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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Oct 01. 2023

(D-14) 황톳길 전지훈련


대청호 마라톤 D-14


어제는 친구 똘라뷔와 함께 맨발로 황톳길을 걸었다.   


맨살로 지구와 닿는다? 

어싱(earthing)은 지구와 인간의 연결을 뜻한다. 맨발로 흙길이나 풀밭을 걷거나 계곡물에 맨다리를 담그는 것, 숲 속에서 옷을 얼마큼 벗고 바람 샤워를 하는 풍욕처럼 지구와 사람이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만나는 것을 말한다. 어싱의 개념을 알기 전, 숲을 걷거나 산에 오를 때마다 나무 수피에 가만히 손바닥을 대보곤 했는데 그것 또한 지구와 내가 접지하는 순간이었다. 


자, 그래서 나는 황톳길을 어떻게 걸었을까? 

지구와 닿는다는 기쁨으로 충만해 온몸의 세포가 팔짝팔짝 뛰며 환호! 하지 못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배냇저고리에 속싸개에 겉싸개에 양말에 손싸개에 겹겹이 두르기 시작해 장장 40년의 유구한 세월을 친친 감고 살아와서인지 맨살로 맨땅을 딛는다는 것에 큰 용기가 필요했다. 출발점에 도착해서는 호기롭게 신발 벗고 양말 벗고 바지까지 걷어붙였지만 왼쪽 발도 오른쪽 발도 선뜻 땅으로 내밀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가나다 순으로 진행하는 수밖에. 오른발 앞으로.  

황톳길에 엄지발가락을 살짝 대보았다. 앗, 차가워. 땅이 생각보다 차가웠다. 아침에 내린 비가 스며 찰흙처럼 말랑말랑했다. 앞서 걷는 사람들은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마다 들어가 찰박대며 좋아했다. 이제 나의 차례인가. 발바닥 포복 실시.

으읏, 이상해. 내 살에 땅이 닿았어. 아니, 땅에 내가 닿았어. 어머니 지구의 품에 안겨 모든 게 편안한... 그런 게 아니라 온몸의 세포가 바짝 차렷! 아킬레스건도 딴딴해지고 종아리 근육도 딱딱해지고 승모근도 솟아올랐다. 물기 없는 땅을 밟을 때는 발바닥이 따끔따끔했고 말랑한 땅을 밟을 때는 말캉한 기분도 이상하고 발가락 사이로 묽은 황토가 쑥쑥 올라오는 느낌도 윽, 이상했다. 그러니까, 발에 똥을 얹고 다니는 기분?


으, 어, 아, 악, 호들갑을 떨며 700m 직선 코스 끝까지 갔다. (지금 생각하니 똘라뷔가 꽤 창피했겠다) 13분이나 걸렸다. 목표인 5km를 넘겨 걸으려면 4번이나 왕복해야 하는데. 맙소사. 

처음 걸으면서 본 민달팽이(손가락만 했다!)를 밟지 않으려고 발밑을 살피며 한 번을 더 걸었다. 말캉한 땅의 느낌이 처음보다 나쁘지 않았다. 승모근은 괜찮냐고 똘라뷔가 물어 생각해 보니 응, 괜찮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걸었다. 떨어져 있던 나뭇잎이 발바닥에 붙어 화들짝 놀랐는데 황톳물 웅덩이를 밟는 것으로 의연하게 떼어냈다. 또 한 번을 마저 걸을 땐 눈을 들어 나무를 보고 하늘을 봤다. 붉게 해가 지고 있었다. 그 순간에 정확히 필요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맨살에 닿는 흙의 마른 느낌도, 찰진 느낌도. 


어제 아침 3km를 19분에 뛰었는데, 황톳길 2.8km를 55분 동안 걸었다. 

용감해졌다고... 하면 비웃음 당할까? 엄지발가락 끝부터 발을 디뎌 발꿈치까지 땅에 대어 나를 지구에 내려놓는 그 과정이 내게는 도전이었다고, 바짝 긴장한 몸을 돌려세우지 않고 심호흡을 한 뒤 땅에 닿는 나의 면적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결국엔 걷고 또 걸었다고, 즐거웠다고 말하면 우스운 일일까?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허벅지 뒤쪽이 뻐근하니 당겼다. 석 달 가까이 달리면서도 쓰지 않았던 근육인 모양이다. 황톳길 전지훈련도 하고 했으니 오늘은 가볍게 6.5km만 달리고 끝.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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