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실』, 한강
저에게 한강 작가의 첫 작품은 『소년이 온다』였습니다. 오래 전 한 팟캐스트에서 자신의 시를 낭송하던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 사람은 가만히, 오래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지어진 글 또한 가만히, 오래 남겠구나, 생각했던 것이 기억나 그를 통과한 광주를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잔인하지도 격정적이지도 않은 문장들이 무참하고 강렬하게 아팠거든요. 그리고 또, 아름다웠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문학적 체험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더 확실해졌습니다. 서늘한 것을 더 서늘하게, 흰 것을 더 희게 하는 그의 문장을 읽는 것은 인물들이 겪는 통각과 메스꺼움을, 불안과 안도를, 소름과 온기를 나의 몸으로 겪어내는 일이었습니다. 아팠습니다. 아름다웠고요. 계속해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람 괜찮을까.
한참 후까지 내려앉아 있는 소설을 곱씹으며 이런 글을 써내는 일을 짐작해보곤 했습니다. 광주와 제주의 참혹을 독자에게 건네기 위해 그가 어떤 시간을 건너야 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과 소감, 『작별하지 않는다 』를 출간한 후 쓴 산문, 다섯 편의 시, 그리고 정원을 가꾸며 쓴 일기가 담겨있는 『빛과 실』을 읽는 내내 그의 가만한 목소리로 대답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열두 살의 작가는 곤봉과 총검에 살해된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그리고 다른 사진, 총상자들에게 자신의 피를 나눠 주기 위해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같은 물음을 품습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한참의 시간이 지나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써보려 애쓰던 작가는 오래 전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은 자신이 그런 소설을 쓰는 게 가능한지 자문합니다. 그리고 깨닫게 돼요. 오래 전의 그 질문을 대면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요.
그는 900여 명의 증언을 읽습니다. 하루에 아홉 시간씩 한 달. 또다르게 행해졌던 국가폭력들과 인류 역사에 있었던 학살들을 찾아 읽습니다. 눈을 감고 싶었겠죠. 외면하고 싶었겠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소년이 온다』는 그렇게 쓰였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그랬을 겁니다. <출간 후에>라는 제목의 산문을 보면 이 한 편의 소설을 써내기 위해 그가 얼마나 찬 고통 속에 몸을 담가두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이 소설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장은 그동안 그가 무수히 쓰러졌었음을, 소설과 자신을 '우리'라 칭하며 서로가 서로를 버텨주다 이제 홀로 남았다는 문장은 그가 7년이라는 세월을 무엇에 기대 살았는지를 말해줍니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에서 무엇이 자신으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하는지, 소설을 쓰는 동안 자신이 어느 자리에 위치하는지, 마침내 소설이 완성되면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말합니다. 놀랍게도 그것은 그동안 제가 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소설을 읽게 하는지,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어느 곳에 서 있는지, 소설을 모두 읽고 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지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작은 책은 가만히, 오래 제 곁에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