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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Aug 17. 2023

(D-66) Non 서울들


대청호 마라톤 D-66


오늘 새벽엔 달리지 않았다. 어제 저녁 모처럼 시내에 나가 돈을 쓰고 다니느라 피곤했다. 


근무시간에 열심히 일하는 척 하며 신나게 알아본 러닝화를 사러 모처럼 아울렛에 갔다. 

야호! 탄력 좋다는 모델을 골라 한 쪽은 230mm, 다른 쪽은 235mm를 신고 매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어릴 때부터 작은 발이 콤플렉스여서 신발을 크게 신어왔는데 망설임 없이 내 발에 맞는 230mm을 선택했다. 이제 뭣이 중헌지 아니께. 


이제 밥을 먹자! 한식이냐 분식이냐 양식이냐. 첫 마라톤 출전 동지 똘라뷔와 갑론을박을 벌이다 바로 옆 대형마트 푸드코트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선택. 그래, 오랜만에 시내 나왔으니까 비싼 거 먹어보자고. 


휑. 푸드코트가 휑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피트니스 센터로 바뀌어 화사한 연두색 센터복을 입은 아저씨 세 명이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푸드코트는 텅 비어 있었다. 식당들이 모여있던 자리는 간판도 없이 불이 꺼져 있었다. 딱 한 군데, '맛있는 한 상'이라는 곳만 불이 켜져 있었는데 주문하는 것이 폐가 되는 건 아닌가 싶을 만큼 적막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음식을 시켰는데 다행히 잘 먹었다. 식당 이름 그대로 맛있었고 그 넓은 곳에 딱 우리 한 상이었다. 


밥을 먹고 몇 년만에 영화관에 갔다. 백화점에 있던 영화관이었는데 그래, 백화점에 있었다. 1층은 쥬얼리와 신발, 2층은 숙녀복, 3층은 신사복, 4층은 영캐주얼, 5층은 스포츠, 그 위 두 개 층이 영화관이었다. 십수 명의 주차요원을 거쳐 빡빡하게 채워진 주차장에서 매의 눈으로 빈 자리를 찾아야 했었다. 지금은 어둑한 주차장, 두 개의 주차칸을 차지하며 아무렇게나 차를 대놓아도 뭐랄 사람이 없었다. 영화관은 그렇게 텅빈 공간 위에 있다. 


그러고 보니 신발을 산 아울렛도 그랬다. 러닝화를 산다는 기쁨에 매장으로 직진하느라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사람의 움직임이 없었다. 우리 뿐이었다. 건물 입구에서부터 북적거렸던 곳이었는데 말이다. 


지방은 이렇게 사라지고 있다. 지도 위에서 증발하고 지워지는 찰나의 순간들에 내가 있었다. 


요즘 달리기를 하며 내 몸의 전체를 살핀다. 고개를 너무 숙인 건 아닌지, 어깨가 안으로 말린 건 아닌지, 팔을 옆으로 흔드는 건 아닌지, 엉덩이가 뒤로 빠진 건 아닌지, 무릎이 너무 앞으로 나간 건 아닌지, 발이 바깥쪽으로 착지하는 건 아닌지. 처음엔 발 하나만 신경썼는데 얼마 전부터는 모두를 살피려고 노력한다. 다른 곳들보다 유독 중요한 어느 한 곳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곳에 에너지를 집중하면 너무 빨리, 못생긴 모습으로 뒤엉키다 결국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선을 멀리 두려 의식하고, 틈틈이 어깨 펴는 스트레칭을 하고, 팔을 앞뒤로 움직이고, 폼은 안 나지만 무릎 보호대를 차고, 그동안 숨기며 살았던 작은 발에 맞춤한 신발을 사주었다. 


알아들어야 하는 이들이 알아듣기를 바란다. 








  새벽 달리기를 못해서 종일 찌뿌둥했다(언제부터 달렸다고..)  

  새신을 신고 신나게 트레드밀 달리기를 했다. 안 쉬고 5km!!! 나 10km 마라톤 할 수 있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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