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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Sep 08. 2023

(D-37) 전방 15m



대청호 마라톤 D-37


별이 있었다. 깊고 진한 새벽 하늘에 또랑또랑한 별들이 박혀있었다. 아, 예뻐라. 별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발목을 돌리고, 무릎을 돌리고, 종아리를 당기며 몸을 풀었다. 오늘은 또 어떤 달리기를 뛰게 될까?


며칠째 집 근처만 뱅글뱅글 돌고 있다. 집에서 연락이 오면 재빨리 들어가야 할 상황이라 같은 길만 몇 바퀴를 돌고 끝낸다. 아무래도 아쉽다. 쭉쭉 달려나가는 맛이 없으니 전만큼 신나지가 않다. 쳇.


달릴 때의 시선은 전방 15m에 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도로의 상태를 한 번에 보려면, 내 앞에 누군가 뛰고 있다고 가정하고 그 사람의 엉덩이에(어머, 하필?) 시선을 꽂고 달리면 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쭉 혼자 달려온 나는 엉덩이를 상상하는 게 재미없어서 보고 싶은 것을 보며 뛴다. 나무껍질도 봤다가, 씽크홀도 봤다가, 인형뽑기 기계도 봤다가, 정육점에 그려진 돼지 꼬리도 본다. 새벽부터 나온 할머니 산책러들의 꽃무니 티셔츠도 힐끗 훔쳐보고, 바깥쪽 뒤축만 닳은 할아버지의 운동화도 본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아저씨가 반바지에 티셔츠를 집어넣어 입고 가죽 허리띠를 한 데다 신사양말을 올려 신고 구두 비슷한 걸 신은 걸 보고 헉, 놀라기도 한다.


오늘은 별을 보며 달렸다. 너무 예뻐서, 몹시 반짝여서 하늘을 올려보며 달렸다. 그러다 악, 뭐야 이거! '빠짝'하는 소리와 함께 땅으로 착지한 오른발이 돌 틈에 걸려 뒤틀렸다.


하늘을 보느라 땅을 보지 못했다. 예쁘고 반짝이는 것을 보느라 발 앞에 놓인 것을 보지 않았다.

한창 일에 몰두했을 때도 그랬다. 좋은 일 하는 거라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지금 내가 조금 힘들지만 나중에, 그래, 시간이 흘러 어느 미래에 닿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곁에 있는 가족은 보지 못한 채.


'언젠가'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렸고, 마음이 사라지는 병을 얻었다. 내 가족은 최선을 다해 달리는 나를 바라보며 나와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그래야했던 4년을 빼앗겼고 내가 병을 겪는 세월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젠 '지금'을 보려고 한다. 보다 가까운 곳을 보려 한다.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 귀한 이들과 소중한 시절을 놓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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