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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Sep 24. 2023

(D-21) 엠마 할머니처럼


대청호 마라톤 D-21


두 번째 10km 완주 성공.

지난주 10km는 1시간 12분, 페이스 7:12/km

오늘 10km는 1시간 9분, 페이스 6:59/km


시간을 3분이나 단축하고 페이스도 6분대(라고 하기엔 7분에 너무 가깝지만)로 달렸다. 작정하고 달린 것도 아닌데 성과가 좋아 내가 기특하고 장하다. 


사실 오늘은 달리는 폼이 좀 좀스러웠다. 보폭이 작게 발이 굴러져 뛴다기보다는 종종거리는 것에 가까웠는데 시계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평소보다 페이스가 빨랐다. 

1분동안의 걸음수를 뜻하는 케이던스를 높여야, 그러니까 보폭을 좁게 해 1분당 발을 많이 굴러야 다리에 무리를 주지 않고 잘 달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읽기도 하고 보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상점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나 좀스럽고 러너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뭐, 페이스도 좋고 폼 좀 안 나면 어때. 오늘은 이렇게 달려보겠어. 



"어느 늦은 봄, 마당의 꽃들이 만개했을 무렵 그녀는 짐을 꾸려 오하이오 주의 갈리아 카운티를 떠났다."

- <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11쪽, 벤 몽고메리 지음


잘 달린 보상으로 오늘 오전은 최상의 팔자 모드로 보냈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며 충분히 뒹굴거린 다음 아껴두었던 흑맥주, 코젤을 시원하게 꿀꺽꿀꺽 마시며 책을 마저 읽었다. 예순여섯 살의 엠마 게이트우드가 146일동안 3,300km의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완주한 이야기를 담은 <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를. 


열한 명의 자녀, 스물세 명의 손주를 돌봐온 엠마는 1955년 5월 3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등산화도 없이 운동화를 신고, 배낭도 없이 손수 천으로 만든 자루에 5kg쯤 되는 짐만 담은 채 그는 산맥을 타고 숲을 걸었다. 다섯 켤레의 신발이 해지고 목적지까지 450km쯤 남았을 때 도대체 왜 이 트레일을 걷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언덕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또 그 너머에는 뭐가 있는지도요."


마라톤 동호회 단톡방에 오늘 금산에서 있었던 마라톤 대회의 연령별 기록이 올라왔다. 여자 10km를 살펴보니 1,2,3등의 최고기록이 40대, 50대, 30대, 60대 순으로 빨랐다. 60대와 30대의 기록은 2초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기뻤다. 운동하는 40대와 50대와 60대가 빠르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흔 살 여름,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던 달리기를 시작했다. 넘어보지 못한 언덕을 향해 매일 조금씩 더 많이, 조금씩 더 빠르게 달리고 있다. 궁금하다. 이렇게 즐겁게 달려 그 언덕의 정상에 섰을 때 무엇을 보게 될지. 어쩌면 별 것 없을지도 모르지. 더 거대한 언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달리지 않았다면 가볼 수 없었던 그 정상에 내가 도달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몹시 기쁠 것이다. 달리느라 넉넉히 자지도 못하고 다리도 아프고 힘도 들겠지만 가보지 못할 수도 있었던 언덕에 올랐으니 얼마나 폼 나는 일인지!

 

내일 새벽, 콧물 나도 또 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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