 밟아가며 징검다리 놀이를 했던 것만 생각난다. 책 읽으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놀러 간 추억도 없다. 옛날이야기조차 몇 번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은 1년에 140여 권의 책을 읽는다. 성에 차지 않는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싶다. 100살이 되어도 죽지 못할 것 같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너무나 많아서, 원통하고 속상해서.

책 읽지 않던 어린이는 왜, 책 못 읽어 안달난 어른이 되었으까. 나는 왜 ‘책 읽는 사람’이 되었나.


재미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가 가져온 『남자의 향기』를 수업시간에 책상 아래 숨겨 몰래 읽었던 그 재미. 조직폭력배인 남자가 모든 걸 걸고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가 너무나 절절해 (그때 나는 14살이었다)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하루를 다 보냈다. 책 속으로 들어갈 판이었다.


마음이 이상해지는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스무 살 어느 날,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창가의 토토』를 읽었다. 저자 구로야나기 테츠코가 어린 시절(‘토토’는 그때의 이름) 다른 아이들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쁜 아이로 규정되어 학교에서 쫓겨난 이야기를 읽는 내내 토토의 마음을 알겠어서, 토토를 지켜주려는 어른들의 마음을 알겠어서 마음이 이상했다. (아주 오래 뒤 권여선 작가가 문학을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을 듣고 그때 내가 문학을 경험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강렬한 체험이었다.)

이 두 가지 경험이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 권, 두 권 차곡차곡 쌓이는 독서는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 시야가 트이고 사고가 깊어지는 경험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고나면 쇼핑을 할 때도, 유행하는 음식을 먹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충만함이 가득했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책을 읽는 사람이 된 것은 그런 경험들 덕분이다. 때로 어렵거나 시시하거나 불쾌한 독서를 하기도 했지만 책을 읽으며 분명 어떤 것들을 체험했다. 그 설렘, 그 몰입, 그 혼란, 그 여운이 퍽 좋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나의 무엇 하나가 또 달라질 것이다. 이제 그 책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읽어버렸기 때문에.


첫아이의 육아일기를 쓰듯 내가 자라는 기록을 남긴다. 하루만큼씩 자라 이윽고 어른이 되는 아이처럼 한 권만큼씩 좋은 사람이 되어가기를 희망하며 오늘도 책을 읽고 후담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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