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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Sep 12. 2023

(D-33) 아저씨들, 미안해요



대청호 마라톤 D-33


그제 9km를 뛰고 어제는 무릎을 아끼기 위해 뛰지 않았다. 하루 안 뛰었을 뿐인데 무릎보호대를 하고 운동화 끈을 묶는 동작이 새삼스러웠다. 잘 뛸 수 있을까 걱정까지 되었다. 달리기와 서먹해진 느낌? 몸 풀리고 땀 좀 나기 시작하면 괜찮아지겠지. 일단 달려보자. 


점잖은 아저씨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저씨'라는 집단에 호의적이기 어려운 이유 중 두 가지를 말해보자면, 정말 너무 싫은데, 첫째는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있거나 말거나 엄지손가락으로 한쪽 콧구멍을 막고 나머지 콧구멍으로 세차게 '킁'하고 코 푸는 거, 둘째는 아무 데서나 '크아악, 캭, 퉤!'하고 폐에서부터 빨아올린 가래 뱉는 거. 

왜 그러는 걸까? 1)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아서 2)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 거라 생각해서. 두 가지 다 기막힌다. 으, 싫어. 


9월 중순. 이제 새벽에 집을 나서면 제법 쌀쌀하다. 달리기를 할 때 코로만 숨을 쉬는데 찬 기운이 돌아서인지 얼마쯤 뛰다 보면 콧물이 나기 시작한다. 거 참 신경 쓰이네. 참다 참다 훌쩍, 하고 들이마시면 흡흡(들숨), 훝훝(날숨)의 달리기 호흡이 깨져버린다. 호흡이 흐트러지면 발구름의 리듬도 엉켜버려 웬만하면 그냥 뛰어보려 애쓴다. 버티다 버티다 정 안 되겠어서 큰마음먹고 코를 들이마셔도(으..) 별 소용도 없다. 3초 뒤면 다시 스멀스멀 나타나는 콧물. 난감하다. 내가 지금 얼마나 열심히 뛰고 있는데, 그만 뛰고 싶은 거 꾹 참고 엄청난 의지로 달리고 있는데, 이깟 콧물 때문에 멈출 순 없다. 멈춘다 한들 코를 풀 화장지도 없다. 그 아저씨들... 이 생각난다. 이 콧물을 그냥...


이틀 전, 공원에서 뛸 때, 콧물 때문에 달리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자꾸만 흩어져 '이럴 바엔 코 호흡을 포기하자'하고 입으로 숨을 쉬었다. 헤엑, 후우, 헤엑, 후우. 코로 숨쉴 때보다 훨씬 큰 숨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그리고! 콧물이 멈췄다. 입을 벌리지 않아야 몸속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않는댔는데 어쨌거나 콧물은 안 나니까 에라, 모르겠다. 

그런데 점점 입이 말랐다. 호흡을 할수록 목구멍으로 바람이 들어가면서 목 안이 까끌까끌해졌다. 침이라도 뱉어내고 싶었다. 아저씨들...처럼... 안 돼... 아무 데서나 침을 뱉어서는 안 돼. 다른 사람들 걷고 뛰는 길에다 침 뱉으면 나쁜 거야. 나쁜 거야...


맑고 푸른 어스름이 걷히고 붉은 해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새벽의 달리기.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아저씨들의 콧물과 가래를 떠올리며. 크아악, 캭,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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