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쪼대로 아플 자유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김도미

by 이우주

지난 토요일, 밤사이 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콧물, 코막힘, 귀 통증, 두통을 앓았습니다. 일요일엔 모든 증상이 심해져 눈이 튀어나올 만큼 아팠습니다. 월요일이 되어 병원에 가보니 인후염에 부비동염에 중이염까지, 염증 대잔치였습니다.


끙끙 앓던 일요일, 가족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최대한 몸 상태를 숨겼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날부터 아프기 시작했으니 한 소리 들을 게 뻔했으니까요. 체력 아끼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고 싶은 걸 어떻게 다 하고 사느냐, 무리하지 말아라, 그게 다 스트레스다….

강골이지 못한 저는 기초 체력도 약하고 면역력도 낮아 자주 아픕니다. 그럴 때마다 별별 조언을 듣습니다. 유산균을 먹어라, 찬물을 마시지 마라, 벌침을 맞아라, 잠을 잘 자라, 스트레스 받지 마라….

걱정해 주는 마음인 건 알지만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더 솔직히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데, 안 하는 게 아니라 되지 않는 건데. 억울하기도 하고 지겹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또, 걱정하는 마음으로 해준 조언인데 내가 너무 삐딱한 거 아닐까, 그런 도의적 반성을 떨치지도 못하니 아프면 이래저래 불편해지고 맙니다.

저처럼 아픈 걸 숨겨본 적 있으신 분, 주변의 조언들에 지친 분들이 계시다면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를 권해드립니다.



900_20250426_164218.jpg




저자 김도미는 삼십 대에 급성골수성백혈병, 그러니까 혈액암 판정을 받습니다. 암환자가 되자 주변에서 온갖 조언들과 ‘암 극복 서사’를 쏟아붓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으로 계속해 무언가를 가르치려 들고, 아픈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한다고 믿는 태도를 요구합니다. 너 그래도 돼? 스트레스 받으면 몸에 나쁘잖아, 차가버섯 한 번 먹어봐, 닭발곰탕을 먹으면 낫는대, 암환자는 밀가루 먹으면 안 된대, 코로나19 백신 때문 아니야? 고기를 먹어야 된대, 채식을 해야 된대….


하라는(먹으라는) 것과 하지(먹지) 말라는 것에 포위당한 저자는 암에 걸린 뒤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들이 모두 제거되고 ‘암환자’라는 단 하나의 정체성만을 부여받은 것처럼 느낍니다. 낫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환자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지만, 환자 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환자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한다는, 사회학자 탤컷 파슨스의 ‘환자 역할’을 얼마나 쉽게들 강요했을까요. 이 청순한 무례와 고의적 강요 들의 불편을 글로 써 2023년 6월부터 8개월간 뉴스레터로 발행했고 그 기록을 모아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라는 제목을 붙여 책으로 내었습니다.


“아무리 생이 절실해도 아무 희망이나 아무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닌데, 건강한 사람들이 아무거나 주워다 주어서 어떤 병자는 불행하다.” -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24쪽


과한 우려, 획일적 치료와 돌봄 매뉴얼의 폭력 안에서 저자 김도미는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씁니다. 사과 한 알 먹고 싶은 자신,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하고 싶은 자신, 겨울산을 걷고 싶은 자신을 존중합니다. 생의 연장을 위해 건강한 사람들이 가하는 통제를 받아들이는 대신 ‘지 쪼대로 아플 자유’를 택합니다.

책을 읽으며 나를 환자의 자리에 놓았다가, 주변인의 자리에도 놓아가며 생각했습니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도 모두 아프지 않으면 좋겠지만 만약 우리 중 누군가 아프게 된대도 선량한 폭력으로 당사자의 고유한 정체성을 뺏기지/빼앗지 않아야겠다고요. 아픈 것만으로도 고달픈 사람에게 죄책감, 의무감, 패배감까지 안겨줄 필요 있을까요.

keyword
이전 04화글짓기와 삶짓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